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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나누기

12월 24일-우리도 비록 어리고 작아도

by 김레오나르도 posted Dec 2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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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즈카르야는 성령으로 가득 차 이렇게 예언하였다.”

 

혼자 말문이 막혀있던 즈카르야도 비로소 말문이 열리고,

혼자만 성령을 받지 못했던 즈카르야도 드디어 성령을 받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가득 차 예언을 하는데

예언이라기보다는 장엄한 찬미가라고 함이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즈카르야의 찬가는 크게 두 분으로 나뉘는데

168절에서 75절까지는 구원역사에 대한 하느님 찬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집안인 이스라엘의 구원자를 약속하신 대로

다윗 가문의 후손 가운데서 일으키려 하신다고 찬미하면서

이는 <예로부터> 예언자들을 통하여 예언된 대로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예로부터 아주 오래된 것인데

그런데 예로부터라면 언제부터이고, 얼마나 오래 된 것입니까?

 

이 구원 역사에 영락없이 등장하는 것이 조상 아브라함입니다.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약속된 구원, 그렇게 오래 묵은 구원입니다.

 

오래 묵은 구원이라!

그게 무슨 뜻입니까?

 

오래 묵은 된장처럼 깊은 맛이 있다는 뜻입니까?

그렇게 맛있는 구원입니까?

 

그런데 구원의 역사를 보면 그리 맛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뿐 아니라 무릇 구원 역사란 게 모두

그 맛이 결코 달콤하지 않고 오히려 쓰디씁니다.

고난의 연속이고 그래서 구원이 필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래 묵은 구원이란 맛있는 게 아닌데

그렇다면 무엇이 오래 된 것이고 묵은 것입니까?

쓰지만 몸에 좋은 약처럼 구원의 사랑이 그런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오래 묵은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그래서 그 사랑은 오래 묵어 깊은 사랑입니다.

오래 묵지 않은 얕은 사랑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얕은 사랑은 냄비처럼 금방 달구어졌다 금방 식을 사랑입니다.

작은 실망에도 쉽게 깨져버리는 사랑이고,

작은 곤경에도 쉽게 넘어지는 사랑입니다.

 

달콤하기는 하지만 나의 고통을 같이 감내할 수 없고

더구나 함께 해야 할 고통이 길어지면 못 견딥니다.

그런 얕은 사랑으로는 나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은 너무 오래 되고 깊어서

시간적으로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영원하고,

감각적으로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느끼지 못할 정도이며

어떤 때는 사랑과 반대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고통을 허용하시거나 어떤 때는 일부로 주시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즈카르야 찬가의 후반부 76절부터 79절까지는 예언적 찬미가입니다.

이 부분은 아기야로 시작되는데,

영어는 "Oh, my baby"라고 하지 않고 "you, little child"라고 합니다.

이는 즈카르야가 세례자 요한을 자기의 아들로만 생각지 않는다는 표현이고,

어리고 작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네가 비록 갓난아이고 작지만 옛적 수많은 예언자들의 뒤를 이어

지존하신 분의 예언자가 되고 엄청난 구원의 도구가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세례자 요한보다 더 작은 예언자들입니다.

그렇지만 비록 우리가 어리고 작아도 세례자 요한처럼 주님의 길을 닦고,

말씀이신 분의 소리가 되는 예언자들임을 마음에 새기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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