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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에서 잉어의 신비를 관상하며!

by 고 바오로 posted Dec 26,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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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안에서의 틀에 박힌 생활로는 뚫고 들어가기 힘든 세계를
수영이라는 운동이 열어주는 것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수영이 몸에 익으면서
부드러운 물 속에서 물의 그 감촉을 즐기고 있다.

요즘 며칠 사이에는 수영을 하면서 잉어가 된 느낌이다.
간혹 호수나 강가에서 유유히 노니는 잉어들을 보게 되는데,
그 때마다 늘
무심의 세계에서 꼬리 흔듦도 없이
신선같이 고요히 유영하는 그들의 모습이
나의 수도 생활의 이상처럼 여겨졌었는데,
수영을 하며 내가 잉어가 된 것이다.

어제는 그런 기분에 미친 듯 수영을 하다
홀연히 잉어가 된 느낌으로 수영을 마치게 되었다.
그런 느낌 속에서 수영장을 나서니,
공기 중에서도 잉어처럼 걷게 되었고,
발자욱을 옮길 때마다 발 밑에서 뽀드득 밟히는 눈의 진동이
다리를 타고 온몸으로 흘러들어
한없이 자유롭고 고요한 신비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다.
멀리 바라다보이는 인왕산이 어제의 인왕산이 아니었다.
하늘이 새로웠고,
광화문 거리의 빌딩들조차 새로웠다.
세상이 다시 창조된 것 같았고,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이틀 전 금요일 밤,
늦게 수영을 마치고 탈의실 밖으로 나오니,
관리 아저씨가 정수기 옆에서
쓰레기통의 검은색 비닐봉지를 교체하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귀찮고 하기 싫기만 한 일을
묵묵히 하시는 그분이
‘쓰레기를 치우시는 그리스도’로 비쳤다.
장-프랑소와 밀레가 관상한 ‘이삭줍는 그리스도’가
생생하게 현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아저씨, 참 훌륭한 일을 하시네요”.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인사에
아저씨는 순진한 소년처럼 행복해하셨다.
어제 아침에도 덕수초등학교 수영장에서 잉어처럼 수영을 하고
샤워실로 들어서자
뒤따라 들어온 어떤 아저씨가
바닥에 떨어진 비누 조각을 집어
수영복을 빨았다.
내 집 물건을 다루듯 비누를 아끼는 그 아저씨의 모습에서도
남들이 버린 조각 비누로 빨래하시는 그리스도를 관상할 수 있었다.
“버려진 비누 조각으로 빨래를 하시니,
참으로 훌륭하십니다”라는 나의 인사에
그 아저씨도 참으로 흐뭇해 하셨다.

작은 사건을 통해 내 안에 육화하시고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느님!
너무도 찬란한 보석이었다.

성탄 대축일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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