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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기행(4) 중세 프란치스칸들의 혁명적 예언성

by 이종한요한 posted Aug 0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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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예수회원으로  처음 교황에 선출되면서 엉뚱하게도 프란치스코 라는 이름을 택하여  생각하는 사람들을 좀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역사상 프란치스코 수도회원이었던 교황은 4명이 있었지만  프란치스코 이름을 택한 교황은 이번이 처음이다

 
 어느 종교나 양적으로 확장의 시기가 되면 제도화가 되기 마련이나 우리 카톨릭은 긍정적인 차원에든 부정적인 차원에든 최고의 제도화된 종교이다.  
  교황직은 세상에서 가장 긴 역사를 지닌 군주제의 상징으로 되어 있으며 , 교황은 이 세상 어떤 군주 보다도 더 막강하고 절대적 권력을 지닌 군주 중의 군주인 것이 교황직의 실상이다


 이런 현실에서 프란치스코 성인이 교황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성서의 다음 말씀에서 당위성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 과 같지 않다.”
 ( 이사야 55: 8)

 

그런데 예수회원이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프란치스코의 이름으로 교황이 되면서 이름만 프란치스코가 아니라   성 프란치스코의 가르침의 실천을 사목방향으로 정하면서   늙고 후진 교회 안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고 계신다


지난 2014년 교종 취임 1주년이 되는 날 이태리에서  항상 교회에 대해 곱지 않는 시선으로 기사를 내던 일 템포 (Il Tempo)라는 신문이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신문 첫 면을 장식했다.

 

“ 성 프란치스코가 흰옷을 입고 로마에 나타났다”

 

지금 교종은 이름만 프란치스코가 아니라 프란치스코의 모습을 보이는 교종으로 처신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참으로 감동적인 표현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야 말로 역사상 가장 긴 역사를 지닌 군주제의 후계자가 아니라 성 그레고리오 대교황이 선택하셨고 오늘까지 교황직의  공적 호칭으로 표현되는“ 주님 종들의 종” (Servus servorum Dei)이라는 칭호에 걸맞는 모습을 보이기에 교종(敎宗) 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분이시다.

 


프란치스칸 영성은 강의용이 아니라,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보이시는 것처럼 실천으로 이어질 때 폭발적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
 
 중세 때부터 이런 혁명적 모습은 프란치스칸 내부에서 발견 할  수 있는데 , 중세 프란치스칸들에게 의해 시작되었던 유럽 최초의 서민 금융기관인 “자비의산(Montes Pietatis)”이라는 금융제도는  프란치스칸 영성이 품고 있는 활화산 같은 폭발적 예너지를 발견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의 하나이다.
 
 성 프란치스코라고 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바로 “가난 겸손 단순함”이다.


 그중에 가난은 성 프란치스코가 부유함에 찌들려 부패한 교회를 쇄신하기 위해 긴급 처방으로 받아들인 것이며 이것이 바로 성 프란치스코가 이 세상을 살았던 모든 크리스챤중에 가장  복음적 인간으로 평가받고 있는 중요 이유의 하나이다.



 성프란치스코 당시 유럽인들이  해외무역과 여행의 시작으로 다른 세계에 대해 눈뜨게 되었으며 상업과 무역의 발달로 화폐경제가 시작되면서 돈에 대한 관심이 전통적인 신앙생활을 붕괴시킬 만큼 비중이 커지자, 이런 잘못된 풍조에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물질에 대한 매우 부정적인 가르침을 남겼다.
 
 그래서 성 프란치스코는 돈을 “마귀똥 Stercus diaboli) 로 표현할 만큼 물질이 주는 해악을 아주 강하게 거부했다.


   성 프란치스노가 가난이라는 주제를 강조함으로서 중세 교회의 부패를 막는 방부제 역할을 하게 되었다.


