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40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2/2페이지)

나는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 희생을 요구하신다는 생각 자체를 바꿨다.

동물을 잡아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 (마태오 9,13)

희생이라는 말에 담긴 숨은 의도가 보복적 정의라는 틀 속에 나를 가두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회개라는 말도 관계를 회복하려는데 초점을 맞추지 않고

고행하고 극기하는 희생이라는 말로 들리도록 함으로써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도록 만들었다.

 

희생제물을 요구하는 종교는

예수께서 실천하시고 선포하셨던 복음과 하느님 나라와는 달리

보상적인 세계관을 만들고 사후에 가게 되는 천국을 연상하도록 만든다.

그렇게 되면 지금 여기서 누리는 하느님 나라는 빼앗기고 만다.

 

내가 반기는 것은 재물이 아니라 사랑이다.

재물을 바치기 전에 내 마음을 알아다오. (호세 6,6)

 

잘못하면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

자신을 낮추어 말씀이 사람이 되어 이 땅으로 내려오신 하느님,

용서하시는 자비의 하느님을 내어주고

냉혹한 정의로 통제하는 하느님으로 맞바꾸게 된다.

그렇게 되면 폭력이 정당화된다.

정당화된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른다.

그것은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가 아니다.

얼마나 많은 폭력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자행되었으며 정당화되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단죄되었는가?

 

그리스도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는 관계를 회복하는 정의다.

처벌이 아니라 화해와 회복에 초점을 맞추는 삶이다.

화해와 관계의 회복을 위해 일하다 보면 고난이 발생한다.

인과응보와 보복적 정의에 사로잡혀 있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께서 보여주시는 행동하는 자비에 대해 적개심을 품었다.

그것이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게 한 구체적인 증거다.

예수께서는 하느님과 나 사이에, 너와 나 사이에, 피조물과 나 사이에

관계의 회복을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구원하는 고난으로 우리를 초대하신다.

예수께서 겪으신 고난은 우리 죄에 대한 값을 치르신 것이 아니고

타인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놓는 사랑에 있다.

 

그분의 치유 이야기들은 하느님은 처벌하시는 하느님이 아니라

치유하시는 하느님, 자비롭게 용서하시는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셨다.

누군가를 용서하는 일은 결국 자신을 내어주고 죽는 일이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되면 속죄론(죗값)의 이론들은 호소력을 잃는다.

속죄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사는 깊이 있는 영적 여정을 포기하게 만들고

하느님의 절대적인 자유와 사랑을 깨닫지 못하게 만든다.

죗값을 따지는 인과응보, 보복적 정의는 하느님의 정의가 아니라 사람이 만든 정의다.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문화 속에서 성장한 사람은 속죄론을 타당한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길들여 살아왔다.

 

예수께서는 잘못한 인간을 위해 당신은 죽고 싶지 않았지만

할 수 없이, 마지못해 당신의 목숨을 내어주신 분이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자유롭게 선택하신 사랑의 계시였다.” (둔스 스코투스)

하느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믿지 못하는 우리의 무능은

너무나 많은 죄악이 희생이라는 명분으로 사람들을 조종하고 통제하도록

방관하였는지 성찰해야 한다.

 

내 인생의 후반부에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분께서 실천하셨던 자비는

회복하는 정의라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잃었던 아들의 비유에서 (루가15,11-23) 아버지는 집에 돌아온 아들을 용서하신다.

그분은 아들에게 계산서를 요구하거나 어떤 죄를 지었느냐고 묻지 않으셨다.

대가를 요구하는 정의는 처벌적 정의다.

용서하는 사랑은 대가를 치르도록 요구하지 않는다.

대가를 요구하는 용서는 용서가 아니다.

진정한 용서는 대가 없이 거저 주는 자비다.

 

하느님은 우리의 희생을 원하지 않으신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재물이 아니라 자비다.”(마태 12,8)

돌아온 아들을 용서하고 잔치를 베풀어 주는 자비,

강도당한 이웃을 보살펴주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연민,

아버지께서 보여주시는 하느님의 이미지는 이렇게 회복하는 정의였다.

 

희생을 요구하고 조종하고 통치하려는 건 하느님이 아니라 사람이다.

폭력적인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다.

인간에게 희생과 고난을 요구하는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다.

하느님은 고난을 원하거나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고난의 신비

예수께서는 고난의 신비가 자신을 변화시키도록 하셨으며

우리도 변화되어 고통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는 올가미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하셨다.

그것이 구원받는 길이다.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모순들을 붙잡고 자신 안에서 모순들을 해결하는 사람들이

세상의 구원자들이다.

자신의 죄를 누군가에게 뒤집어씌우는 사람들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해 변화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현실의 십자가 형태를 받아들이도록 요구받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받아들이도록 초대받는 사람들이다.

의무나 요구사항이 아니라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는 고통이 자신의 관점을 변화시키도록 초대받은 사람들이다.

