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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나누기

사순 5주 화요일-뱀과 같으신 우리 주님

by 김레오나르도 posted Apr 0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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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당신이 십자가에 들어올려진 뒤에야

당신이 그리스도이심을 사람들이 알게(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표현으로서 <내가 나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표현은 모세가 하느님 체험을 할 때 누구신지 여쭙자

하느님께서 알려주신 야훼 하느님과 같은 표현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십자가에 들어올려진 뒤에야 알게 될 것이라는 것은

오늘 독서, 민수기의 그 뱀과 같은 의미의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민수기의 그 뱀과 같은 존재라는 얘깁니다.

그렇다면 민수기의 그 뱀은 어떤 뱀입니까?

 

 

사람들을 사정없이 물어 죽인 뱀입니다.

그런데 뱀은 왜 사람들을 물어 죽였고,

어떤 사람들을 물어 죽인 것입니까?

 

 

불평불만이 끝없어 물어 죽인 것이고,

불평불만 분자를 물어 죽인 것입니다.

 

 

이들은 하느님의 사랑에 불평불만을 하였습니다.

만나를 주셨지만 그 것이 그들에겐 보잘것없는 양식입니다.

“이 보잘것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라고 말합니다.

 

 

만나, 곧 하느님의 사랑이 그들에겐 사랑이 아니거나

사랑일지라도 보잘것없는 것이어서 더 큰 사랑을 요구한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느님은 자기들을 죽이기 위해 광야로 몰고 온 분이랍니다.

 

 

이렇게 불평불만을 해대니 지금까지 그들의 지청구를

순순히 들어주시던 하느님께서 이제 제대로 죽여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불 뱀을 보내어 그들을 물어죽게 하니

과연 그들의 불평불만은 딱 그치고 불평불만은 애원으로 바뀝니다.

 

 

말하자면 하느님께서 극약처방을 내리신 것입니다.

이것도 저것도 안 되니 죽음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리신 건데

이것이 역시 효과가 있어서 그들은 살려만 달라고 애원을 합니다.

 

 

그런데 그 살기 위한 처방이라는 것이 기가 막힙니다.

자기들을 죽게 만든 뱀을 구리로 만들어 매달고 그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뱀이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명기의 하느님 말씀을 상기시킵니다.

“이제 알아라. 내가 바로 그다. 나 외에는 신이 없다.

죽이는 것도 나요 살리는 것도 나며 찌르는 것도 나요 고쳐주는 것도 나다.”

 

오늘 복음의 주님은 당신이 민수기의 뱀처럼 높이 들어 올려질 것이고,

그때서야 사람들은 주님께서 당신 자신을 죽여

자기들을 살리실 분임을 알게 될 거라고 하십니다.

 

모든 사람이 보기 싫어하고 그래서 기피하는 그 죽음을

우리의 주님께서 사랑으로 껴안으시고 그것을 보게 하심으로

그것을 우러러보는 우리로 하여금 극복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당신 상처로 우리의 상처를 고쳐주셨다는 이사야 말씀대로입니다.

 

하느님 사랑이 보잘것없다고 불평불만을 하는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이래도 사랑이 보잘것없다고 하냐고 우리에게 물으시는 겁니다.

그리고 죽이는 것도 사랑이고 살리는 것도 사랑이며,

찌르는 것도 사랑이고 고쳐주는 것도 사랑이라고 당신이 답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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