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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약하고 무력한 두 손으로

by 이마르첼리노M posted Dec 0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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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약하고 무력한 두 손으로

 

나의 우물은 깊다.

그러나 밖에서 물을 찾는 건 갈증을 해결할 수 없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에게 하신 일은

내면의 양육에 필요한 에너지를 밖에서 찾지 말라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비난해야 할 욕구와 아무도 비난하지 않을 욕구를

함께 지탱할 수 있는가를 배우도록 하셨다.

 

큰 사랑은 큰 고난을 통해 성장한다.

하느님이 나를 성장시키는 방법은 장애물을 없애는 방법이 아니라

장애물을 이용하는 방법을 당신의 십자가를 통해 보여주셨다.

안전과 고정된 사고의 틀을 바꾸는 변화는

사랑과 사랑에 따르는 고난을 받아들이는 가운데 조금씩 성장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사랑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

고난을 감수하는 사랑만이 자유롭다.

삶의 경로를 수정하거나 바꾸는 변화는

생명의 에너지를 누군가를 살려내기 위해 내어놓는 일이었다.

그것이 나의 죽음이었지만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죽는 죽음이었다.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은 탓을 돌리는 것이고

비난하지 않는 사랑은 고난을 감수하는 데서 성장한다.

도덕적 잣대와 저울로 판가름하는 틀로는

비난하는 데 성장할 수 있어도 사랑에 성장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의미를 잃어버린다.

눈앞에 실재를 받아들이고

용서하는 능력과 포용하려는 의지는 십자가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누구나 내적인 연약함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연약함과 힘없음이 십자가의 사랑으로 표현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다.

힘 있는 분이 힘을 사용하여 구원하셨다면 그리스도는 나에게 의미가 없다.

힘은 누군가를 살리는 데 써야 한다.

그러나 자신을 위해서는 힘을 사용하지 않고 연약하고 무력하게 내려놓는 일,

예수께서 하신 일이 그것이다.

그리스도의 신비가 사람이 되신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위대한 사랑이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당신의 죽음으로 표현된 아버지의 자비였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우리를 수치스럽게 하시는 분이 아니고

당신의 수치스런 수난과 죽음을 통해 우리를 수치에서 건져주셨다.

비난하고 싶은 욕구와 비난하지 않을 자유가 나를 지탱하게 만드는 일

오늘도 그 현장에 서 있다.

 

나의 연약하고 무력한 두 손으로

그분의 연약하고 무력한 시신을 품에 안으신 성모님처럼

나와 내 주변의 관계들을 품에 안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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