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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잉태하여 사랑을 낳기까지

by 이마르첼리노M posted Dec 1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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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잉태하여 사랑을 낳기까지

 

성탄절이 가까워지면 예수님의 잉태와 출산에 관한 이야기가 그 중심을 이룹니다. 주님의 성탄이 먼 옛날에 있었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성모님을 통해 배워야 합니다. 성모마리아의 믿음과 삶 속에서 인간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이 어떻게 드러났는지를 살피고 우리를 삼위일체 하느님의 관계적 선에 참여시키려는 무한하신 하느님의 놀라운 자비를 열린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그리스도의 몸으로 충실하게 살도록 소명 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만을 위한 치유와 건강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변화를 위한 것입니다. 기도가 살아 있는 관계로 이끌어 주는 것이 아니면 그 기도는 자신의 자만심과 우월감을 부추기는 것으로 그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내어주시는 사랑의 관계에서 배웁니다. 내어주는 사랑을 배워 나도 나를 내어주면서 내어주는 사랑이 얼마나 큰 기쁨을 우리에게 주는지 경험으로 알게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자신과 세상을 새로운 수준으로 인식하고, 새로운 실존에 이끌리기 시작합니다. 즉 내어주시는 하느님의 매력에 이끌려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열망이 커져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변화가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며 그리스도는 이 세상 한가운데에 계십니다. 우리가 보는 자연 세계, 모든 피조물, 생물과 무생물까지 어떤 식으로든지 그리스도와 맺어져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매혹됩니다. 우리의 뿌리는 하느님의 창조에 있으며 하느님의 창조는 무상성과 보편성으로 관계를 구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존재 자체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룹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이 우리의 몸이 되기까지, 우리는 새로운 출산을 위하여 진통을 겪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빛나게 하고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며 아버지의 뜻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는 기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신비 속으로 인도하고 우리의 마음을 하느님의 경이로움으로 열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완성품으로 창조하지 않으시고 조금 모자라게 만드셨습니다. 왜냐하면 서로서로 협력해서 온전해지도록 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은 새로운 수준, 초월적인 수준의 인격자가 되어, 우리의 삶 속에 하느님의 선하심이 현존하며, 또한 우리의 형제자매들 안에서도 하느님의 선이 현존함을 깨닫는 것입니다. 내 안에 계신 하느님의 선하심은 나의 이웃 안에 계시며, 나는 형제요 자매인 나의 이웃을 떠나서는 완전해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느님을 찾으려면, 나는 그리스도의 거울인 나의 이웃을 보아야 합니다. 내가 내 존재의 완성을 원한다면, 나는 내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내가 내 이웃 안에 살며, 나의 이웃은 나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성숙할 때는 자아실현을 향해 자신의 힘과 불굴의 노력으로 자기 목적을 향해 질주할 때가 아니라 객관적이고 외적인 세계와 의미 있게 접촉할 때이며 외부 세계와의 접촉은 바로 인격적인 책임이라는 말로 가장 잘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 책임감은 그 사람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표시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책임을 진 이들이 책임을 회피하는 일을 너무나 자주 목격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이 시대의 무책임한 관계들이 만든 결과를 참담하게 경험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었을 때 그는 자주 유혹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한 일과 자신이 해야 할 일 사이에 생기는 팽팽한 긴장 상태를 그가 계속 유지했다는 것은 분명 그를 구한 은총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나약함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책임을 회피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 책임성 때문에 자신에서 벗어나 다른 대상과의 관계의 영역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나약한 인간일수록 의무감에 태만하지 말고 책임감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그렇게도 특별하게 단죄한 이유는 다른 사람에 대한 개인적인 의무감이나 책임감이 그들에게 부족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인 책임감은 다른 동물들과 확실히 구분되는 것입니다. 동물들은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책임을 잘 감당하려면 관심을 넓혀야 합니다. 단순히 관심을 자신에게서 멀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새로운 관심사가 필요합니다. 예수께서는 자신만을 위해서만 살지 말고 관계를 돌보라고 말씀하십니다. “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듯이 서로 사랑하여라보다 더 중요한 관심을 두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너에게서 벗어나 관계에 초점을 맞추라고 하십니다. 사람이 자기의 삶을 발견하는 것은 삶을 꼭 붙잡고 있거나, 삶을 집요하게 보호함으로써 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삶을 내주거나 다른 사람의 관심사에 삶을 내맡김으로써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아주 역설적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입니다”(마태 16,25)

 

잉태된 말씀이 반사된 선으로 드러나는 것은 어떤 경우라도 책임을 지려는 데서 나옵니다. 이기심과 탐욕으로 점철된 인간의 역사 안에서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나를 내어주는 행위는 사람을 살립니다. 내어주는 행위 중에 책임을 지려는 의지는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말씀을 잉태한 모태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모성의 신비가 뜻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낳는 데에 있습니다. 아버지의 자비와 선하심을 관계 안에 흘러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잉태하고 간직된 말씀을 몸 안에 모시고 살며, 반사된 선을 통해 그분을 낳는 것입니다. 복음 생활은 관계를 맺는 사람이 되는 것에 초점이 있습니다. 복음 생활은 그리스도의 몸과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몸으로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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