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353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예수 회원인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Jorge Mario Bergoglio) 추기경이 교종으로 선출되었다.


선출 직후 어떤 추기경으로부터 가난한 사람들을 잊지 말아 달라는 축하 인사를 받으면서 프란치스코 이름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분의 그동안 행보를 보면 교회의 공식 명칭인 교황(敎皇)으로 부른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고 교종(敎宗)으로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독일 속담에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질 때 옆으로 떨어지는 법이 없다.” 는 말처럼 프란치스코 교종의 선출되기 전의 삶의 방식도 성 프란치스코 모습과 너무도 어울리는 삶이었기에 예수회 출신이지만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선택한 것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새 교종의 이런 결단은 성 프란치스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이유로라도 상쾌한 소식임에 틀림이 없다.

 

누군가가 지혜로운 사람은 역사를 통해 배우게 되나, 어리석은 사람은 경험을 통해 배우게 된다.” 고 말했다.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교회의 어두운 역사를 외면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게 교회에 대한 사랑과 충성의 표시로 생각하는 성직자 수도자들이 적지 않으나, 이것은 반드시 고쳐져야 하고, 현대인들의 정서는 이것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 교황이 유럽이나 북미를 순방할 때 마다 당해야 했던 수모 수준의 성직자 성폭행 피해자들의 시위나 교황의 사과를 기억해서라도 교회 어두운 역사에 대한 무지는 교회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21세기에 단죄해야 할 혐오스런 위선이요, 세상에 대한 기만임을 제 정신이 있는 크리스챤이라면 알고 처신해야 할 것이다.

 

과거 교회에 대한  충성으로 여겨 감싸 덮어 두었던  어두운 역사들이 파헤쳐 짐으로서 교회의 위상은 더 없이 추락되는 결과가 되었다.

 

교회 편에서 보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꼴이 되었다.

 

얼마 전 교종 프란치스코는 성직자들과 연루된 범죄의 피해자들을 만나 교회의 대표로서 정중한 사과와 함께 성직자들이 저지른 이 죄는 약한 인간이기에 저지른 실수이기 이전, 한 인간으로서 용서받기 어려운 혐오스러운 짓이란 과거에는 생각도 할 수 없었던 과감한 표현을  하셨다.

 

교회 역사에서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4명의 교황을 배출했고, 그 중 마지막 교황이었던 클레멘스 14세는 유럽 열강의 정치적 압박에 굴복해서 예수회를 해산시킨 장본인이었다.

 

예수회를 해산시킨 교황이 프란치스칸이었는데, 처음 예수회 출신의 교종이 선출되면서 성 프란치스코를 자기 이름으로 선택했다는 것은 약간은 흥미로운 일이다.

 

 

예수회 창설자인 성 이냐시오는 당시 종교개혁으로 더 없이 실추된 교회를 쇄신할 수도회를 창설하면서 교황의 인가를 받고자 했다.


당시 교황이었던 바오로 3세는 루터의 종교 개혁으로 풍비박산이 된 교회를 회생시키기 위해 교회 자체의 정화를 겨냥한 반종교개혁 운동( Counter - Reformation)을 시작하고 괄목할 만한 성과도 거두었으나, 그의 개혁 의지와 어울리지 않게, 개인 이력은 중세 수준의 교황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 로마에서 절세의 미인으로 소문난 여동생 쥴리아 파르네세를 악명 높은 교황 알렉산더 6세에게 소개한 덕분에 스무 다섯의 나이에 추기경이 되었다.

  

그 역시 어떤 미모의 여인과의 관계에서 4명의 자식을 두었으나, 이것을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새 생활을 약속하면서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한마디로 그는 교회 개혁에 대한 의지와 열정 못지않게 자기 안에 그림자를 지닌 교황이었다.

 

그는 교회의 개혁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하는 일방 중세 교황들의 고질적인 병폐였던 족벌주의(Nepotism)에 빠져 16세와 14세의의 두 손자를 추기경으로 임명하는 자상한 이태리 할아버지다운  실수도 저질렀다.

 

수도회 인가를 받기 위해 고심하던 성 이냐시오는 어느 날 교황의 딸이며 고귀한 인품의 여인으로 알려진 콘스탄자 파르네세가 아버지인 교황 집무실을 무상으로 출입하는 것을 보면서, 수도회 인가를 위해 그녀를 이용하기로 하고 작정하고, 그녀에게 접근해서 마침내 1540년 교황으로부터 수도회 인가를 받았다.

