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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나무를 바라봄 2

by 일어나는불꽃 posted Oct 20,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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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커피나무를 바라봄1~4)

 

제가 유기서원기때 성 보나벤뚜라의

 

"신비의 포도나무"라는 묵상집을 읽고

 

저도 힌트를 얻어 그리스도에

 

대해서 한번 쓰게 되었던 글이었습니다.

 

이 글을 묵혀둔지가 몇년이 되어서 한번 올려봅니다.

 

 

 

 

+그리스도의 평화

 

 

 

 

 

나무에 달린 커피는 사실 하나의 열매이다.

 

보면 꼭 체리같이 생겼는데

 

그안에 씨가 곧 커피 이다.

 

그래서 우리가 커피를 먹는것은

 

커피나무열매의 씨를 먹는 것이다.

 

처음에 커피열매가 익으면 빨갛게 된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 열매를 따서 껍질을 까고

 

그 안에서 나온 씨를 햇볕에 말린다.

 

그렇게 하면 커피 생두라고 한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커피는 짙은 갈색이나

 

검은색인데 그것은 불에 익혀서 그렇게 된 것이고,

 

처음 열매에서 껍질을 벗기고

 

말렸을 때는 청색을 띄게 된다.

 

이것을 우리는 '커피 생두'라고 불리는 것이고

 

불에 익혀서 갈색이나 검은색이

 

된것을 '커피 원두'라고 불리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열매에서 커피생두가 되는 과정을

 

자세히 바라보면서 그리스도와도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커피가 재배되는 과정이 꼭 그리스도의 삶을

 

얘기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커피열매에게 있어서

 

생명의 근원은 커피나무이다.

 

커피나무가 없으면 열매도 맺을 수가 없다.

 

그래서 커피나무와 열매는 하나이다.

 

커피열매는 커피나무의 생명에서

 

생명을 얻는 것이다.

 

 이는 곧 그리스도께서 하느님 아버지와

 

서로 서로 나누어 질수 없는 하나인

 

삼위일체의 관계를 말하고 있는 것과 같다.

 

그리고 열매가 나무에 붙어 있을 때에는

 

그 어떤 누구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열매자체로써는 먹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직 익지 않았고, 맛있는 커피로써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커피 원두가 될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커피로써 인정해 주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가치있고

 

소중하면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그 모습이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고 이 세상에

 

오셨지만 겉으로 보기에 보잘것 없고,

 

가난한 나자렛 출신의 목수로

 

밖에 보이지가 않기에 거들떠 보지도 않는것.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써 인정하지 않는것

 

바로 그러한 무시와 멸시를 받는 모습이

 

마치도 커피열매가

 

커피로써의 모습이 드러내지 않고,

 

보잘것 없기에 사람들에게 무시를

 

받는것 바로 그것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열매로써의 모습과

 

공생활중의 그리스도의 모습이

 

묘하게 일치된다고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때가 이르자 사람들이

 

열매를 나무에서 따게 된다.

 

나무에서 열매를 딴다고

 

하는 것은 생명을 끊는 것이다.

 

생명줄인 나무에서 열매를

 

따 버리면 그 열매는 죽는 것이다.

 

그렇게 때가 되어 사람들이

 

손으로 열매를 따고 이제

 

사람들이 마음대로 하게 된다.

 

껍질을 뭉게고 부수고 난 다음

 

껍질을 벗겨서 말린다.

 

그렇게 잘 말리면

 

커피 생두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또 한가지가 더 남아있다.

 

그것은 바로 커피를 불에 익히는 것

 

뜨거운 불에 익혀서 태워야 하는데

 

그렇게 해야지만 커피의 그 고소하고

 

향기로운 냄새와 맛이 나는 것이다.

 

커피 생두 그자체로써는 아무런 향과 맛이 없다.

 

불에 익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커피용어로 '로스팅'이라고 한다.

 

위의 커피를 따는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그리스도께서도 때가 이르자

 

사람들에게 손으로 잡히셨다.

 

이제 그분의 때가 이르렀던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잡히셨기 때문에

 

그분의 죽음과 수난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마음대로 할 것이다.

 

사람들의 손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분을 발로 차고 손으로 때리고

 

얼굴을 알아 볼수 없게끔 해서 그분을 부숴버린다.

 

마치 커피 열매가 껍질을 까지 위해 부서지는 것처럼,

 

그렇게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진 예수님께서는

 

옷이 벗겨지신체로 십자가에 매달리신다.

 

이것 또한 사람들이 커피원두를

 

추려내기 위해 껍질을 벗기는 것과 같다.

 

그렇게 옷이 벗겨지신체로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께서는 한 동안

 

십자가 위에서 매달려 계신다.

 

이것 또한 껍질을 벗기운 커피생두가

 

한 동안 햇볕에 말리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이제 결정의 시간이 다가왔다.

 

극심한 죽음의 고통이 짓누른다.

 

갈기갈기 찟기시고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으신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숨을 거두신다.

 

그리고 삼일 후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어

 

모든 이에게 참 기쁨과 행복과 생명을 주시는

 

존재가 되어 우리와 함께 살아가신다.

 

이것은 마치 커피 생두가 결정의 시간이 되어

 

뜨거운 불에 달구어져 익히게 되고

 

맛있는 커피음료로 내려져 사람들에게

 

커피의 좋은맛과 좋은 향기로

 

사람들의 기억과 입맛과 가슴에 전해져서

 

평생을 잊지 못할 맛과 향을

 

전해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한잔의 커피는

 

여유로운 오전과 오후의 휴식과

 

고소한 맛과 향기를 전해주는 것만으로도 좋지만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향기 즉,

 

그리스도의 육화. 공생활. 수난. 죽음. 부활.

 

이 모든것 그리스도의 생애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커피한잔을 마신다는 것은

 

그 속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고,

 

그리스도의 생애가 담겨져 있다.

 

한잔의 커피는 나와 그리스도를 연결시켜 주는

 

사다리의 역활이기도 하고,

 

그리스도의 생애의 모습을 반사시켜주는

 

거울과도 같은 역활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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