하느님이 우리를 바라보시는 관점으로 바꾸는

이 변화야말로 십자가를 통해 발견되는 보물이다.

 

예수께서는 고난받는 모든 피조물과 함께하신다.

고난을 받고서 해방된 사람들,

더욱 강해지고 현명해진 사람들,

더욱 자유롭게 된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깊이 있게 바라봄으로써

아버지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마음을 깨달은 사람들이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자유나눔 게시판

자유롭게 글을 남겨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408 선을 어둡게 하는 헛된 환상 선을 어둡게 하는 헛된 환상   사랑을 맛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신학교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하느님과 나 사이에, 너와 나 사이에, 창조된 모든 피조물과 나 ... 이마르첼리노M 2023.09.19 219
1407 9. 영적 슬픔에서 지혜를 캐기 9. 영적 슬픔에서 지혜를 캐기 작가 하버트 조지 윌슨은 자신을 불행한 이라고 묘사하지 않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는 주기적으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 김상욱요셉 2023.09.18 497
1406 얼굴 얼굴   풍랑이 이는 바다 감출 수 없는 진실   우상 앞에 놓인 제물 단절과 부재의 땅   허물어진 성전 회칠한 무덤 가짜들의 천국 진짜들의 지옥   청옥 빛 눈망... 이마르첼리노M 2023.09.18 231
1405 여기가 어딘가요? 여기가 어딘가요?   꿈들이 만나 봉오리를 내밀었지 저녁 바닷길을 걸으며 단순한 기쁨 한 송이 꿈에 동참하는 또 한 송이 꿈의 연대가 만드는 우리의 운명 미래... 이마르첼리노M 2023.09.16 175
1404 멈추는 일과 쉼 속에서 만나는 하느님 멈추는 일과 쉼 속에서 만나는 하느님 “너희는 멈추고 하느님 나를 알라”   휴가 1 바라봄 초원의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가을 전령사들이 연주하던 교향곡도 마... 이마르첼리노M 2023.09.14 401
1403 최상의 좋음을 표현하는 예술 최상의 좋음을 표현하는 예술   영의 인도를 받으면 내면의 기쁨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커지면 커질수록 내... 이마르첼리노M 2023.09.11 337
1402 8. 내려놓음(letting go)의 영성 8. 내려놓음의(Letting go) 영성 우리가 삶의 다른 단계들을 통과할 때나 삶의 자연적이지만 예견하지 못한 모퉁이를 돌도록 초대되었을 때, 새로운 관점에 열려 ... 김상욱요셉 2023.09.09 281
1401 하느님 나라의 새 이름 (상호존중의 원 안에서 누리는 참여) 하느님 나라의 새 이름 (상호존중의 원 안에서 누리는 참여)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미지는 삼각형의 꼭대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 이마르첼리노M 2023.09.05 315
1400 창조를 모르면 아무것도 모릅니다. 창조를 모르면 아무것도 모릅니다.   창조를 모르면 아무것도 모릅니다. 자신을 내어주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으로부터 창조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창조의 아름다... 이마르첼리노M 2023.08.31 276
1399 7. 영적 치매를 주의하라. 7. 영적 치매를 주의하라 겸손과 같이 일상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또 다른 덕은 감사함이다. 감사의 필요함은 신약의 나병환자 열 명 비유 말씀에 강하게 나타난... 김상욱요셉 2023.08.28 226
1398 마음을 다스리게 하는 힘의 원천 마음을 다스리게 하는 힘의 원천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려면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정신이... 이마르첼리노M 2023.08.20 278
1397 6. 숙고하는 영을 성장시키 6. 숙고하는 영을 성장시키기 무엇이 진실로 좋은 것인지를 가려내는 영적식별은 때때로 꽤 쉽다. 상황은 옳은 것을 제시하고 당신은 즉각적으로 무엇을 해야하는... 김상욱요셉 2023.08.19 229
1396 관계 안에 불을 놓으시는 진리이시며 선하시고 아름다움이신 성령 관계 안에 불을 놓으시는 진리이시며 선하시고 아름다움이신 성령   마르틴 부버는 ‘모든 관계는 너와 나와의 관계이며 너와 나와의 관계가 아닌 관계는 나와 그... 이마르첼리노M 2023.08.14 361
1395 5. 초대받았을 때, 경이로움에 이르는 문으로 들어가라. 5. 초대받았을 때, 경이로움에 이르는 문으로 들어가라. 하느님은 우리가 경이로움을 경험하도록 계속 초대하고 계시고, 단순함은 이 경이로움에 이르게 하는 문... 김상욱요셉 2023.08.10 311
1394 4. 내적 단순성의 힘 깨닫기 4. 내적 단순성의 힘을 깨닫기 우리는 생애 전반에서 그리고 하루 생활에서도 수많은 활동들을 하고 다방면으로 이끌림을 경험하는데, 그 가운데서 우리 대부분은... 김상욱요셉 2023.08.05 284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 99 Next ›
/ 99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