 

성 이냐시오는 그전의 수도회에 전례가 없었던 가난, 정결, 순종과 같은 전통적인 것 외에  교황에 대한 절대 순종이라는 제 4의 서약을 삽입함으로서 예수회원들은 교황의 전위대로서 대단한 역할을 했다.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라는 예수회 목표에 이 서약이 삽입되면서 예수회원들을 교황의 오른 팔 근위대로서 과거 어느 수도회도 실현키 못했던 대단한 기동성과 성과를 내게 되었다.

 

그러나 그 성과는 복음적인 것과 복음적이라기보다 정치적인 것이었기에 비 복음으로 치부할 수 있는 두 얼굴의 성과였다.

 

예수회는 영적인 집단으로서의 대단한  힘과 함께 , 유럽 가톨릭 국가들 구석구석에 밝고 어두운 양면으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무시 못 할 집단으로 성장했다.

 

   18세기에 접어들면서 막강한 힘을 지닌 예수회가 유럽 열강 군주들의 눈에 가시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중세기 교황은 유럽 군주들의 군주 였기에 교황이 왕들의 대관식을 집전하는 존재로 부상되면서 교황과 왕들의 위상은 수직적이었으나, 계몽주의가 시작되면서 유럽의 군주들에게 교황에 대한 이런 전통적 관계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되면서 교황 직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표현하게 되었다.

 

유럽의 가톨릭 군주들도 더 이상 교황의 신하로서 지낼 마음이 없었기에 국내 교회나 수도회 재산의 몰수나 활동의 금지나 제한 등을 통해 교회를 압박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눈에 가시로 등장하게 된 것이 바로 예수회였다.

 

이 미묘한 시기에 콘벤뚜알 프란치스코회의 총장을 역임했던 안토니오 간가넬리 Giovanni Vincenzo Antonio Ganganelli : (1705- 1774)) 가 클레멘스 14세라는 이름으로 교황에 선출되었고 그는 재임 중에 유럽 가톨릭 국가들의 압력에 굴복해서 예수회를 해산시켰다.

 

예수회는 1773년에서 1814년까지 41년 동안 해산의 진통을 겪어야 했다.

 

앞으로 기회가 있을 때 프란치스칸 교황 4명을 소개하겠지만 글레멘스 14세는 프란치스칸 교황으로서 마지막 자리를 지킨 분이시다.

 

다른 3명의 프란치스칸 교황들은 배경이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교황이 되자, 자기 집안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친인척들을 교황청에 대거 투입함으로서 교황청의 고질병이 된 족벌주의를 시작한 것과 같은 친인척 비리에 연루되는 불명예를 남겼다.

그러나   클레멘스 14세는 의사 집안 출신으로 예수회 교육을 받았을 만큼 반듯하고 안정된 기반에서 성장했기에 다른 교황들이 보인 이런  추태에서는 자유로웠다.

 

그의 재임 중 교황 경당에서 14세 소년 모챨트 ( A. Mozart)가 당시 대단한 수준으로 평가되던 17세기 작곡가 그레고리오 알레그리(Gregorio Allegri) 의 미사곡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 Miserere mei, Deus)를 들은 후 정확하게 악보를 적는 것을 보고 음악가로서의 그의 천재성을 칭찬하면서 그를 격려하기 위해 귀족 작위를 수여할 만큼 자상한 아버지다운 목자의 면모와 함께 문화와 교양에 있어서도 대단한 안목을 지닌 분이었다.

 

유럽 국가들의 예수회에 대한 반감을 억누르기 위해 노력했던 클레멘스 13세가 세상을 떠나고 나자 유럽의 가톨릭 열강들이 예수회를 해산하라고 새 교황에게 압박을 가해 왔다.

 

교황은 장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총명하고 사교적이며 겸손하고 청렴할 뿐 아니라 유머 감각도 있었다.

 

기이하게도 그는 예수회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았고 1743년 예수회 창설자 성 이냐시오를 칭송하는 논문을 남길 만큼 예수회에 호감을 가지고 있었으나 복음 집단의 지도자로서 지녀야 할 용기와 안정성이 부족해서 항상 주위의 눈치를 살피는 소심한 처신을 했다.

 

그는 예수회의 해산을 요청하는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오스트리아 등 가톨릭 국가 왕들의 눈치를 살피다, 예수회에 대한 미움의 불똥이 교회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예수회 해산이라는 결정을 했다.

