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492 추천 수 2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신앙으로 둔갑하는 이념의 뿌리

 

인과응보가 만들어내는 이념들은

신앙의 영역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이념은 한쪽만을 강조하고 다른 쪽은 무시해버리거나

칭찬과 욕설의 이중성을 띠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념이 신앙처럼 둔갑하는 것은

겉보기에는 매우 선하고 신앙적인 것 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념을 기반으로 자기가 만든 틀과 원칙들은

율법적인 잣대와 저울이라는 기준을 만들고

그것을 정확하게 지키는 것이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며

진리를 따르는 것으로 생각한다.

 

여러 가지 직무로 교회에 봉사하는 것이

하느님께 충성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신앙과 이념을 혼동하는 데서 나온다.

교회에 대한 봉사가 복음의 기반이 아닌 이념의 기반이 될 때

예수께서 가르치신 복음과는 거리가 먼 광신의 형태로 전락할 수 있다.

가족을 돌볼 시간이 없을 정도로 매일 교회에 출근하는 신자들,

사목자들이 부탁한다는 이유로 자신은 하고 싶지 않지만

할 수 없이 한다는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몇 개씩 맡아서 하는 봉사,

교구나 본당, 수도회 안에서의 봉사 직무도

직무의 크고 작음에 따라 하느님께 충성하는 정도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믿음과 마음으로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기도와 신심의 영역에서도 그러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이 바치는 많은 양의 기도와 제물과 재능과 희생을 바치는 행위가

많이 바치면 많이 받을 것이라는 인과응보적인 이념의 기반 위에서 행하고 있다면,

또한 하느님은 거기에 합당한 보상을 해야만 하는 것처럼 여긴다면,

그것이 신앙의 행위라고 할 수 있겠는가?

 

교회에 대한 봉사라는 명분으로 하는 그러한 일들은

하느님께 충성하는 일이 아닐뿐더러

복음의 예수께서 실천하셨던 삶을 따르기 위한 것도 아니다.

인간이 만든 인과응보적 정의관에 갇혀 계실 하느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는 인과응보적인 이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사랑의 반대가 미움이라기보다 사람을 조종하려는 마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조종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반면에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조종하려 한다.

남보다 더 도덕적이고 신앙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은

법을 잘 지키고 많은 것을 바쳐 사람들은 물론 하느님까지도 조종하려 한다.

그들이 하는 기도의 내용은 부탁을 넘어 통제의 영역에 가깝다.

 

사람에 대한 존중이 사라진 곳에는 자유가 없다.

자유가 사라진 관계는 통제만 남고

통제만 남은 곳엔 지옥이라 부르는 느낌만 남는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남을 조종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고 섣부르게 위로하지도 않는다.

다만 함께 울어줄 뿐이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고 탄식하시며 눈물을 흘리셨다.

운다는 것은 통제하려는 것과 전혀 다른 행동 방식이다.

사랑은 통제하지 않는다. 다만 협력을 구할 뿐이다.

 

무엇으로도 묶여있지 않는 내적 가난이 있는 곳에 자유가 있고

자유가 있는 곳에서 창조적인 생명의 에너지가 나오고

생명의 에너지가 너를 자유롭게 하는 곳에

치유가 있고, 해방이 있고,

하느님의 함께 하심 안에서 누리는 자유가 있다.

그것이 미래가 아닌 현재에서 누리는 하느님 나라의 기쁨과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신앙으로 둔갑한 인과응보적 이념이 만든 틀에서는 그러한 자유도 없고 기쁨과 즐거움도 없다.

