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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것이 있어야 돌려드릴 수 있다.

by 이마르첼리노M posted Jun 0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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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것이 있어야 돌려드릴 수 있다.

 

하느님의 통치에 의지를 맡겨드린다는 것은 죽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자유를 얻으려면 반드시 거처야 하는 길목이다.

 

1. 결단하는 자는 고독하다 그러나 결단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눈앞에 있는 사건과 사람,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여러 상황에 자기를 온전히 내어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의지를 넘겨주는 일을 가로막는 것은

고집스럽게 자기 파멸을 초래하는 의지요

너를 통제하고 싶은 중독에 빠진 의지다.

힘을 행사하려는 의지를 하느님께 넘겨드리는 일은

신앙고백보다 우선한다.

세례 때 고백했던 신앙고백만으로는 결단하기 어렵다.

주일과 대축일에 고백하는 신앙고백도 추상적이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려야 한다.” (루가9,23)

자기를 버리는 일, 곧 의지를 넘겨드리는 일은 절대적인 결단이다.

 

2. 희생으로 둔갑한 의지의 포기

실제로는 자기를 전혀 포기하지 않으면서 자기를 포기하는 방법이

자기를 희생시키는 일이다.

아름답고 너그럽게 보이지만, 여전히 자기중심적이다.

진심으로 남을 섬기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의 영웅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도덕적 우월감을 충족시키면서

주변 사람의 이목을 끌고 칭송을 얻고자 하는 가짜도 많다.

위장된 자기사랑은 진짜처럼 보이는 거룩한 가짜다.

이들은 높은 수준에서 자기희생을 보이며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경멸한다.

겸손한 순종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기를 남보다 높은 도덕적 토대 위에 세우고

거기서 오는 좋은 반응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희생을 통하여 반응을 조작하는 것이지 사랑도 자비도 선도 아니다.

남을 위해 재산을 나누고, 불 속에 뛰어들어도

사랑이 없으면 소용없는 일이다.”(1고린 13,3)

 

예수께서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고 하셨고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이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라고도 하셨다.” (마태 9,13)

 

3. 하느님의 무상성을 경험한 사람만이 의지를 돌려드릴 수 있다.

우리의 의지를 돌려드리지 못하는 이유는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가 해드리는 것에 대한 보상으로 이해했기 때문이고

영적인 삶을 결승점에 도달해야 하는 경주로 인식했기 때문이며,

하느님의 무상성을 우리가 드리는 많은 양의 기도와 돈과 재능이라는 것과

바꾸는 거래로 보았기 때문에

거저 주시는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와 은총을 이해 할 수 없었다.

 

사랑과 용서와 자비의 하느님에게 어떻게 내 의지를 넘겨드릴 수 있을까?

자비를 입은 사람만이 자비를 베풀수 있고

용서받은 사람만이 용서할 수 있으며,

감사하는 사람만이 앙심을 품게 하는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삶을 돌려드릴 수 없을 것이다.

사랑과 자비를 온 몸으로 경험할 때 내 의지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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