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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나누기

재의 수요일 다음 금요일-나의 단식에서부터 공동체의 단식까지

by 김레오나르도 posted Feb 2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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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사야 말씀은 우리 인간의 모순과 거짓에 대해

참으로 통렬하고 아픈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나를 찾으며 나의 길 알기를 갈망하고,

나에게 의로운 법규들을 물으며 하느님께 가까이 있기를 갈망한다.”

 

예언자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길을 알기를 갈망하고,

의로운 법규를 묻고 하느님께 가까이 있기를 갈망한다고 합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은 참으로 훌륭한 하느님의 백성인 것 같은데

이사야는 이어지는 말씀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모순을 꾸짖습니다.

너희는 너희 단식일에 제 일만 찾고 너희 일꾼들을 다그치고,

단식한다면서 다투고 싸우며 못된 주먹질이나 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상을 종합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는

날마다 하느님과 하느님의 길을 찾고 하느님의 법규를 따지며

하느님과 가까이 있고자 단식도 하고 고행도 하지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자기 욕심만 차리고 못된 짓을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사야는 하느님의 길, 하느님의 법규, 하느님의 정의와 공정이란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며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며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거라고 합니다.

 

마침 설 명절이니 이를 부모 형제간의 도리에 비교하면

부모에게 잘하는 것은 형제들끼리 잘 지내는 것이라는 말이며,

형제들끼리 재산 싸움이나 하고 못된 짓을 하면서

부모에게 잘하는 것은 도리를 다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어제 저는 어떤 유력한 분이 유력지에 이런 글을 올린 것을 봤습니다.

한국 천주교 통계를 보면 가톨릭 신자의 78%가 마음의 평온을 얻기 위해서 신자가 되었다고 한다. 필자도 그러한 평신도의 한 사람으로서 신부님들에게 간곡히 부탁을 드린다. 교회를 정치적 비판과 논쟁의 장이 아니라 오로지 사랑과 평화를 위한 기도의 집으로 되돌려 주었으면 한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이러저러한 생각을 많이 하였습니다.

마음의 평온을 얻고픈 신자가 78%뿐이겠습니까?

마음의 평온은 인간이면 누구나 다 얻고 싶은 거지요.


그런데 이분의 주장을 보면 이웃 사랑과 같은 다른 이유는 없고

오직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만 신자가 된 비율이 78%라는 얘기지요.

그렇다면 정말 대다수가 마음의 평온을 깨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애긴데

이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고 우리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조용히 입을 다물어야 하는가, 그럼에도 그건 아니라고 얘기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답이 오늘 이사야서에 있습니다.

대예언자로 추앙을 받는 이사야는 오늘 독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회의 불의를 고발하는 매우 정치적인 예언을 합니다.

그래서 다른 예언자들과 마찬가지로 당대에는 박해를 받았을 것입니다.

 

헬더 까마라 대주교가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지요.

내가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하면 성자라 하면서,

내가 가난을 낳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하면 빨갱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의 이사야 말씀처럼 해야 합니다.

목청껏 소리쳐라, 망설이지 마라. 나팔처럼 네 목소리를 높여라.

내 백성에게 그들의 악행을, 야곱 집안에 그들의 죄악을 알려라.”

 

그러나 그렇게 목청껏 외치기 전에 자신을 성찰해야 합니다.

나는 그런 소리를 목청껏 외칠만한 사람인가?

물론 그런 사람이 못되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하게 이렇게 외쳐야 할 것입니다.

너도 나도 그러니까 우리 같이 회개하고, 단식합시다.

우리 너무 탐식하지 말고 먹는 것을 이웃과 나눕시다.

우리 모두 음식을 끊기 전에 욕심을 같이 끊읍시다.

우리 같이 우리의 불의를 들여다보고 불의를 그만 둡시다.

불의를 그만 둘뿐 아니라 우리의 불의한 사회 구조를 같이 바꿔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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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홍시몬 2015.02.20 18:31:01
    정동 유기서원자 시절이 생각납니다. 저는 유기서원장님의 명으로 매달 두차례씩 3회원을 대상으로 강의를 했는데 <그날>은 제7차 범민족 대회와 연관된 96년도 연세대 사태와 정부의 강제진압에 관한 것중에서, 다른 정치적 이야기는 거두절미하고 옥상에 학생들을 격리시켜놓고 물 한병, 위생용품 하나 올려보내주지않는 것에 대해 인간적으로 비판하였는데 강의도중 웅성거리기 시작하더니 강의를 마치고 나오는데 일부 재속회원들이 <수사면 다야~!!!>라고 외치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공동체를 떠나올때 관구장님이셨던 원장님이 재속회원으로 봉사하길 권유하셨으나 제가 쳐다보지도 않은 이유 중 하나입니다. 부르조아 집안에서 태어나 부르조아로 살다 수도원에 입회한 저에게 그날의 체험은 너무 무섭고 살떨리는 경험이었습니다.
  • ?
    홈페이지 풍경소리 2015.02.20 11:44:20
    그렇습니다.
    제 자신이 복음화 되지 않았으면서 다른이를 복음화시키려는,
    주제넘은 제 자신을 알아차리는 순간 속으로 깜짝 깜짝 놀라곤 할 때가
    어디 한 두번 이던가......요!

    제가 복음화 되지 않은 영혼없는 말은 상대의 심금을 울리지도 못하고
    오히려 역으로 제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화살이 되었던 아픈 경험들이 있습니다.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더 좋았던 쓰디쓴 경험들.........

    고고하게 기도하며 자신의 안위와 평온을 위한 것은 믿음이 아님을,
    예수님께서는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라는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며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이기적인 태도에서 벗어나는 발돋음이
    먼저라는 사실을 절감합니다.

    자신이 하는 말에 사심이 없다면 무슨 두려움이 있고 망설임이 있을까.......!
    예언자들을 통해 알아듣게 되면서 문제는 그 사심없는 마음을 갖을 수 있느냐.....!하는
    제 자신의 문제로 다시 되돌아 오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사심없이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역활을 누가 먼저 할 것인가.......!
    질문은 던졌지만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는 나약한 제 자신을 위해 기도해야겠습니다.

    글구
    "너도 나도 그러니까 우리 같이 회개하고, 단식합시다.
    우리 너무 탐식하지 말고 먹는 것을 이웃과 나눕시다.
    우리 모두 음식을 끊기 전에 욕심을 같이 끊읍시다
    우리 같이 우리의 불의를 들여다보고 불의를 그만 둡시다.
    불의를 그만 둘뿐 아니라 우리의 불의한 사회 구조를 같이 바꿔갑시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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