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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을 씻어주는 성사(聖事)

by 이마르첼리노M posted Apr 1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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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을 씻어주는 성사(聖事)

 

공관복음에 나오는 최후 만찬이 내어주는 몸과 쏟는 피라는 것을 드러내 준다면 백 년 후에 써졌다는 요한복음에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이야기로 나온다. 내어주는 몸과 쏟는 피의 현장에서의 구체적 진실이 발을 씻어주는 관계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발을 씻어주는 일은 일차적으로 겸손하게 내려가는 일이다. 관계의 회복은 내려가는 가난과 겸손하게 섬기는 데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가난과 겸손은 하느님의 동등성을 포기하고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과 우리 발밑에서 허리를 굽혀 손수 발을 씻어주시는 모습 속에서 볼 수 있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이제 나와 상관도 없게 된다.”(요한 13,8) “네가 너희의 발을 씻어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요한 13,14) 내어주는 몸의 진실이 관계 안에서 드러나도록 하려면 수단이 메시지와 똑같아야 한다는 말이다. 오직 사랑만이 사랑을 찾을 수 있으며 주거나 받을 수 있게 한다.

 

신앙에 대해 말하기 전에 신앙을 살아 내야 한다. 사랑을 맛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은, 단순히 미사에 출석해서 영성체하는 것에서가 아니라 말씀과 성체의 진실을 드러내 주는 관계에서 맛보고 느낄 수 있다. 하느님을 찾는 값비싼 노력이나 사람들을 섬기는 일을 하지 않으면서 예배에만 관심을 보인다면 하느님과 상관없는사람들이 된다. 하느님의 에너지는 전염되는 에너지다. 자신의 표현과 에너지가 죽어 있으면 사랑이 전달되지 않는다. 믿음이 드러나는 관계는 계산을 멈추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계산을 하는 것은 아직 자기중심적 울타리에 갇혀 있는 것이다. 계산을 멈추는 것은 하느님 사랑에 연결되어 있을 때이다. 받은 사랑에 응답하는 사람만이 계산을 멈춘다. 은총의 질서에는 계산하지 않는 하느님이 계시다. 그분께서는 오직 주시기만 하신다.

 

우리는 새로운 삶의 방식에 따라 생각하지 않고 새로운 사고방식에 따라 살아왔다. 아는 것과 진리가 같을 수는 없다. 진리는 믿음 안에 자리 잡는다. 하느님을 아는 명료함이 어려운 사람에게는 그 명료함이 추하고 천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발을 씻어주지 못한다. 내려가기도 쉽지 않은 데다가 내려가서 만나는 것이 더럽고 냄새나는 발과 만나는 것이다. 관계에서 경험하는 다름과 차이에서 오는 불편함을 추하고 천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조물을 개별적으로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관점에서 보면 추하거나 천하거나 하찮은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것이 은총이다. 추하고 천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통해 보물을 발견하는 믿음만이 중요하다. 결정적 죽음 이전에 죽어야 할 것은 윗자리에서 내려가기 싫어하는 나다. 나에게서 내가 해방되는 자유는 너를 씻어주는 자유를 통해 얻을 수 있다. 객관적으로 하느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일이 바로 그 일이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하느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이미 고향에 돌아온 것이다. 우리가 받을 상속은 이미 우리의 시간에 앞서서 주어진다. 그러면 우리는 올라가고 입증하고 방어하는 대신에 하느님의 선하심을 공유하면서 하느님 나라의 삶을 지금 여기서 누릴 수 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 20,17-28)

 

사랑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되돌려 받기를 기대하지 않게 되기까지는 사랑이 아니다. 우리가 주는 것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되돌려 받기를 원하는 순간 모든 사랑이 무너지게 된다. 이것이 변화시키는 신적 에너지의 본성이다. 눈앞의 이익만을 찾는 계산적인 정신은 그 메시지를 핵심에서 왜곡시킨다. 삼위일체로부터 분출되는 사랑의 에너지가 예수님에게로 이어져 나에게까지 왔다. 사랑의 눈길을 받아본 적이 없다면 사랑을 전해줄 능력도 없으며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사랑은 사랑에 의해서 사랑이 된다. 나에게서 너에게로 지금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사랑뿐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자신의 용서하는 마음을 전파하셨는가를 아는 길이다. 사랑만이 우리를 인도하여 관계 안에서 발을 씻어주는 일을 시작하도록 만든다. 우리의 유일한 거룩함은 자신을 내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의 자유를 내어 맡겨,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의 발을 씻어줌으로써 하느님의 자비와 선하심이 나를 통하여 그들에게 흘러가게 하는 데 있다. 우리는 그 일을 통하여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적 생명에 참여한다. 발을 씻어주는 일이 성체성사를 관계 속에서 발생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2022. 4. 14 성목요일 새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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