  프란치스칸들이  양적인 증가와 함께 서서이 창설자의 정신을 망각하면서 형식적인 집단이 되어 껍질만 화려한 집단으로 안주하고자 할 때 observantes 라는 개혁 운동이 있어났으며 이 운동에 의해 프란치스코회가 부패와 안락의 나락에서 벗어나 새로운 수도단체로 정화의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이 옵세르반테스 운동의 창시자 중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노(S. Bernard of Siena:1380= 1444)는  대중 설교가로서 당시 유럽 전체에 명망을 떨친 순회 설교가였다.

 성인은 먼저 대중적인 설교를 목표로 하던 프란치스칸 답게 평신자들을 상대로 한 예수 성명 (聖名)운동을 일으켰으며 , 그의 정열적인 순회 설교로 이태리 뿐 아니라 알프스 북부 독일에 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가 전파한  예수 성명의 신심은  교회에서 새로운 것은 아니었으나, 이 운동은 중세 신자들의 건전한 향상에 대단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성 베르나르디노는 신자들이 그 신심의 깊은 신학적 기초를 깨닫도록 그리스어 예수(ΙΗΣΟΥΣ)의 첫 세 글자를 로마자로 표시한 ‘IHS’를 고안하였다.

 

그는 이 문장으로  당시 사회에 흥행하고 있던 어떤 미신적인 상징이나 특정 파벌의 문장 등을 대체하면서 신자들의 신심 운동이 현실 삶의 증거차원으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holy-name-plaque-2.jpg


 성인이 고안한 에수 성명에 대한 문장



 성인은 자기 사부인 프란치스코의 가르침을  앵무새처럼 되뇌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당대에 맞게 적응하기로 노력했는데, 이때 그가 새로 시도한 것이 사부 프란치스코 가르침의 핵심인 가난에 대한 재해석을 통한  시대적 적응이었다


  두 세기가 지난  성 베르나르디노 성인 당대는 새로운 경제적 문제가 등장했다.
 상업과 무역을 통해 화패경제가 시작되면서 농경시대와 비길 수 없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새로운 사회 문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는 물질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 태도를 지녔던 스승의 가르침 처럼  돈을 마귀똥으로 치부하지 않고 물질 안에 들어있는 긍정적인 차원의 하느님의 뜻을   발견해서  크리스챤 삶을 질을 향상 시키는데 이바지 했다.

 

명설교가인 그의 강론은 당시 재력 있는 사회 인사들에게도 큰 감동을 주어 유명한  시에나 광장(Campo)에서 강론할 때  요즘 표현으로  라이언스 클럽 회원같은 사회 명사들도 많이 참석했다.
 그의 설교 주제의 15% 내지 20%는 당시 시에나 실업인들을 대상으로 한 경제에 대한 주제였다고 한다.


 

14세기 이태리에서 활동했던 사노 드 삐에트로(Sano di Pietro)라는 화가가 그린  시에나 시의 중심부인 캄포 광장에서  성인이 강론하는 모습이 있는데, 남녀를 구분하는 좌석 배치에서  많은 상류 계층의 청중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부와 권력의 특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다른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것을 경제적 주제인 강론을 통해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pietro-di-sano-st-bernardino-preachiing-in-siena.jpg


   저명 인사들을 상대로 경제에 대한 강론하시는 성 베르나르디노


 

오늘 많은 프란치스칸 영성 주제는 가난 , 작음의 영성 , 단순함, 겸손 같은  성서적 개념에서 시작한다면 중세 프란치스칸들은 급변하게 변하는 사회현실에서 생기는 경제적인 문제를 복음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으로 복음적 혁명을 시도했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의 해답을 복음에서 찾고자 하는 혁명적 시도는 유럽 초유의 금융제도의 창설이라는 대단한 새로움의 계기를 마련했으나 이것은 당시 교회 현실에서는 너무도 충격적이며 불가능으로 여겨질만큼 무모하고 위험한 주장이었다.

