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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의 문은 혼자서 들어갈 수 없다.

by 이마르첼리노M posted Apr 1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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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의 문은 혼자서 들어갈 수 없다.

 

첫아이를 출산할 때의 진통처럼

사랑이 처음 태어날 때도 아프다.

깊이 있는 사랑과 깊이 있는 아픔은

나를 변화의 길로 나아가도록 돕는다.

우리를 깨달음의 길로 안내하는 것이

사랑에 동반하는 고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고난의 문으로 들어가고

고난을 통해 사랑의 문으로 들어간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거기서 사랑의 깊이와 진리를 배운다.

마음에 거슬리는 것들과 괴롭힘과 슬픔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이 부드러워지기 때문이다.

 

벌거벗고 놀던 땅에서 낙원의 기쁨을 벗어나

가리고 감추기 시작한 다음부터

카인과 아벨이 서로 다투며 경쟁하는 세상,

목표를 잃고 방황하는 땅,

바로 우리가 사는 땅, 지금 여기다.

 

낙원의 기쁨을 다시 찾도록 돕는 유일한 방법, 유일한 문은

사랑에 따르는 고난이며 이 둘은 언제나 함께 간다.

나를 위한 고난이 아니라 너를 받아들이는 고난이다.

깨달음은 더 큰 사랑으로, 더 깊은 사랑으로 나를 변화의 길로 이끌어준다.

 

이원론과 이분법으로 찢기고 할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하여

비이분법과 통합하는 관상으로 나를 이끌어주는 것이

내면의 전쟁을 치르도록 하는 고난이기 때문이다.

나의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 거기 계시다.

 

사랑하면 아프다.

아프지 않은 사랑은 깊이가 없다.

윗자리를 차지하려고,

독점과 소유를 탐내다가

차별과 구별로 갈라놓기에 바빴던 내가

너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너의 발을 씻어주려고 스스로 내려가는 선택과 결단

그것이 고난이다.

 

고난이 낳은 아이는 겸손하다.

선택하는 가난, 선택하는 고난, 선택하는 고독,

선택하는 침묵을 일용할 양식으로 삼기 때문이다.

이것이 통제의 칼을 휘두르던 중독된 나를 치유한다.

 

깊이 있는 사랑과 깊이 있는 고난을 회피하려고

잘 지키고 많이 바쳐서 얻으려는 눈앞의 복,

눈앞의 이익, 눈앞의 즐거움과 편안함,

너를 짓밟고 나만 좋은 세상을 추구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여기면서

외형의 호화로운 장례식 같은 이미지로 여전히 교회에 충성한다.

이것이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느님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믿음이다.

업적과 공로, 성공과 승리, 정복의 길을 따라가는 지배문화의 종교심이다.

 

낙원은 지금 여기에 있다.

낙원은 언제나 너를 포함한다.

너 없는 낙원은 없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너를 통하여

너와 함께

네 안에서

나에게 오셔서

우리와 함께 잔치를 베푸시고자

너와 나를 초대하시는 여기

낙원은 그렇게 관계 속에서 누리는 기쁨이다.

 

너를 받아들이는 고난을 통해서

내가 행복한 나라

하느님의 통치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여기에

낙원의 기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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