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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은 사랑을 낳고 (겨울밤의 회상노트)

by 이마르첼리노M posted Feb 0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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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은 사랑을 낳고 (겨울밤의 회상노트)

 

1

새날을 알리는 안개 같은 여명

섣달그믐을 사흘 남겨둔 밤

자정을 넘긴 시간에

책상 위에 놓인 십자고상 앞에 앉아있습니다.

 

고요한 정막은

홀로된 자의식 속에서 연기같이 사라져버린 지난날들의

손 시린 회상을 하나씩 일깨우고

내 심신의 감관을 울리는 악기가 되어

내영혼의 깊은 골짜기를 왕래하시는 당신께

이를 들려드리게 합니다.

 

 

2

참말은 무섭고 거짓말은 부끄러워

내 과반의 인생을 돌아다보면

다시금 그 허술함에 새삼 아파옵니다.

 

정말로 추워본 사람들의 언어는 심히 단순합니다.

서로의 눈빛을 잠시 바라보기만 해도 둘의 마음을 모두 알아차립니다.

어떤 수난도 한철의 아픔으로 지나갈 뿐 절망하지 않습니다.

속살에 박힌 피멍도 실인즉 그 자신이 입힌 자해의 상처가 대부분입니다.

 

사랑이란 끊임없는 헌신의 가지 끝에 맺히는

겨우 얼마간의 담백한 열매일까요?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았던 영혼의 경이가 문을 닫는 것은

모든 것을 소유하려는 탐욕의 결과일 때가 많았습니다.

비 개인 하늘의 무지개처럼 그 시간이 너무나 짧았습니다.

그 때마다 저는

지고 온 무거운 짐을 종내 다시 지고 떠나는 길손처럼

주섬주섬 파장의 봇짐을 꾸렸습니다.

 

분별을 헤아리는 차가운 자성에도 뒷걸음치는

이 쓸쓸한 체념을 헤아려 주소서

불면의 긴 밤을 불러오는 저의 허약한 염원을 헤아려 주소서

무수한 꽃가지로 피어나는 내 삶의 사념에서 오직 한 줄기 밑뿌리로

고요한 소망의 부동의 자리를 잡아 내 신심의 가장 깊은 그곳에 좌정하여

슬픔의 깊은 골짜기에서 허덕이는 저를 돌보아 주소서

 

 

3

진실에 굶주린 듯 가슴이 울적하고 막막한지

주체할 수 없는 설움에 가위눌린 소녀처럼 소리 지를듯합니다.

인적조차 없는 해변을 저녁 해를 받으며

어디론가 쓸쓸히 떠나고 싶은 충동일 때가 많았습니다.

하늘이 마구 폭포처럼 쏟아져왔으면 좋으련만

아직도 배고픈 것 같고 보랏빛 놀 같은 이 그리움은

목마른 계절풍같이 한 번씩 내 가슴에 다가와

슬프고 어지러운 입맞춤을 했습니다.

유리창을 거쳐 내다보는 별의 저렇듯 어진 눈매들

애달픈 향수와도 같은 감정이 아프게 내 가슴을 죄인다고 할지

그리움이 이토록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이 아름답고 세심하고 아픈 관심은 

나의 병일까요

 

사랑이란 참으로 모든 감정이 삭아 내린 자국에 돋아나는

청순한 보답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실로 하나의 그리움을 품어 간다는 일은

오뇌와 고뇌의 많은 중량을 품고 가는 긴 회임과도 같았습니다.

견디는 일만이 우리의 구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무한정 무엇이건 찾아가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 아늑하고 서러운 그리움을 지켜 갈 수 없었습니다.

갈망과 회의와 고독

이러한 여러 가지가 수시로 불거져 나오는 가시가 되어

송알송알 연한 핏방울을 불러내었습니다.

 

까다로운 자의식과 불행한 과민

쉼 없이 뿜어 속속들이 날 적시는 애환과 쓸쓸한 허심들

사람의 정신만은 무작정 패배를 꺼리고 겁내어

그 부스러진 조각들을 황급히 기워 맞추곤 하는 일이

차라리 측은하게 여겨지고

사뭇 채색으로 어지러워진 어린이의 도화지처럼

수선스럽고 산란합니다.

 

거역할 수 없는 허탈이 내 손을 잡아

무기력한 권태의 골자기로 데려가는 듯싶고

둔중한 체념의 습성 속에서도

상상할 수 없었던 눈부신 기쁨은

내 마음 안에 보이지 않는 소나기로 퍼붓고

마구 출렁이는 강물이 되어 흘러갔습니다.

무섭고 기막힌 필연의 약속은

진한 보랏빛 갈망과 기원으로 피어났지만

높은 인정에 목마르고 다함없는 진실에 눈을 팔다가

가슴은 죄이고 눈은 근시안이 되어 버렸는지 모릅니다.

