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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찾는 하느님 나라는 어디에?

by 이마르첼리노M posted Jul 1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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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찾는 하느님 나라는 어디에?

 

교회에서 찾는 하느님 나라, 세상에서 찾는 하느님 나라, 다음 세상에서 찾는 하느님 나라. 나는 어디에서 하느님 나라를 찾고 있을까요?

 

교회 안에서만 찾는 하느님 나라는 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기에 믿지 않는 사람들과 우주라는 거대한 피조물에 대한 심각한 관계의 부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 자체를 하느님 나라로 삼는다면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으로부터 나오는 자기중심적인 지배의 나라에서 꼭대기를 점령하지 못하는 실망을 안겨줄 것입니다.

 

나중에 올 하느님 나라, 이 세상이 아닌 다음 세상을 천국으로 삼고자 한다면 지금, 여기서 나와 관계를 변화시키는 복음의 핵심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하느님 나라로 삼고자 하는 우리의 관심은 교회도 아니고 세상도 아니며 다음 세상도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의 다스리심을 경험하는 개인과 사회의 모든 왕국이나 보상을 초월하고 그것을 능가하는 거기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삼위일체 하느님의 관계적 내어줌이 너와 나와 피조물과 나 사이에서 경험될 때 순수한 하느님 체험이 나오고 이 체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찾는 하느님 나라는 세 가지 관계 안에서 경험됩니다. 하느님과 나, 너와 나, 그리고 모든 피조물과 나 사이에서 관계 맺는 방식에 의해서 경험되는 실재입니다. 나는 피조물의 아주 작은 하나이며 이 하나인 내가 하느님으로부터 생명의 에너지를 받아서 너와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나를 내어주면서 경험합니다. 그 나라는 지금이라는 시간 속에서 영원을 향한 미래로 열려있습니다. 그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고, 현재 진행 중이며, 미래에 완성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이 영원이며 영원은 지금의 연속선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내면에서 성령의 거룩한 활동을 간직하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내어주시듯, 아들이 아버지에게 내어드리듯, 너와 피조물을 통해 나에게 전달된 하느님의 자비와 선을 너와 피조물에 내어주는 거기에 구체적인 하느님 나라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나라는 이 모든 것을 초월해 있습니다. 언제나 여기에 있고, 여기가 아닌 데 있으며, 언제나 지금이면서 지금이 아닌 데 있습니다. 이미 와 있지만 아직 완성되는 과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이 사는 곳에 있다. 하느님은 사람들과 함께 계시고 사람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묵시21,3) “하느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 (루가 17,21)

 

관계 속에서 발견되는 하느님 나라가 아니라 밖에서 찾는 하느님 나라는 조작된 하느님 나라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인과응보의 틀에서 만든 하느님 나라는 변화가 없는 나만을 위해 찾는 나라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나라에서는 자기가 옳고, 우월하고, 구원받았음을 자랑하느라고 시간과 생명의 에너지를 낭비합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명분을 크게 만들지만 하느님과는 전혀 무관한 자아도취에 근거한 결과만 남아 누구와도 가까이 지낼 수 없게 됩니다.

말씀의 통치는 나의 변화를 위한 것이지 타인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말씀과 그분의 삶에서 드러난 모범을 받아들여 내 안에 말씀이 잉태되고, 잉태된 말씀은 안으로부터 과거를 지우고, 현재를 살기 위해 미래를 내다봅니다. 그 변화는 믿음으로 드러나는 나의 태도로 증명됩니다. 사용하는 단어, 억양, 표정과 눈빛, 몸짓의 변화, ,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을 닮으려는 데에 모든 에너지를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나의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도가 변화를 위한 성령의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천상의 순간인 지금이 하느님 나라의 때이며 내가 관계를 맺는 곳이 하느님 나라의 장소가 됩니다.

 

하느님의 통치, 곧 하느님의 다스리심은 예수그리스도의 육화로 시작되었으며 공로가 아닌 선물에 바탕을 둔 새로운 사회질서를 선포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상성이 지닌 자비의 얼굴입니다. 하느님의 다스리심을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하느님 나라의 실재(實在)입니다. 그러므로 자비롭고 선하신 하느님 모습은 기쁨에 찬 나의 얼굴로, 하느님의 품에서 누리는 나의 자유로, 지금 여기서 선포되는 복음으로, 관계를 비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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