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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들여진 존재와 받아들인 존재는 하나의 몸이다.

by 이마르첼리노M posted Jan 2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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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들여진 존재와 받아들인 존재는 하나의 몸이다.

 

내가 하느님께 받아들여진 존재가 되는 것과 하느님께서 나에게 받아들여진 존재가 되는 것을 허용할 수 있겠는가? 내가 너에게 받아들여진 존재가 되는 것과 네가 나에게 받아들여진 존재가 되는 것을 허용할 수 있겠는가? 삼위일체 하느님의 내어주심과 받아들여짐의 흐름 속에는 일치를 이루시는 영의 흐름이 있다. 이 흐름에 사로잡혀 있으면 다수이면서 하나라는 사실을 개별적으로 느낄 수 있다.

 

예수께서는 죄인들과 버림받은 이들, 내쳐진 이들, 극도로 궁핍한 이들을 성대한 잔치에 초대하셨다. “마을 어귀로 가서 선한 사람, 악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리고 오너라” (마태 22,9-10) 우리는 이런 초대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있기를 싫어할 뿐 아니라 배타적으로 밀어내는 교회가 되어가고 있다. 자신의 경계구역을 위협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경계구역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완전히 다 내려놓으시고 다른 위격에 의해 받아들여지는 것을 받아들인다.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과 가서 그와 같이 사는 것이 핵심이다.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진다는 일은 대단한 모험이다. 그러나 서로를 받아들이는 관계가 아니라면 누구와도 깊이 있는 만남이 될 수 없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구별하고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려고 할 뿐이다.

 

하느님과의 일치는 그분의 몸에 연결되어 있음을 아는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과 일치의 흐름에 끌려 들어가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에서 산다. 하느님과 일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우리에게 기쁜 소식은 하느님과 우리가 일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때는 내가 힘을 잃었을 때 경험한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너무나 많은 내가 내 안에 자리를 잡고 있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에게서 나를 해방 시키는 때는 하느님의 선하심과 자비가 흘러가도록 하는 때이다. “사람에게 자유를 주는 법”(야고보 2,12-13)을 관계 안에서 행할 때 비로소 내 안에 있는 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만을 챙겨보겠다는 손익계산서를 들고서는 누구와도 받아들여지거나 받아들일 수 없고 갈등만 남아있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선해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선하셔서 나를 사랑하신다. 은총은 하느님이 거저 주시는 무상의 선물이지 나의 업적과 공로에 따른 보상이 아니다. 그것이 보상이라면 더 이상 은총은 은총이 아니다. 스스로 사랑받을 만큼 합당한 사람처럼 꾸미려고 하지만 하느님 앞에 사랑받기에 합당한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합당한 자격을 갖추겠다는 명분으로 온갖 기도와 희생을 셈하면서 그것이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하느님께 받아들여진 나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나에게 받아들여진 하느님은 나의 몸이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생명이 나에게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생명으로 너를 받아들이고 나는 너에게 받아들여지기를 원하는 것이다. 거기에 하느님의 거처가 있고 하느님의 나라가 있기 때문이다. 서로를 내어주고 받아들이시는 영의 흐름은 관계 속에서 일치를 이룬다. 여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으며 대단한 신학적 지식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또한 많은 교육과 도덕성이 필요한 것도 물론 아니다. 숨을 쉬면서 주고받기만 하면 된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흐름에 맡겨있기만 하면 된다. 하느님의 무상성에 맡겨진 나는 거기서 쉬고 사는 법을 배운다. 상호 간에 자신을 내어주고 받아들이는 흐름이 나를 통하여 너에게 흘러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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