다 바보이고 비겁자이고 눈치장이로 살다가

그처럼 죽을지도 모릅니다.

내 심장이 멎을 때

내 눈에 비치는 다정한 눈빛이 없는

내 주위는 얼마나 무서울까요.

 

 

4

기울 줄 모르는 염원의 달

오랜 상심의 바위에서 간절히 뽑아 올리는 기쁨

오직 한 가닥 꺼버릴 수 없는 불이

영혼 속에 불타고 있어

지금껏 서로를 버리지 않고 추운 길을 밟아왔다고 하겠습니다.

 

당신을 피해간 나의 땅 끝에서

내가 만나본 맨 처음의 얼굴은

다른 누구도 아닌 부활하신 주님,

실로 먼저와 계신 바로 당신이셨습니다.

 

지금은 거부하지 않고

주님의 손길 낮달처럼 서글프게 걸려

저를 부르고 계심에

주님을 떠나 아무데도 가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은 두려움 없이 슬픔과 마주 앉으며

오히려 이별 속에서 당신을 만나는 심정의 자제력을

조금씩 배워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진실로 사랑하기 위하여 내가 선택했었으니 만큼

아무 때 어디 있거나 나를 지켜보시는 그 눈길에

나도 당신을 지켜보는 뜨거운 눈길로 다가가고 싶습니다.

 

명멸하는 회상 안에서

주님의 제단에 올려놓은 것 중에서 가장 외로운 촛불이요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불빛이 되려는

저의 이 가난한 소망을 드립니다.

 

누구도 빼앗지 못할 진실의

누구에게도 손실을 끼치지 않는 예절의

가장 정직한 가책의

그러한 심지 위에

정결한 백랍을 입힌 한 자루의 촛불의 광명이

얼마나 숙연하고 찬란한 아름다움일까요.

참으로 한모금의 눈물을 담았을 뿐,

다시없이 춥고 헐벗은 이 염원의 손길을 어루만져 주소서

 

 

5

거룩하도록 송구한 느낌의 감사를 한 아름 품어 안고

소용돌이로 치미는 거센 슬픔을 간신히 억누르며

달을 따라가는 큰 바다의 밀물처럼

나도 거리낌 없이 당신을 찾아 나서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터무니없는 위선으로 나 자신을 묶어

당신과 격리해 두고 죄책감에 깊이 빠져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상처를 고치는 성유 같은 슬기로

나를 바르게 이끌어 주소서

정녕 구원 받을 수 있는 궁극의 지표를 짚어 날 보게 하시고

다시는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당신의 함께 계심을 깨닫게 하소서

 

귀의할 수 있는 종착의 한 점을 인식하면서

순간 속에 머무는 영원을 찾으려 합니다.

당신의 부재가 나의 습관일 때

당신에게서 나의 부재는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잠에서 깨어날 때

맨 먼저 함께 있어주는 황홀한 눈매를 압니다.

 

모든 새벽에 미소로 인사하고

모든 밤에 침묵으로 기도드립니다.

이 기쁨 처음엔 꽃씨더니

밤낮으로 자라나 큰 기쁨이 되고

위대한 꽃나무가 되어 계셨습니다.

 

당신이 내게 붙여주신 불은

가책의 바람으로도 끌 수 없습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지금껏 아니 영원히 솟아오를 수 없었을

하나의 물줄기와 한 그루의 나무가

당신의 호출을 입어

내 안에 흐르게 되었고 자라게 되었습니다.

당신에게 드린 건

나의 깊은 마음 속 가장 영롱한 눈물이었습니다.

 

누구에게도 치욕을 끼치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때문에 나 자신은 노상 지쳐 있어야 했고

산란한 모순에 말려들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못 드린 행위의 그 깊은 자각 속에서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당신께 돌려드리려 합니다.

 

끊임없는 목마름 속에 소리치는

고단한 사랑의 서러운 눈시울로

갈망과 비탄과 그 나머지 한 가닥 빛을 찾는 신앙

때로는 터져나갈 듯 벅차있고

더러는 너무나 마음이 비어 허적한 그 곳에

유일하게 함께 계시면서

집 떠난 작은 아들의 귀환을 기다려 주신 그 자비는

감사와 감동으로 감격의 전율을 느끼게 하셨습니다.

 

당신의 함께 계심 안에서 누리는 자유

영원은 그렇게 시작 되었습니다.

성실한 사랑은 영원의 지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허용 된 시간이 다하기 전에

신의를 저버리고 다시 나를 찾는 어리석음을 반복할까 두렵습니다.

저로 인하여 생긴 상심의 그 모두를 낱낱이 용서해 주소서

 

하나의 믿음과

하나의 희망과

하나의 사랑에 따라오는 무궁한 고뇌를 나는 아주 비싸게 샀고

수난과 죽음을 거쳐 마침내 부활의 영광을 얻는 법을 배웠습니다.

 

저는 당신 앞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걸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2016. 1. 5 새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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