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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다.

by 이마르첼리노M posted Sep 0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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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다.

 

나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다.

전체 안에 부분으로써의 가지다.

 

나는 몇 년 전에 아프리카 앙골라를 방문한 적이 있다.

한국 가톨릭 나사업연합회 대표로 그곳 한센인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내가 감명을 받은 것은 폐허 속에서 그들이 보여준 신앙이었다.

작은 성당에 가득 찬 이들은 다수의 배고픈 어린이들과 병든 노인들이었다.

청년 한 사람이 리더로서 노래하기 시작하였다.

그에 맞추어 온 성당에 흑인영가로 뒤덮였다.

교회 전체가 뒤흔들렸고 사람과 사물의 움직임으로 가득 차서

건물 전체가 굽이치는 물결 같았다.

작은 드럼 하나에 맞추어 온몸으로 부르는 그들의 노래는 감동 그 자체였다.

모두 하나 되어 움직이는 그 광경은 정말 놀라웠다.

한 사람 한 사람은 전체에 연결되어 있었고 연결이 의미를 주었다.

 

개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남들에게 특별한 존재로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자신을 전체 가운데 일부라고 보는 사람들은

자신의 특별한 점을 나타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구성원들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상처와 불안, 두려움에 빠져들게 되는 것은,

지나치게 개인주의화 되었기 때문이며

부서지기 쉬운 자아를 보호하려는 부담도 개인의 몫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 안에서 하나 된 공동체가 없다면

우리의 연약한 자아는 불만에 빠져 이리저리 방황하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과 하나 되어 있지 않으면 자신의 분노를 표현할 수 없다.

우리가 기도 생활에 있어 자리에 앉아 기도드릴 때마다 기도하기가 힘든 것은

기도할 때마다 하느님과의 관계를 다시 정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관계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조화를 회복하는 사람은 매번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하느님의 자비와 선하심이 나를 통하여 너에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가족 구성원들로부터 교회와 사회와 직장에서의 관계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개인주의 속에서 이기심과 탐욕으로 분리되고 깨져버린 관계들은

분노가 만든 상처로 인하여 폭력의 유혹에 노출되고 말았다.

말의 폭력, 침묵의 폭력, 표정의 폭력, 태도의 폭력과 더불어

물리적인 폭력이 피 흘리는 관계를 만들고 있다.

 

포도나무에서 잘려 나간 가지는 자신의 욕구 충족의 관점에서만 보는 사람이다.

내적 권위는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찾을 수 있다.

사람들이 부정적인 말로 우리를 공격해 올 때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하느님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누구도 안전할 수가 없다.

사람의 잣대로 희생된 말의 희생자들,

하느님과 연결된 사람의 내적 권위는 사람의 잣대를 가지고 흔들 수 없다.

 

포도나무에 연결된 가지는 안전하다.

아버지께서 안전한 품으로 품어 주시기 때문이다.

넉넉함과 느긋함, 기쁨과 고요한 만족은 외부로부터 오는 공격에 흔들림 없이 자기를 지킨다.

나는 편안하며 느긋한 평화 안에서 산다.

경쟁할 필요도 없고, 높일 필요도 없으며, 자랑할 필요도 없고 증명할 필요도 없다.

자신이 떳떳하고 옳다는 것을 확인시켜 줄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수많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말하는 구원은

하느님께서 죄로 가득한 세상에서 건져주시는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구원받을 필요가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나 자신이며 구원은 자기로부터의 구원이다.

자기로부터 해방이 가장 큰 자유를 준다.

여러분의 참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있어서 보이지 않습니다. (골로 3,3)

 

하느님과의 연결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선물이다.

하느님과의 연결을 기쁨으로 누리는 나라가 하느님 나라다.

연결은 무상으로 주어진 선물이지 노력과 수고로 성취한 결과가 아니다.

업적과 공로의 대가로 인식하는 그 어떤 것도 하느님과의 연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찮은 일들 속에서 기뻐하는 사람들은 사랑에 빠져서 자유를 누린다.

복음 자체의 핵심적인 자유가 거기에 있다.

가난하고 겸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기 위해

삼위일체의 하느님 안에서 참여하는 선으로써 사랑을 공유하고

공유하는 선으로부터 실질적인 구원을 온몸으로 느낀다.

 

지금, 여기서가 아니라면

언제? 어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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