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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당신이 살아 있는 동안, 죽음의 중요한 역할을 이해하기

by 김상욱요셉 posted Nov 0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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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당신이 살아 있는 동안, 죽음의 중요한 역할을 이해하기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의 가능성은 우리와 함께 한다. 어느날 죽음이 우리에게 갑자기 다가올 수도 있고, 더 많은 경우처럼, 죽음은 가볍게 우리 어깨를 두드리며 이제 우리가 떠나야 할 시간임을 알려준다. 우리가 이것을 (머리로서가 아니라) 심도있게 이것을 안다면, 우리는 덜 옹졸해지고 다른 이에게 더 감사하며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 도움이 되는 현실을 사교 모임으로 회피한다면, 되돌아오는 것은 전율이나 웃어넘김이나, 더 나쁜 경우라면, 감사의 말 대신 비난하는 말일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서구에서 문화적으로 익숙해진 반응이 된 것 같다.

미카엘 데 몽테뉴는 그의 선택된 수필들(Selected Essays)’에서 아프리카 한 부족에 대해 말한다. 그 부족은 의식(예식) 때 탁자 이에 해골을 놓곤 하였다. 이렇게 한 이유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그들의 시간이 한정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또한 다른 이와 함께함의 기쁨에 그리고 그들 앞에 있는 음식의 기뻐함에 더 가치를 두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것에 대해 리차드 보드는 자신의 책 처음으로 당신이 작은 배 노 젖기를 해야한다.’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 “내가 죽을 그 날이 다가올 것이다. 그러하기에 나에게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나에게 할당된 시간에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나는 두려움에 얼어붙어 해변에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고, 아니면 나의 항해를 시작하고 바람 가운데 떨어지기도 하고 쏫아오르기도 할 수 있다.

아침기도와 저녁기도 때 죽음을 우리 앞에 두는 것과 낮 동안 죽음이 우리와 함께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우리가 적절한 시각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우리가 죽는다는 것과 다른 이들도 그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덜 비난적이 되고 덜 요구적이 되고 덜 까다롭게 된다. 또한 친절이 우리에게 뿌리내리게 하고 어려운 사람들과도 잘 지내게 한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방어기제들을 사용하는 이들도 자신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사실과 죽음을 자신 앞에 두는 것은 그 순간에 그가 할 수 있는 최상의 것임을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우리 앞에 죽음을 두는 것은 많은 것을 바꾼다.

 

첨언) 프란치스코에게 죽음 크게 세 가지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죽음은 우리가 일상 안에서 주님을 따르기 위한 죽음이고, 두 번째 죽음은 육신의 죽음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죽음은 영혼의 죽음입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덕들에게 바치는 인사에서 덕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의 죽음을 통해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온 세상 사람 그 누구도 정녕 먼저 자신이 죽지 않으면 여러분 가운데 어느 하나도 가질 수 없습니다.” 자기 죽음이 없는 덕 추구는 보이기 위한 것이고, 우리를 하느님 세계로 다가가지 못하게 합니다. 프란치스코는 덕은 하느님과 함께함 가운데에 형성되는 것이고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간파하였다. “하나의 덕을 거스르는 사람은 하나도 갖지 못하고 모든 덕을 거스르게 됩니다.” 남을 돕는데 자기를 높이려는 마음에 남을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 표면적으로 애덕이지만 겸손의 덕은 없습니다. 이는 깊은 측면에서 그는 아무 덕으로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가 피조물의 노래(태양 형제의 노래)’에서 사람과 관련하여 이런 말씀을 합니다. “내 주님, 당신 사랑 까닭에 용서하며 병약함과 시련을 견디어 내는 이들을 통하여 찬미받으시옵소서. 평화 안에서 이를 견디는 이들은 복되오니, 지극히 높으신 이여, 당신께 왕관을 받으리로소이다.” 여기서 말하는 용서와 인내는 의 죽음을 통해 하느님의 세계로 나아간 덕들을 말합니다. 프란치스코는 하느님과 함께함이라는 세계 안의 복됨과 영광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노래에서 이어 프란치스코는 육체의 죽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일상의 죽음으로 하느님의 덕으로 나아간 이에게 육체적 죽음은 단순히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러하기에 프란치스코는 육체 죽음을 죽음 자매라고 부를 수 있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일상의 죽음을 살지 못한 이들이 맞이하는 육체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불행하옵니다, 죽을 죄를 짓고 죽는 이들이여!” 그리고 일상의 죽음을 살아간 이들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복되옵니다. 당신의 지극히 거룩한 뜻을 실천하며 죽음을 맞이할 이들이여, 두 번째 죽음이 저를 해치지 못하리이다.”

일상의 죽음과 육체의 죽음과 영혼의 죽음은 따로 떼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의 죽음을 통해 하느님의 세계로 나아가는 이들은 덕들의 향연을 누릴 것이고, 이 연장선 속에서 다가오는 죽음 자매를 맞이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이 세상에서 누리던 그 향연을 죽음 이후에도 이어갈 것입니다. 사랑이신 하느님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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