 

1773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주님 (Dominus ac Redemptor noster) 이라는 칙서를 반포하면서 예수회를 해산시켰다.

 

예수께서는 항상 나의 왕국이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고(요한 19: 36) 하셨지만 교회는 너무 자주 세상 권력의 유혹 앞에 무너졌고, 이 세속적 권력의 힘이 교회의 영적 차원으로 둔갑하는 과오를 오늘까지 저지르고 있으며, 예수회 해산 역시 교회가 살아남기 위해 현실에 타협해서  복음을 뒤로 돌린 결과가 되었다.

 

그러나 해산이라는 충격을 통해 예수회 역시 중요한 자기 점검의 시기에 서게 된 것은 사실이었다.

모든 것을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서라는 소박한 열망으로 출발했던 예수회는 교만하며 권력지향적인 야심에 가득 찬 방대한 조직으로 변질되어 국가 간의 음모에 개입하며 부도덕한 행위를 일삼는 다는 비판까지 받게 되었다.

 

이처럼 교황의 명령에 절대 순종이라는 예수회는 두 개의 얼굴로 나타나게 되었으며 이것은 영어 사전을 찾아보면 확인이 된다.

 

대문자로 Jesuit 이면, 예수회 수도자, 한마디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아름다운 수도자의 얼굴이나, 이것이 소문자 jesuit 이 되면 책략가, 음모꾼, 음흉한 사람, 궤변가처럼 금방 흉측한 얼굴로 변하게 되는데 이 원인 제공을 바로 교황에 대한 무조건 순명을 서약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예수회 총장 로렌죠 리치( Lorenzo Ricci: 1703 - 1775)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교황의 이 결정에 승복하고 칙서가 반포된 후 체포되어 이태리, 스페인, 포르투갈, 독일의 관구장과 함께 바티칸 가까운 산 안젤로 성에 감금되었다.


경건한 지도자로 소문난 그는 자기 선배들이 혼신의 노력을 다해 충성을 했던 교황으로부터 받은 해산이라는 이름의 충격적인 배신(?)을 너무도 평온하게 수용함으로서 교황의 명령에 무조건 순종이라는 자기들의 카리스마에 더 없이 충실하는 것으로 생애를 마무리 했다.

 

해산 결정에 의해 예수회원들이 투신하고 있는 많은 교육기관과 선교지역에는 말할 수 없는 손실이 발생했다.

 

그러나 성 이냐시오가 요구했던 교황에 대한 절대적 순종이라는 예수회 카리스마는 이런 진통을 통해 복음적으로 새롭게 해석되는 계기가 되었다.

 

예수회의 특징은 교육과 학문을 통한 봉사와 선교에 있으며 특히 일반 교육 사업을 일상적 업무에 넣은 최초의 수도회이다.

 

 

클레멘스 교황의 말년은 비참했다.

이 해산 결정을 내린 후 클레멘스 14세는 오래 동안 앓아오던 피부병에 우울증과 피해망상이 겹치면서 여생을 암살에 대한 공포 속에서 시달려야 했다.

 

오늘 클레멘스 교황은 콘벤뚜알 수도회 총본부가 있는 12사도 대성당에 유명한 조각가 카노바(Antonio Canova:1757- 1822) 가 만든 아름다운 무덤에 안치되었다.

 

공교롭게도 이 대성당 이웃엔 예수회가 운영하는 국제 교육기관인 그레고리안 대학과 성서 연구소가 있는데, 여기에서 공부하고 있는 미국 계통의 신학생들 사이에는 좀 익살스런 전통이 있다.

 

학기말 시험이 끝나는 날, 예수회 출신의 까다로운 교수 때문에 시험을 망쳤거나 마음고생이 많았던 신학생들은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 클레멘스 14세 교황이 잠들고 있는 열 두 사도 대성당에 가서 무덤 앞에 장미꽃을 바치며 기도한다.

 

어떤 신학생들은 시험이 끝나면서 자기들을 괴롭힌 교수를 좀 손 보아 줄 적임자(?)를 찾고 싶어진다.

헌데 예수회 교수들은 검은 옷을 입은 교황의 집안이라 아무도 손댈 사람이 없는 무적의 용사들이나 글레멘스 14세 교황만은 이런 예수회를 해산 시킨 업적(?)이 있기에 그의 무덤은 인기 있는 방문지가 되고 있다.

