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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이라는 이름의 중용

by 김기환베드로M. posted Oct 22,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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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평화

 


    성북동 앞마당에서는 어느덧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매달리기 시작했다. 아니 벌써 매달렸지 작년 이


맘 때가 생각난다. 감을 따기 위해서 꼬챙이를 들고 하늘을 휘젖었던 그때를 ,, 어설픈 실력으로 감을 따


니 감은 안따고 엄한 가지만 부러뜨리고 그러다 감을 따면 땅바닥에 떨어지니 아직 익지 않은 감은 너무


여물고 딱딱해 떨어지는 순간 갈라져 버리고 부서져 버린다. 그리고 또 어떤 감을 따니 땅바닥에 떨어져


이번에는 너무 익은 감이라 떨어지는 순간 터져 버린다. 이래도 저래도 먹기가 힘들다. 그러다 또 어떤


감을 따니 이번에는 너무 익지도 너무 안익지도 않은 감이니 적당히 익은 감이다. 떨어지는 순간 터지지


도 부서지지도 않는다. 따기전의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온전하게 먹을수가 있는 감이다.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치 않고 적당하게 중간, 즉 중도 중용의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고 있는 감이었다. 이렇게 감나무에

 

서 떨어지는 감의 모습, 아주 너무나도 사소한 자연의 법칙, 그 어떤 누구도 눈여겨 보지도 않고, 관심을


가지지 않는 작은 한 자연의 법칙에서 그야말로 나는 너무나도 엄청난 진리를 하나를 본다. 그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도 대단한 것일수도 있는 것이지 그것은 바로 "중용"이다. 감나무와 그것에 달려있는 감은 나


에게 말을 한다. 그리고 나를 가르치고, 나를 훈계한다. 한쪽으로 치우치치 말고, 한쪽으로 너무 기울지


말고, 그 어떤것에 그 이상으로 집착하지 말라는 큰 가르침,, 자연에서 가르치는 진리가 이러하다면 진리


그자체이셨던 예수님의 모습에도 우리는 눈여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복음을 읽고 묵상해 보면 예수


님의 삶은 중용의 삶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수가 있을 것이다. 율법만을 강조하는 바리사이 사두가이 율


법학자 사제들과 사랑의 실천을 강조하시는 예수님,, 그 사이에서 예수님은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치 않


으셨다. 율법을 무시하고 사랑만을 강조하시지는 않으셨다.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율법을 폐지하러 오신


분이 아니시라 완성하러 오신분이시다. 예수님께서 당시 유다계 지도자들을 비판하셨던 이유는 너무 율


법에만 치우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랑의 실천은 온데간데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비난하셨던 것


이다. 바로 그들은 중용의 삶을 살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셨던 하느님 나라, 그곳은


바로 다름아닌 법과 사랑사이에 중용의 삶을 살아가는 나라였던 것이다. 그래서 난 이러한 상상을 해본


다. 예수님께서 감나무에서 떨어지는 감을 보시고 비유를 들어 하느님나라에 대해서 살교를 하셨더라면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을까?


" 너희는 정말 잘 들어 두어라, 하느님의 나라는 나무에서 떨어지는 감과 같은 것이다. 너무 익지


않은 감은 떨어지면 부서지고 너무 익은 감은 떨어지면 터져버린다. 그러나 적당히 익은 감이 떨


어지면 부서지지도 터지지도 않는다. 하느님의 나라는 바로 떨어지는 감과 같은 것이다 .알아들


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 들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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