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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은 자유를 주는 것

by 이마르첼리노M posted Sep 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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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은 자유를 주는 것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는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으면 가진 것으로 즐기고 만족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농경문화가 주를 이루고 있을 때

현재의 풍요로운 삶보다 행복 지수가 높았다.

농업은 하늘에 의존하는 삶의 방식이었다.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주어진 것으로 만족하려고 했다.

집안에 먹을 양식이 떨어지지 않는 가정은 부자였다.

가난한 사람들은 며칠만이라도 먹을 수 있는 양식과 땔감만 있어도 행복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

서로를 자유롭게 하는 과정에서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사는 이들이다.

불의하게 억눌린 자들이 자유로울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야 하고

억눌리고 가난한 자들은 우리가 환상과 무지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서로를 비추는 거울로 서로의 모습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사람들이 모인 곳,

그것도 교회의 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완전한 사랑을 위해서는 완전한 자유가 필요하다.

현실 도피적 찬양으로 자신의 거룩함의 척도를 재는 사람들은 자유가 없다.

기도와 교회에서의 봉사로 자신의 의로움과 거룩함을 높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느님께 기도로 청하는 것들은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용서하는 일, 견디는 일, 기다려주는 일, 돌보아 주는 일들은

하느님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할 일들이다.

사람에게 자유를 주는 일은 우리에게 맡겨져 있다.

이런 일들을 하느님께 미루고 자신은 기도와 희생을 바치기만 한다면

현실 도피적 신앙으로 전락하고 만다.

관계에서의 어려움을 피해 도망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관계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발견하는 우리의 일상은

생명 보존을 위한 관계의 회복으로 만들어가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관계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생태계의 관계들이 파괴되고 있기에 공존이 아니면 공멸의 위기를 맞는다.

인간의 이익과 즐거움과 편안함을 위해 파괴되는 관계는

자연 생태계인 피조물과의 관계를 넘어

하느님의 창조를 인간이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하느님과 나, 너와 나, 피조물과 나와의 관계는 공존을 위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어느 하나라도 무너지면 전부가 무너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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