다만 해야 할 숙제만 남아있을 뿐이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자유나눔 게시판

자유롭게 글을 남겨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479 성삼일 사랑의 축제. 사랑은 길을 찾아냅니다.   성삼일 사랑의 축제. 사랑은 길을 찾아냅니다.   하느님 사랑의 극치 극치의 하느님 사랑   성목요일 내어주는 몸 쏟는 피 발을 씻어주는 섬김의 현장 극치의... 이마르첼리노M 2024.03.27 158
1478 온유하고 겸손하신 하느님의 여성성 온유하고 겸손하신 하느님의 여성성   너무나 많은 이들이 교회를 다니는 이유가 하느님의 사랑을 배우고 진리를 따라 살기보다는 사교클럽 삼아 다니거나 인간 ... 이마르첼리노M 2024.03.21 244
1477 사랑하는 아들을 먼저 보낸 슬픈 母情 사랑하는 아들을 먼저 보낸  슬픈 母情   1. 속마음을 비추는 벌거벗은 촛불 앞에 미사가 끝난 후 텅 빈 성당의 쓸쓸한 제대 같은 모습처럼 혼자의 고독과 여럿... 이마르첼리노M 2024.03.19 285
1476 생명의 물이 흘러가는 강가에 서서 (에제키엘 47,1-9) 생명의 물이 흘러가는 강가에 서서 (에제키엘 47,1-9)   삼위일체 하느님의 내어주는 사랑이 자비와 선으로 표현된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성전 ... 이마르첼리노M 2024.03.12 352
1475 생명의 노래 생명의 노래   준 것은 잊고  다만 받은 기쁨을 되새기며 노래하자,   이별은 잊고 언젠가 그 날의 만남, 청신한 환희를 돌아보며 노래하자,   가장 훌륭한 애정... 이마르첼리노M 2024.03.08 43
1474 예수님, 저는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예수님, 저는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나는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당신은 자신이 십자가에 달리는 한이 있어도 남을 십자가에 매달기를 거부하셨습니다. 나... 이마르첼리노M 2024.03.05 88
1473 다섯째 날: 수줍어하는 수사슴을 보기 다섯째 날: 수줍어하는 수사슴을 보기 겸손은 영성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한 마리의 수줍어하는 수사슴과 같다. 당신이 자신의 선물들을 과대 혹은 과소평가하... 김상욱요셉 2024.03.05 354
1472 몸값에 대한 이해 1. 프랑스 출신 피에르 신부님의 해석 몸값에 대한 이해 1. 프랑스 출신 피에르 신부님의 해석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 이마르첼리노M 2024.03.02 101
1471 몸값에 대한 이해 2. (서공석 신부님) 몸값에 대한 이해 2. 서공석 신부님의 해석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 이마르첼리노M 2024.02.28 363
1470 희망을 일깨우는 수난의 사랑 희망을 일깨우는 수난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한 육화의 겸손과 수난의 사랑은 성프란치스코를 완전히 사로잡은 하느님의 매력이었습니다. 겸손은 ... 이마르첼리노M 2024.02.26 203
1469 힘없는 힘의 표징 (육화의 겸손과 수난의 사랑) 힘없는 힘의 표징 (육화의 겸손과 수난의 사랑)     도덕적 게임은 끝났다. 누가 잘 지켰고 누가 많이 바쳤느냐? 누가 의롭고 누가 불의하냐? 누가 거룩하고 누가... 이마르첼리노M 2024.02.24 93
1468 믿음은 사랑으로 드러난 태도의 변화 믿음은 사랑으로 드러난 태도의 변화     믿음의 활력은 사랑입니다. 인간이 개인적인 노력에 따라 구원받는다는 영지주의와 근본주의자들은 이원론으로부터 영... 이마르첼리노M 2024.02.21 172
1467 기도와 단식과 자선에 대한 새로운 이해 기도와 단식과 자선에 대한 새로운 이해   “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마르 1,15)     교회 전통 안에서 회개는 기도와 단식과 ... 이마르첼리노M 2024.02.19 321
1466 넷째 날: 삶을 음미하기 넷째 날: 삶을 음미하기 당신이 삶의 일상적 선물들을 음미하는 작은 방법들로 어떤 것이 있는가? 당신이 이 질문을 숙고할 때, 가족, 친구, 동료들 그리고 삶의 ... 김상욱요셉 2024.02.16 52
1465 기도는 변화로 나아가게 하는 창조의 행위입니다. 기도는 변화로 나아가게 하는 창조의 행위입니다.   하느님의 현존은 특정한 장소나 때에만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하느님을 모실 수 있는 게 ... 이마르첼리노M 2024.02.16 571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 99 Next ›
/ 99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