 
 당시 교회는  어떤 방법이나 동기로 던지 돈을 빌려주고 빌린다는 것은 그 자체로 고리대금으로 여겨 죄악시하며 금지했는데, 이것은 교회 경제의 유일한 원칙이었고 당시 신학계를 주름잡던 도미니칸들의 경제관에서 나온 것이었다

중세기 고리대금업자는 용서의 여지가 없는 지옥행 열차를 첫번으로 탄 존재로 치부되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성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성인도 모든 경제활동은 고리대금으로 여겨 금지했기에,  당시 크리스챤들이 아니었던 유대인들이 금융계를 휘어잡음으로서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 상인”에 나오논 샤일록의  횡포가 중세 사회의 고리대금이 주는 암적인 병폐였다.

이런 결과로 크리스챤들이 악덕 고리대금 업자인 유대인들에게 시달림으로  유럽의 큰 치부인 유대인 박해가  우리 크리스챤들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혐오증의 원인제공을 하게 되었다

 

이런 답답한 현실에서 성 베르나르도의 후계자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더 시대 적절히 재해석해서   경제적인 이윤을 합리적으로 분배함으로서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복음적 의미의 금융활동을 구상하게 되었고 이것이 Montes Pietatis (자비의 산)이란 이름의 서민 금융을 태동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Monte Pietatis 운동은 복자  베르나르디노 데  펠트레 (BernardIno de Feltre( 1439-1491)가 시작했으며, 일생을 투신한 노력으로  이 운동의 정착에 극적인 기여를 했다.


 당시 유대인들이 장악하고 있던 고리대금의 이자는 40%에서 80%에 이르는 살인적 인것이었는데,   프란치스칸들이 교회와 질시와 반대 속에서 시작한 몬테 피에타스는  처음에는 재력이 있는 신자들의 출자로 무이자로 운영하다가 한계를 느끼면서 당시 수준에서 상상이 힘든 4%에서 12%의 이자를 받음으로서 사회적 불행을 막고 건강한 시민사회를 이룩하는데 극적인 역할을 했다.



 1463년부터 1515년까지  무려 66명의 프란치스칸들이  이 운동에 참여해서 유럽사회를 고리대금의 악폐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방파제 역할을 했다.


이 운동의  영성적  근거를 중세 프란치스칸들은 “고통받으시는 그리스도” 에 아픈 마음을 보상한다는 관점에서 전개했다
즉 당시 예수님이 가장 마음 아파하시는 것은 고리대금의 착취로 고통받는 서민들의 삶이기에  새로운 금융제도로 이들을 도우는 것은 바로 고통받는 예수를 도우는 것이란 정감어린 권고로 많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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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 피에타티스 금융운동을 전하기 위해 사용했던 고통받는 그리스도의 문장

 

중세 프란치스칸들은 이런 혁명적 시도를 통해  처음으로 지상 삶에서 자본의 필요성과 내세에서의 구원에 약속이라는 두 개의 상반되던 개념을 하나로 통합시켜 이 세상 삶에서의 충실 , 즉 재화를 하느님의 뜻대로 사용함으로서 당시 사회의 악폐를 제거하는 당시 사회에 꼭 필요한 복음 혁명의 선두에 설 수 있었다.

 예수회원이신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프란치스칸 영성을 실천하심으로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프란치스칸인 우리들의 현실에서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성서에서 말하는 다음 말씀이 현실화된 것 같다.


“또한 여러분은 지금이 어떤 때인지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잠에서 깨어야 할 때가  이미 되었습니다“ (로마 13:  11)


 예수회 출신의 교종이 프란치스칸 정신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희망을 주고 있는 현실에서  소위 프란치스코의 가르침대로 살겟다고 서약까지 한 프란치스칸들이 지리멸멸한 삶을 보이는 이유는 무었인가 ?

