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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죽음에서 부활하는 생명으로

by 이마르첼리노M posted Apr 1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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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죽음에서 부활하는 생명으로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마르코16,15)

사람들에게만 선포하는 복음이 아니라

피조물 전체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하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활 체험은 변화된 인식과 관상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성프란치스코의 위대함은 아주 작은 피조물에서 출발하여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상에서 나온다.

 

모든 피조물에는 하느님의 善性이 숨겨져 있다.

하느님께서 창조한 모든 피조물은 선()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모든 존재가 창조주를 찬미하도록 초대하는 하느님 찬미의 권고

태양의 노래잘 알려진 피조물의 노래에서

하느님, 피조물, 인간 영혼에 대한 프란치스코의 시각을 드러내 준다.

그는 창조된 피조물을 자신과 동등한 관계로 바라보면서 형제와 누이로 불렀다.

같은 기원에서 나왔기 때문이었다.

 

서구의 합리적 사고와 과학을 바탕으로 하는 이분법적 정신으로

비이분법적 개념을 이해하려고 하면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그리스도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스도는 인간이 만든 이분법적인 사고의 틀에 갇혀 계실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이분법적 사고는 두 가지를 놓고 선택하도록 선택사항을 제한시킨다.

그중 하나를 선택하면 서로에 대해 화를 내는 방식으로

다른 것은 배제해버린다.

 

옳거나 틀렸거나, 내 편이거나 반대편이거나,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민주당이거나 공화당이거나,

그리스도인이거나 이방인이거나 하는 방식이다.

그런 방식은 손쉬운 안전과 거짓된 위로를 줄지 모르지만

지혜를 주지는 못한다.

 

우리는 나만 좋으면되는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하느님만을 추구하다 보니

너를 위한 공간도 피조물을 담을 그릇도 없었다.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도 온통 나만을 위한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하느님마저 내 편으로 만들려고 하는 기도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하느님의 선하심과 자비를 제한하려 한다.

자신은 선하다고 여기면서 악한 이들을 처벌하도록 하고

똑같이 복을 주시면 안 된다고 떼를 쓴다.

 

우리는 철저하게 다르게 보는 방식을 배워야 한다.

관상하는 마음은 사물들을 부분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깊이 있게 볼 수 있게 해준다.

 

창조주의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사람들은

죽고 부활하신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변화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이다.

비이분법적 정신으로 통합과 화해와 용서를 추구하며

그리스도의 보편적 자비를 바라보는 신비적 관상을 통해

자신의 삶을 해석한 사람들이었다.

 

성프란치스코는 수난의 사랑을 통해 보여주신 하느님의 가난과 겸손을 보았고

놀라운 자비를 체험하였다.

그의 정신은 갈라지지 않았다.

전체를 통합하는 아버지의 창조에서

하느님의 선하심과 아름다움과 진리를 발견하였고 이를 형제들과 나누었다.

그는 변화된 몸으로 형제들과 더불어 새 창조의 역사를 써 내려갔다.

자신과 서로에 대해 훨씬 더 정직하고 유용한 이해를 제공해 주었다.

그는 허물어진 다미아노 성당에서 지각과 인식의 변화를 하느님께 청하였다.

 

우리는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우리가 어떻게 아는지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믿을 것인지에 배웠지, 어떻게 믿을 것인지에 대해 배우지 못했다.

예수를 하나의 우상처럼 믿어왔을 뿐,

보편적 자비로 용서하시는 그리스도가 되지 못하도록 해왔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빛과 비를 내려주시는 하느님을 믿지 못했다.

 

부활하신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한 사람은 변화의 길을 간다.

삶의 방향과 욕망의 변화는 선과 악의 자리를 바꾸도록 이끌어 준다.

선하다고 여기던 자신이 악을 저지르는 주체로 발견되고

악하다고 여기던 타인들이 부활하신 분으로 다가오시는 하느님으로 깨닫게 된다.

이러한 깨달음 안에서 얻은 인식의 변화는

이전에 원했던 것을 원하지 않게 되고 원치 않았던 것을 원하게 된다.

이전에 내게 좋게 보였던 것이 이제 불쾌하게 보이고

이전에 불쾌하게 보이던 것들이 좋은 것으로 보이게 된다.

성프란치스코는 자신의 변화를 유언에서 그렇게 말했다.

나환자를 보는 것을 역겨워했던 그는 행동하는 자비로

역겨웠던 것이 몸과 마음에 단맛으로 변했다.” (성프란치스코의 유언1-3)

 

내어주는 몸과 쏟는 피로 보여주신 하느님의 자비는

나 자신의 일상적인 죽음에서 부활하는 생명으로 이끌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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