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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기 위하여 버리는 나

by 이마르첼리노M posted May 0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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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기 위하여 버리는 나

 

나를 따르려면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루가9,22)

 

예수께서는 내려가는 길을 가르쳐 주셨다.

그러나 우리는 올라가는 종교로 만들고 있다.

꼭대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도덕적 완전함이나 천국 가는 표를 얻기 위해

우리 자신보다 타인을 개종시키고

건강이나 재물, 그리고 성공을 얻기 위해 애쓰는 종교로 둔갑시키고 있다.

업적과 공로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천국은 이미 지옥의 상태지만

여전히 개인이나 집단, 나라를 식민지로 만드는 지배자와 통치자로 군림하려 한다.

이것은 온통 올라가는 일뿐이며 내려가는 일이 거의 없다.

온통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 이것이다.

 

자기를 버리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를 중심으로 만든 모든 가치체계를 버린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사람들의 평가와 인정을 기초로 삼았던 것을 버린다는 것은

매일 너를 받아들이는 십자가를 져야 하기 때문이고,

알고 있다고 여기는 것을 지워야 하며,

그리스도 예수를 따르기 위해서

자기를 버리는데 따라오는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내려가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삶이다.

매일의 고난과 스스로 선택하는 필요한 고난은 자기를 위한 깨달음과

타자들을 위한 자비심의 대가이다.

 

변화된 죽음은 언제나 나를 버리는 죽음과 연결되어 있다.

내려가는 죽음과, 내어놓는 죽음과 허용하고 놓아주는 죽음을 동반하기 때문이며,

꼭대기에서 내려와, 동등함을 넘어 너의 발을 씻으려고 몸을 굽히는 거기에

죽기 전에 죽기, 실천적 죽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지배하고 통치하던 통치를 하느님의 통치에 맡기고 죽기를 각오하고 죽을 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생명이며 부활로 경험한다.

끝없이 올라가려던 내가 예수께서 내려가셨던 길을 배우고,

너와 나의 관계 속에서 하느님 나라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마지못해 죽는 죽음이 아니라 선택하는 죽음으로 바꾸기 시작한다.

그리고 선택하는 과정에 이미 부활하신 분께서 선택할 때마다 함께 하심을 경험한다.

사랑으로 죽는 죽음은 편한 멍에와 가벼운 짐이지

결코 무겁고 부담스러운 짐이 아님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무도 죽기를 각오하지 않는다.

하느님께 희망을 두지 않고, 가보지 않던 곳을 가야 하는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그렇게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결국 내가 통치하던 나라를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행동하려고 하는 대신 언제나 편한 쪽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타락은 편한 일이다. 몸이 요구하는 것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고 지금 편하면 된다.

나만 좋으면 그만이고, 너는 나의 관심 밖에 있다.

눈앞에 이익과 즐거움이 있다면 하느님까지도 밀려나 있음을 경험으로 안다.

 

여전히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표현되는 행동하는 자비는 한 발도 내딛지 못한 채

방황하고 표류하는 일상으로 다시 돌아간다.

거짓과 포장과 척, 합리화와 위선의 극치 가운데 경쟁하고 높이고 자랑하기에 바쁘고

잘 보이기 위해 증명하려고 애쓴다.

교회로 돌아가 기도와 봉사라는 명목으로 남들이 다 아는 가짜로 행세하려 한다.

 

관계 안에서 발견되는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께 무엇을 많이 바쳐서도 아니고 계명을 잘 지켜서도 아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따라 변화된 죽음을 거쳐 부활에 이르는 길

너를 받아들일 공간을 만드는 십자가의 길을 선택할 때 발견되는 나라다.

 

따르는 길이 목적이지 지키고 바쳐서 복을 받는 길이 아니다.

사랑이 목적이지 기도가 목적이 아니다.

그 많은 기도가 관계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그러한 기도는

자신을 의롭게 만들어 꼭대기에 올려놓을 뿐, 아무것도 아니다.

 

하느님께 항복하는 믿음은 너를 통제할 필요성을 포기하며 마침내 관계가 꽃피도록 돕는다.

그것은 매번 선택하는 일이며 그 선택은 일종의 죽음이다.

내가 죽는다고 내가 잃을 것은 하나도 없다.

변하고 성장하는 것은 현재 상태에 대해 죽는 것을 통해서이다.

위험을 감수하는 상실과 갱신이라는 끝없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이처럼 불가피한 흐름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너는 언제나 고분고분한 네가 아니고 차이와 다름으로 나를 괴롭게 하는 너이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그 변화의 길을 따르기 위하여

작은 것들을 내려놓을 때 큰 것들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하느님의 허용을 배워 누구나 자기 몫의 삶을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허용해야 한다.

이것은 매우 가시적이고 실재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죽음 뒤에는 반드시 생명을 다시 찾는 부활이 있다.

 

나를 따르려면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루가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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