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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 이야기 (7)

by 이종한요한 posted Dec 2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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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 수도원 이야기(7) -  언어학원 명도원


정동에 수도원 건축을 결정했을 때 건축 계획안에는 언어학원 설립 계획이 포함되어 있었고 로마의 승인도 마친 상태였다. 언어 학원과 성서 연구소는 프란치스칸 선교 활동의 기본이라 여겨 성서 연구소는 중국과 일본에 설립되었고 그러기에 중국과 일본에서 성경 번역은 바로 프란치스칸이 하게 되었다.


특히 중국에는 이태리 출신의 가브리엘 알레그라 신부님이 중국인 제자들을 양성해서 성서를 번역하셨는데, 이 제자들의 삶 자체가 성서처럼 경건했고 또 이 번역은 오늘도 수많은 중국 성서번역본들 중에서 탁월한 위치를 인정받고 있다.


사부님의 하느님 말씀에 대한 중요성과 공경성의 증거로 성서 연구소를 만들고 선교사들에게 현지어를 가르침으로 선교 활동에 필요한 밑거름을 제공한다는 선교에 대한 깊은 이해심에서 나온 계획이 이처럼 중국 일본에서 이미 시작되어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고 있었다.


당시 선교지인 아시아에서 구라파와 미국에서 모여드는 선교사들의 언어 교육기관의 설치는 너무도 긴박한 만큼 프란치스칸이 가장 유능하다는 평판을 받고 있던 처지였다.


한국에도 선교사들이 계속 도착하는 처지에서 여러 수도회에서 언어 교육에 노하우가 있는 프란치스칸들이 선교사들을 위한 언어 학원을 운영해 주었으면 하는 요청을 하게 되었다.


아뽈리나리스 신부님은 그분의 철두철미한 계획성이 이 준비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언어학원이라는 것은 특히 우리나라에만 사용되는 생소한 언어 교육을 위해선 지성적인 두뇌를 가진 인력이 필요하기 마련인데, 신부님은 동경 수도원의 원장으로 있으면서 동경 언어학원 운영을 보아온 압디아스 반 상태 신부를 점찍어 언어학원 설립 준비를 시켰다.


이 형제는 이것을 배울 수 있는 충분한 재능 뿐 아니라 대단한 친화력을 지닌 형제이기에 여러 나라 여러 수도회에서 모인 선교사들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능력과 함께 철저성도 있기에 돌다리도 두드리면 지나가는 사람처럼 차근차근 준비해서 알차게 시작했다.


먼저 정동 수도원이 건축 중에 있을 때 이미 언어학원 소문을 들은 선교사들은 미리 신청을 하면서 언어 학원의 개강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이런 기미를 확인한 압디아스 신부는 언어학원이 완공되기 전 정동 인근에 임시 교사를 하나 구했다. 그분은 판단력이 정확하면서도 대인 관계에서는 여유로움을 보이셨기에 외국인으로서 한국 사람을 친구처럼 쉽게 대할 수 있었고 이런 성격에 의해 한 학기 개교를 앞당길 계기를 만들었다.


우연히 산보하다가 신문로에 있던 평양 교구 신우회 사무실을 발견하고 들어가서 혹시나 하고 자리를 보니 수업을 할 수 있는 자리가 있어 책임자를 통해 이 건물 책임자였던 노기남 주교님의 허락으로 1964년 10월 2일 6개국에서 온 9개 수도회 25명을 모아 첫 수업을 시작했다.


한마디로 계획 보다 한 학기를 앞당겨 학원을 개원한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연세대학 부설 한국어 학당이 1959년에 설립되었고 순수한 선교사들을 위한 한국어 학당은 명도원이 처음이었다. 그 후 수도원이 완공되자 1965년 9월 8일 성모성탄 축일에 수도원을 축성하고 9월 9일 명도원이 정식 교사에서 새 출발을 했다.


학교명 역시 압디아스 형제의 혜안으로 시작되었다. 이 형제는 전통 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경에 대단했기에 학교 이름 역시 루이스 장발 형제의 조언을 받아 박해시대 신자들이 모여 진리를 깨치기 위해 교리를 배우던 명도원의 이름을 따서 명도원으로 교명을 정함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를 이미 교명을 통해서도 선교사 학생들이 이해하기 만들었다.

 

선교지 문화에 대해 무지했던 선교사들의 처신이 교회에 대한 거부 현상으로 드러나는 아프고 쓰라린 실패의 경험을 확인한 처지에 이 땅에 프란치스칸들은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로 이런 실수를 하지 않는 혜안을 지녔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압디아스 원장의 능력은 참으로 대단해서 누구나 불편 없이 만날 수 있는 편안한 인상의 분위기를 창출했으며 원채 재치가 있는 분이라 지금 정동 수도원 성당에 모셔진 검은 성모상을 구해다가 성당의 분위기를 창출했다.


이 학교는 작지만 시작 당시부터 알찬 시설을 갖춘 언어학원 이였다. 당시 아뽈리나리스 관구장과 압디아스 원장의 인격에 매혹된 장발 (루이스) 선생은 명도원이 단순히 한글을 공부하는 학당이 아닌 한국의 자랑스러운 전통과 정신문화를 배울 수 있는 선교사를 양성할 수 있는 자리로 매김시키기 위해 고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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