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육화의 겸손으로 태어난 하느님의 사랑

by 이마르첼리노M posted Dec 23,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 - Up Down Comment Print

육화의 겸손으로 태어난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의 가난하심과 낮추심이 육화의 겸손한 말씀으로 이 땅에 오셨다.

위대한 사랑이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으로 태어나셨다.

내려가는 길이 진리요. 내려놓는 길이 아름답고,

허용하고 놓아주는 해방과 자유의 길이 선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시기 위해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셨다.

 

어둠 속에 앉아있는 이들에게 빛이 되는 건

내어주는 몸과 쏟는 피의 현장이다.

구속적 고난은 다른 사람의 생명력을 불러낸다.

우리와 하나가 되고자, 우리와 동등해지고자

우리를 섬기기 위해 겪으셔야 했던

하느님의 고통이 볼 수 있는 모습으로 태어나신 것이다.

 

성탄의 신비는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겪어야 하는 고난의 신비다.

타락한 땅을 회복시키는 일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나도 그분처럼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직접 도구가 되어야 함을 알려주셨다.

 

구속적 고난을 많이 당한 사람이 거룩한 것은

누구보다 하느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고통을 통해 생명을 창조하시고 유지하게 하신다.

사랑은 사랑을 일깨워 또 다른 사랑으로 전달되며,

선은 그렇게 자발적이며 확산하는 신비로 관계를 비춘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은, 선으로 살리시는 하느님의 뜻이었으며,

우리와 같은 처지에서 보여주신 하느님의 몸짓이었다.

 

고난을 경험한 사람은 희망을 배운다.

측은한 마음으로 내려가서 필요성을 채운다.

위대한 신앙과 변화된 삶에는 이러한 진리가 숨겨져 있다.

 

희생을 하느님과 거래 수단으로 삼는 이들에게는 구속적 고난을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탐욕과 독점과 소유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희생을 셈하고 있기 때문이다.

희생이 많으면 받을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하느님은 우리의 희생에 따라 반응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사랑은 희생을 셈하지 않는다.

 

사랑은 죽는지 모르게 죽어도 희생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을 낮추시어 사람의 처지에까지 내려오신 성탄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한 하느님의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였다.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고 기쁘게 고난을 받아들이신 것은

우리를 해방하시는 최상의 방법이었다.

성탄의 신비는 내려가서 내어주는 몸으로 우리를 살리신다.

무너진 관계의 회복은 여기서 시작된다.

 

자기 속에 갇혀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

자기만족에 빠져서 스스로 완벽함에 감탄하며 행복감에 젖어 있는 사람,

내적인 가치에는 안중에도 없으며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이나 고통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는 사람에게 성탄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자신의 세상에 빠진 우리를 끌어내 주는 고통이 없다면

결국 자신의 의로움과 거룩함에 도취 된 채 죽어갈 것이다.

 

성탄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 겪으셔야 했던 고난을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배울 수 있도록 나타나신 빛이었다.

 

자신을 낮추어 내려가는 고통은 편협하고 거짓된 자아로부터 우리를 구원한다.

관계를 회복하게 하려면 내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

너를 받아들이기 위해 공간을 만드는 일은

자신의 위치를 포기하고 내려가는 데서 시작되며

하느님의 말씀에 자신의 의지를 내어 맡기면서

잉태된 말씀이 사랑을 낳게 되고 그로써 자신의 변화와 관계의 변화가 이루어진다.

 

하느님과 네가 없어도 홀로 족하다는 자만심이 만든 단절과 무관심의 관계 속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를 비추신다.

하느님의 아픔이 성탄의 신비 안에서 우리를 비추신다.

관계를 회복하는 길에는 언제나 내려가는 아픔과 내려놓고 허용하고 놓아주는 아픔이 있다.

 

고통과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볼 수 있는 하느님으로 나타나신 육화의 신비는

십자가와 부활의 신비다.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하느님의 얼굴은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 투영되어 있다.

하느님의 고통을 함께 지기 위해 성프란치스코는 나환자들의 몸에 입을 맞추었다.

 

사랑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를 행복하게 한다.

삶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고 깨닫게 하는 유일한 길은

남을 위해 고난을 받고 그들의 고통에 참여하는 길이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오신 이유가 거기에 있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인류를 구원하러 하느님의 동등함을 포기하셨다.

육화의 신비는 겸손의 신비요 하느님께서 자신을 낮추시는 고통의 신비다.

성탄의 신비 안에서 기쁨에 찬 하느님의 가난과 고통을 바라본다.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