 

옥스퍼드 대학 교회사 교수이며 성공회 사제인 켈리(J.N.D Kelly)가 저술한 교황사( The Popes)는 교황에 대한 가장 객관적인 서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그는 여기에서 예수회 해산에 대한 클레멘스 14세 교황의 처신이야 말로 당시 교회의 위상을 크게 떨어트린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복음적인 결단이 아닌 시세 영합적인 차원에서 결정한 예수회의 해산으로 교황에 대한 존경심은 전보다 오히려 더 낮아 졌고, 국제 사회에서의 위상도 중세 이후 어느 때 보다 낮아졌다.

 

그러나 역기능일 수 있지만 수도회 해산이라는 충격을 통해 예수회원들이 자신들에 대해 jesuit라는 경멸적 표현을 하는 세상의 정서에 귀를 기울이는 은총의 기회가 되지 않았겠느냐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이런 면에서 성 이냐시오가 교황에 대한 무조건 순종을 중요시한 것과 교회의 이익을 위해 예수회를 해산시킨 클레멘스 14세 교황의 처신은 복음 보다 현실 적응의 관점을 선택했다는 면에서 유사점도 발견 할 수도 있겠다.

 

2차 바티칸 공의회 후 예수회원들은 창설자의 카리스마에 대한 복음적 재해석을 시도하게 되었고, 성 이냐시오 이후 가장 역량 있는 총장으로 평가되는 아루페 총장과 콜벤바흐 총장의 노력에 의해 교황청과의 긴 갈등을 겪으면서도 새로 태어나는 쇄신의 기회를 만들었다.

 

창설자가 준 제 4서약을 복음적 관점으로 정착시킨 것이다. 예수 회원들은 교황이라는 인간적 제도의 친위대가 아니라 그 이름에 걸맞게 예수의 친위대임을 재확인 한 것이었다.

 

예수회가 이런 복음적 결단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선 그동안 총애를 받던 여러 교황들과의 긴장 관계를 만드는 아픔을 감내해야 했으나, 수도회가 복음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선 어떤 어려움이나 아픔도 감내할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요한 바울로 2세 교황은 예수회원들의 이런 복음적 변신에 제동을 걸 수 없음을 확인하면서 교황의 친위대로서의 역할을 대행할 수 있는 단체로 오푸스데이(Opus Dei)를 인가했다.


아무튼 예수회원이던 아니던 상관없이 교황 보다 교종의 이름이 더 어울리는 분이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으로 교회를 이끌게 된 것은 상쾌한 일이기에, 교황에 대한 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프란치스칸들 역시 사부 프란치스코가 가 남긴 교황에게 순종하라는 회칙에 대한 현대적 복음적 재해석을 과감히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쇄신에 대한 복음적 용기가 없이 중세 봉건제도의 가신(家臣)들처럼 맹종과 무지의 차원에서 이것을 받아들이면, 예수회처럼 해산의 아픔을 통해 회생하는 게 아니라 복음적 차원에서 쓸모없는 나약하고 비굴한 열등 인간 집단으로 연명하게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그래도 근래 작은형제회라 불리길 원하는 프란치스칸 집단의 몇 분의 장상들이 예언적 처신을 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이것이 프란치스칸들이 주야로 외치는 쇄신의 길이요, 회개의 길이요 창설자의 정신을 재현하는 길일 것이다.

 

근래 어떤 젊은 평신도 신학자가 프란치스코 교종의 방문을 앞두고 쓴 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교황 방한을 앞두고 가장 우려하는 것은 그의 말과 삶을 골라 선택적으로 이용하는 태도다. 교황의 성품이나 개인 윤리, 신심은 받아들이고 선전하지만 개혁 프로그램은 철저히 외면하는 행태가 교회 안에서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고 말했다.


이 젊은 평신도 신학자의 견해처럼 프란치스코 교종에 대한 여러 미사여구가 무작위로 난무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의 역사를 확인하고 인정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 글을 남긴다.

 

그러나 처음을 다시 반복하면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역사의 참 의미를 현세적 실리의 차원을 초월해서 복음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오늘 교회가 찾아야 할 새로운 방향일 것이고 교종 프란치스코의 행보는 이런 면에서 큰 희망을 주고 있다.


어떤 경사로운 것이라도 들뜬 정서로 받아들이는 것은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다.

오늘 풍선처럼 인기와 기대가 하늘을 치닫고 있는 주님 종들의 종이신 예수회원 교종 프란치스코가 이 땅을 방문하실 8월이 시작되었다.