 이 해답은 교종 프란치스코의 태도에서 배울 수 있다
교종은 항상 현실에서 출발해서 원칙으로 나아가는 귀납적 방법(Induction)으로 교회와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는데, 이것은 교종께서 처음으로 사용하신 방법이시다.
 프란치스코 교종이 반포하신 “복음적인 기쁨”은 바로 이런 귀납적 방법론의 전형이기에 많은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엇다.


 여기에 비해 우리는 항상 재래적 방법인, 원칙의 강조 부터 시작하는 연연적 방법(Deduction)에 익숙해있다

  시대 징표를 정확히 파악한 처지에서 프란치스칸적인 새로운 시도의 제시나  실천 보다 구태의연한  말장난에 도취되어 허송세월하는 동안 세상은 너무도 빨리 변했기에 결과적으로 안타깝지만 프란치스칸의 현실은 퇴행적 집단으로 남게 되었다.
 
 아이가 자랐는데, 옷을 바꾸지 않아 옷이 찢어지는 꼴이 된게 오늘 우리 현실의 부정적 일면이 아닌지 반성 할 일이다.

 시대 착오적인 법을 금과옥조로 여겨 물고 늘어져  자기도취에 빠진 동안  프란치스칸들은 조용히 시대착오적인 신심단체로 둔갑되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평화를 빕니다.”  "봉사자" "가난"  "작은자"  같은 프란치스칸 삶의 본질적인 단어들이 너무도 생각없이 남발되면서 변화에 필요한 열정을 무산시키는 반수면 상태에 머물고 있지 않는지 반성할 일이다.

 이런 단어는 입으로 외침으로 되는게 아니라, 생활의 실천으로 표현되어야 하는 법인데, 우리는 너무 입에 담아 내밷음으로 자기만족이나 도취 수준에 머물고 있지 않는지 반성할 일이다.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참담한 감회를 느끼게 되는 오늘 우리의 현실을 타파 , 탈출할 수 있는 좋은 처방전이 도착했다.
 
 프란치스꼬 수도회 소속 김일득 모세 형제가 관구 비서의 중책을 끝내고 안식년을 이용해 미국에 가서 용맹 정진하는 태도로 “프란치스칸 경제”라는 석사 논문을 완성했다.


 이 논문에 대한 평가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확실한 것은 오늘 우리 현실에서 프란치스칸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꼭 필요한 우황청심환임에는 틀림이 없다.

 

모세  형제는 이 논문에서 프란치스칸 영성의 원론적 나열이나  설명이 아니라 오늘 우리들에게 까지 대단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경제”라는 생활주제를 화두로 삼아 자랑스런 중세  프란치스칸들의  예언적 활약상과 성과를 설득력있게 전개하고 있다.


 중세 성 프란치스코의 제자들은 스승인 프란치스코가  “마귀의 똥: Stercus diaboli)이라고 부른 돈을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함으로서  악질 고리대금업자들에게  시달리던 시민들을 구하는 ”금“으로 변화시켰다.


 참된 영성은 현실의 바탕에서 출발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아무 힘도 없는 엉성으로 끝나고 만다는 것이 오늘 우리들의 현실에서 느끼는 감회라면 김 모세 형제의 논문이야 말로 똥을 금으로 바꾼  중세 프란치스칸들의 자랑스러움을 오늘 우리 현실에서 재현(再現) 재생(再生) 할 에너지와 지혜를 충전시켜 줄 우황청심환이라 믿는다.

 


오는 9월 중순 프란치스칸 출판사에서 출판을 준비하고 있다느 반가운 소식이다

 이 책을 출판되기를  희망속에 기다리면서  ,  책이 출판되면  이유없이 구입해서 단숨에 읽음으로  프란치스코 교종이 답답한 교회와 복잡한 세상에 신선한 생기와 희망을 주고 있는 것처럼  우리 모두가 우리 주위에 복음적인 매력을 풍길 수 있는 프란치스칸으도 다시 태어나길 희망하며 기다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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