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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laluddin Rumi(1207-1273)-터키 수피(이슬람신비가)

by 영성사무국 posted Mar 0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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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고통과 괴로움을 만들어냈다. 왜냐하면 이것들을 통하여 마음의 기쁨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감추어진 것들은 이들을 통해서 드러난다. 보이지 않는 형태의 아름다움은 표현을 넘어서 있다. 빛으로 비추어진 눈을 빌려와서 보아라. 형태안에서 우리가 보는 아름다움은 그분의 반영이다. 우리가 하느님을 갈망하면 하느님은 우리의 시야안에, 생각안에 우리의 자아보다 더욱 가까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물보다 더욱 가까이 다가오신다.

모든 만물들, 밤과 낮은 하느님을 드러낸다.

모세와 파라오는 너 자신의 존재 안에 있다. 너는 이 둘이 대립된 요소를 자신안에서 찾아야 한다. 인간은 창조의 정점이다. 인간은 세상 안에서 자신안에 샘솟는 그분의 속성들을 드러내 보인다.

너의 모든 번뇌는 가질 수 없는 어떤 것을 바라는 데서 생겨난다. 그 바람을 멈출 때 더 이상 번뇌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에 대한 욕망은 인간의 진정으로 원하는 궁극적인 대상을 빼앗아 간다. 인간안에는 사랑, 고통, 욕망, 바람이 있다. 인간은 그와 같은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결코 평화를 가져다 주지는 못한다.

형제여, 고통을 견뎌라. 너의 충동적 독소들을 피하라. 그렇게 하면 하늘이 너의 아름다움에 고개를 숙일 것이다.

모든 것이 하느님께로 왔다는 것을 깨달은 자에게는 모든 것은 그분안에서 하나다.

인간은 하느님의 엄격한 면을 보고 싶어 하지 않고 단지 관대함만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하느님은 관대함안에 엄격함을 숨기시고 엄격함 안에 관대함을 숨기신다.

인간은 하느님의 권능의 손 안에 든 화살과 같다. 하느님은 여러가지 일에 쓰기 위해 인간을 고용한다. 주인은 활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활은 도구이며 수단이다. 기도는 일어서고 절하고 무릎을 꿇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잠자거나 깨어 있거나 쓰거나 읽거나 항상 기도는 너와 함께 있어야 한다. 그 기도가 하느님에 대한 기억을 항상 불러 일으키게 하라. 네가 하느님을 늘 마음에 간지하게 되면 조금씩 너의 내면을 빛이 비추이게 되고 이 세상을 넘어선 자유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자기를 낮추는 삶은 자신을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충만하게 만든다. 단순한 삶을 돌아가는 것은 참지혜를 얻는 것이다.

하느님의 자비는 물이다. 그것은 오직 낮은 땅으로만 흐른다.

마귀란 무엇인가? “나는 부를 원한다, 나는 지혜를 원한다, 나는 존경을 원한다” 네가 너의 내면안에서 일어나는 이런 외침들을 극복하지 않는다면 신비로의 입문과정에 들어갈 수 없다. 하느님께 청원하고 마귀의 외침을 불살라 버려라.

그분의 이름은 모든 영들중의 으뜸이다. 그분의 사랑은 영혼안에 있다. 그분은 피난처이시고 희망이시다. 그렇다면 두 마음을 가지지않고 주저없이 그분의 이름이 불려지게 된다.

지성은 인간의 날개이며 깃털이다. 지성의 열쇠 없이 하느님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자기의지의 결과이다. 안내자의 없이 진리의 길로 들어가는 자는 이틀 여행길을 수백년 걸리게 한다.

하느님의 사람에게서 가르침 받은 제자들은 순수하고 정화된 영혼을 갖게 된다. 그러나 하느님을 사칭하는 위선자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그의 이론은 배운 자들은 그와 같이 될 뿐이다.

수영하는 사람과 익사하는 사람은 같은 물 안에 있다. 익사하는 사람은 물에 의해 행동이 좌우 되고 지배받는다. 반면 수영하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과 자유로 행동한다. 익사하는 사람에게서 행해지는 모든 행동-그에게서 나오는 모든 행동과 말- 물에서 기원한다. 성인들도 이와 같다. 그들은 죽음앞에서 죽었다.

얼마만큼 빛이 집안을 비추느냐는 창문에 달려 있다. 마치 달빛이 동과 서를 비추듯.

너는 마음의 거울 안으로 들어오는 빛을 아느냐? 순수함을 아는 사람만이 거기에 보여지는 이미지(상)들을 안다.

가장 높은 단계 안에서 일치는 하느님안에서 참자기 존재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기없음이다. 자기없음 혹은 자기부정은 참자기 존재 혹은 자기 확인이다.

영적인 여정 또한 인간은 연속적인 일치와 분리, 삶과 죽음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가 죽은 각 시간마다 그는 다시 태어나고 참 자기 존재의 궁극적 지점에 가까워진다. 영혼이 요람으로 인되될 때 감각과 인식과 이미지를 벗어나 일치안으로 들어간다.



오! 당신의 아름다움 안에서 나의 아름다움을 봅니다. 나는 오로지 당신의 이미지를 비추는 한 거울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물들은 한계지워지고 정의되어진다. 그러나 마음의 거울은 한계가 없다. 여기에서 지성은 침묵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아니면 우리를 잘못 인도한다. 왜냐하면 마음은 그분과 함께 있기 때문이다. 실지로 마음이 그분이다. 나의 마음은 욕망이 없어 비어 있어 천국과 같다. 그 안에는 하느님의 사랑외에는 아무것도 작용하지 않고, 그분과의 일치의 이미지 외에는 아무것도 머무르지 않는다. 나는 선과 악의 집을 깨끗이 치웠다. 나의 집은 그분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차 있다.

너의 마음의 거울이 순수하고 깨끗할 때 물과 찰흙의 영역을 넘어선 그림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림들뿐만 아니라 화가도.

밤과 낮이 함께 앉고, 물과 불이 동료가 되고 엄함과 관대함이 혼인을 하고 찌꺼기가 순수함과 섞이고 일치과 분리가 평화를 이루고 신앙과 불신앙이 하나가 되고 우리의 임금과 일치가 된 향기로움이 동쪽 바람과 섞일 때 얼마나 감미로운가!

인간은 세가지 상태를 지닌다. 첫번째는 하느님을 바라보지 않고 어떤 이와 어떤 것-남자, 여자, 부, 아이들, 보석, 땅-을 경배하고 섬기는 것이다. 다음은 그가 어떤 지식과 깨달음을 얻게되면 그는 하느님외에는 다른어떤 것도 섬기지 않는다. 마지막 단계로 그가 이 단계안에 나아가면 그는 침묵으로 들어간다. “나는 하느님을 진정 섬기지 않는다” 혹은 하느님을 진정으로 섬긴다”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 즉 그는 이 두가지 상태를 떠난다. 이 세상안에서는 그러한 근거의 말들은 사람에서 오지 않는다.

태양이 다가오면 얼마나 많은 별들이 사라져가는지를 주목하라. 그리고 얼마나 많은 시냇물들이 대해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어떤 사람은 음식을 먹으면 더러움을 발산하지만 어떤 사람은 완전히 하느님의 빛으로 변모된다. 같은 음식을 먹고 어떤 이는 탐욕과 시기를 낳고 어떤이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낳는다. 태양이 나타나면 별을 볼 수 없다. 하느님과 결합된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완전히 하느님의 속성에 흠뻑젖어 있을 뿐이다.

대화일치영성자료실 카페에서

http://cafe.daum.net/dialogueunity/7uwa/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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