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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스케치 1

by 이마르첼리노M posted Aug 0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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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스케치


말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얼마만큼의 침묵이며
빼어난 그림은 알맞게 자리 잡은 여백이 있다

침묵과 여백은 창조주의 언어요
아버지의 넉넉한 품
어머니의 푸근한 가슴
생명의 시원에서 태를 열게 한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내 인생의 어느 날
나는 내가 그려온 그림을 보았다
여름의 열을 이기고 가을의 평온에 다다르고 있는지.

침묵이 많지 않던 젊은 시절엔
가을에 죽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때는 죽음이 멀리 있어 그런 생각을 많이 했고
지금은 남은 시간이 얼마 없어 삶의 생각을 많이 한다

가을에 죽으려면 여러 가을을 아름답게 살고
더 속속들이 가을에 정들어야 하지 않을까
내 살을 가을에게 내 주고
내 영혼도 가을 산하를 굽이굽이 넘어가려면
神이 머물 여백을 더 많이 마련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어디쯤 왔나
여름을 지나 초가을의 문턱에 와 있다
여름의 열기를 찬물로 씻어내
백가지 애환을 눈 감기고
느긋하고 편안한 도취
전율이 따르지 않는 한 가닥의 향심에 머물
안정된 좌석을 마련하려 한다

해질녘 갯벌에 비치는 찬란한 광휘
하늘에 얹혀가는 구름
더 먼데로 눈길을 던지면
그 아득하고 무량한 곳에 무엇이 있을까.

불러도 또 불러도 대답이 없는 분을
다시 부르는 호명의 목소리를 하늘로 보낸다면
저기 손시렵게 새파란 하늘은 어떠한 메아리를 울려 보낼지.
내 인생의 하오에 접어들어
이젠 많지 않은 시간
낡은 기계를 정비하듯이
내 자신의 남루를 골똘하게 손보아야 겠다

수 없이 찾았건만 아직도 무량한 허망들을 살펴보아야지
느끼면 느낄수록 하늘의 음성을 내 한사코 피해 온 일이 없었나를 돌이켜 보아야지
그리고 그 까닭을 되뇌어도 보아야지

가을의 문이 열리는 곳에
제일 영롱한 내 오성의 창을 열어놓아야지
일관된 삶과 충실로 엮은 선을 표나지 않게 감추고
아버지가 주시는 기쁨의 명약으로 상처를 다독여야지

마음이 길을 열면 어디서나 함께 있고
무게도 두께도 없이 온전한 모습으로 언제나 곁에 있을 수 있다.

내가 말하는 건
반은 희구요
반은 어림집작의 몹시 조심스런 나의 믿음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어느 날엔가 낙엽이 떨어지는 작은 음향 속에
고요하고 유순하게 영면에 안기는 가을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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