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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주여

by 프란치스코 아씨시 posted Mar 2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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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왜 이런 시련을 내리시나이까.

20분을 작성한 글인데, 사용자 인증이 잘못 되었다는, '띠옹'하는 경박한 소리와 함께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오. 글을 다시 쓸 것인가 말 것인가.

내 잔잔한 감정을 모두 실어 글을 작성했건만...

다시 그 감정이 살아나련지...

고 바오로 신부님께 부탁 드리려 했던 건 다시 써야겠고..

겁나시죠? 갑자기, 신부님 성함이 '툭' 튀어 나와서요.^^





예전부터 '작은 형제회'라는 곳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곳이 프란치스코 아씨시 성인의 뜻을 섬기는 곳인 줄은 몰랐네요.


작년에 12~3년 만에 한 성당에 나갔습니다. 개인적으로 너무 힘든 일이 있어서 정말 견딜 수 없었거든요. 그래도, 성당에 대해서 조금 안다고 고해성사도 보았습니다. 그 날 신부님께서 강론시간(그걸 '강론시간'이라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에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용서하라. 그러면 평화가 찾아온다. 딱 저의 마음이었습니다.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이 용서가 안 되었고, 머리로는 용서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마음은 절대 따라주지 않았던, 그런 나날들이었습니다.

그렇게 그 십수년 만에 나간 성당. 3주차에 무너졌습니다. 아직까지 자리를 잡지 못해기에, 올해 공부 열심히 하고 꼭 합격해서 내년에 정말 열심히 성당 다니자. 하지만 올해도 공부는 계속됩니다. 그래서 여지껏 평화가 오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십수년간 냉담자로 살아왔지만, 그래도 언제나 호주머니엔, 때론 제 똥차 룸미러에는 제가 세례 받을 때 친구가 준, 아니 거의 강제로 뺏은 향나무 5단 묵주가 자리 하고 있었고, 잦은 이사에도 세례 받을 때 받은 작은 성모상은 행여 깨질까봐 고이고이 싸두었습니다. 세례식날 제가 들고 있던 초 역시 고이 싸 두었으니까요.

그래서 항상 느낍니다. 제가 그동안 개 보다 못한 짓도 많이 하며 살아왔지만, 그래도 하느님은 저를 사랑하신다고요.

이 사이트에 들어 온 것도 그렇습니다. 엊그제 우연히 평화방송을 보게 되었는데, 신부님께서 상담해 주시는 프로그램이 나오더군요. 요새 다시 성당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커피 한 잔 마시며 차분히 시청했지요. 신부님이 그러셨습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보편적인 하느님이시라고요. 우리를 무척 사랑하시는 하느님이시라고, 그래서 일본 지진에 하느님께서도 많이 아파하실 거라고요.
왜였을까. 제게 커다란 감동이었습니다. 보편적인 하느님. 나를 정말 사랑해 주시는 하느님.

저는 개신교를 무척 싫어합니다. 증오합니다. 길 가다가 교회에서 화장지 하나라도 나눠 주면, 안 받으면 될 것을 꼭 받아서 보란 듯이 그 자리에 그냥 버려 버립니다. 물론 이런 저의 행동이 어찌 보면 제가 증오하는 개신교인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사실 하고 나면 꼭 후회를 합니다. 내가 이 나이에 뭔 짓인가. 하지만 또 다시 본능처럼.
그런 개신교 목사가 일본 지진에 대해 언급하는 말을 듣고, 그래, 역시 너희는 그렇지. 라고 생각하던 차에.

보편적인 하느님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저를 사랑해 주시는 하느님 곁으로 가는 게 맞겠지요.
그러다, 문득 작은 형제회 생각이 났고, 이렇게 찾아 오게 된 거지요.
너무 고맙게 로그인을 안 해도 글 다 볼 수 있고. 쓸 수도 있고. 내용도 잘 날아가고.^^

천주교에 관해 기본적인 거라도 다시 알아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여기 저기 기웃거리다, 2009년 고 바오로 신부님과 어떤 분의 토론(?)을 보게 되었습니다. 신부님의 글을 보고, 계속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 신부님은 국문과 출신인가? 무슨 글을 이렇게 잘 쓰시지?' 신부님의 생각에 제가 동조한다는 뜻이 아닙니다.그렇다고 반대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전 전후 사정도 모르고 사실 세세한 내용도 잘 모릅니다. 그 글 자체를 가지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토론의 한 장면이라고 보았을 때, 그 글은 정말 최고였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처음부터 끝까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쓰여져 있는 글을 보면서, '아, 나도 정말 그런 글을 쓰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정말, 문학이 아닌 글을 보며 감동한 건 처음이었습니다.

다만,

다만,


신부님, 문단을 나눌 때 '엔터' 한 번만 더 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짧은 글이야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지만, 긴 글 같은 경우는 시각적으로 읽기 너무 힘듭니다. 저만 그렇게 느낀 겁니까?

그 글을 감동 받으며 힘들게 읽고 나서, 최근 글에 '성모님'에 관한 글이 있길래 알고 싶은 내용이라 또 클릭을 했습니다. 클릭과 동시에 밀려드는 압박감이란...

천주교에 대해서 많이 알고 싶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요즘 항상 자기 전에, 내일은 꼭 새벽 미사를 가리라 마음 먹고 자리에 눕습니다. 하지만, 극심한 불면증이라 새벽 미사가 시작할 시간 즈음, 잠이 듭니다. 하느님은 왜 제게 불면을 주셨을까요?

그래도, 다시 도전합니다.


모두들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글이 있어서.



눈물은 왜 짠가 / 함민복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 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숱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뭐 잘못된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 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 아저씨를 흘끔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딛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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