 

그리스도 이전에 로마 제국을 통일했던 영웅다운 황제 쥴리우스 카이사르(BC 100 _ BC 44)는 예수회 해산이라는 교회와 수도회 역사에서 충격적인 사건을 바로 직시하며 관조할 수 있는 지혜의 말을 남겼다.

 

비록 나쁜 결과를 낳은 사례라 해도 그것이 시작되었을 당시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그것의 시작은 선의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자유나눔 게시판

자유롭게 글을 남겨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89 헤르만 헤세의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 &lt;수레바퀴 밑에서&gt;, &lt;데미안&gt;, &lt;시타르타&gt;, &lt;지와 사랑&gt;과 같은 불후의 작품들을 남기고 &lt;유리알 유희&gt;(1943년)로 194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헤르만 헤세(18... 고파울로 2014.01.12 5159
1388 향수 향수   영원한 고향은 어디에 있을까? 있기나 한 것인가?   처음부터 계셨던 분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동행하셨던 분 나의 삶에 중심에서 일하셨던 ... 이마르첼리노M 2019.08.29 578
1387 행복 긍정적인 에너지 1) 바쁜 직장인들의 기호식품 중 하나인 커피 이 커피의 효능에 대해서는 언제나 의견이 분분하지만 하루에 커피 3잔 이상은 신경을 날카롭게 ... file 소천 2009.06.04 7822
1386 행동하는 자비가 육화되는 땅 행동하는 자비가 육화되는 땅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요한 4, 11)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에 ... 이마르첼리노M 2021.01.06 490
1385 합리화의 성찰 합리화의 성찰   고통을 피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는 웃는 것이다. 나는 슬프게 살고 싶지 않다. 명랑하기를 원하고 삶을 즐기고 싶다.   ... 이마르첼리노M 2020.05.04 483
1384 함 읽어 보세요. 한겨레 21 기사. 회의많은 회사는 망한다. http://h21.hani.co.kr/section-021011000/2006/03/021011000200603170601038.html“회의 많은 회사는 망한다” 회의문화 개혁에 나선 회사들, 문제는 횟수가 아니... 신성길 2006.03.24 10213
1383 할머니의 신앙 T.그리스도의 평화   지금으로부터 18년전,,   그때 당시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세례받은지는 1년이 되었고,   신앙에 대해서 믿음에 대해서   아직 그렇다할 ... 일어나는불꽃 2015.05.07 1099
1382 한우리 창립 1주년 기념 동영상 + 평화와 선 마지막 대림주간 잘지내시길.. 방금 한우리에도 올렸는데, 여기에도 올립니다. 아쉬운 것은 자료가 너무 부족해서..많이 부족합니다. 한우리에 많은 ... 정마리아 2006.12.18 5569
1381 한여름 밤에 쓰는 편지 한여름 밤에 쓰는 편지 사색과 그리움이 흐르는 유역에 사는 그대에게 하염없이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편지를 씁니다. 연일 계속되는 길고 긴 장마 속에서 ... 1 이마르첼리노M 2015.07.30 1302
1380 한밤의 깨달음 한 밤의 깨달음   상대방을 길들여 자네의 종으로 만들지 말게   폭력중의 가장 큰 폭력은 사람에 대한 존중심과 자유를 헤치는 것이라네. ... 이마르첼리노M 2013.05.16 6822
1379 한남대교의 물결 비가 며칠 째 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장 프란치스꼬 2006.07.17 8503
1378 한국프란치스칸 청년회 체육대회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http://www.youfra.org평화와 선 안녕하세요. 한국프란치스칸 서울 청년회의 박혜연 소화데레사 입니다. 10월 1일 일요일 경희궁 뜰안의 운동장에서 각 지역의 청... 박혜연 소화데레사 2006.09.27 5977
1377 한국순교성인 축일을 축하하며 +평화 아씨시에서 인사합니다. 오늘 전세계에서 우리 한국순교성인들을 기념하는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이곳에서도 특별히 아침에 우리 아시아 그룹 형제들이 ... 마중물 2006.09.20 6737
1376 한국발 종교사건 한반도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한국발 종교 사건 http://cafe.daum.net/mrdd 요한 2007.12.16 5442
1375 한 이름을 불렀다. 한 이름을 불렀다.         말의 여로, 말 속의 오랜 방황을 거치며 마침내 찾아낸 이름, 그 이름으로 님을 불렀다.   한 마디의 주어... 이마르첼리노M 2016.08.07 1349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 99 Next ›
/ 99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