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1510 추천 수 0 댓글 0
매일미사 말씀 보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두 제자가 엠마오로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두 제자란 어떤 사람들입니까?
이름으로 말하면 그 중 하나는 글레오파입니다.
열 두 사도에 속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주님과 함께 예루살렘에 입성했던 것을 보면
열심히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을 속량하실 분이라고
주님께 희망을 걸고 따랐던 제자들이고
이런 희망으로 예루살렘까지 따라갔던 제자들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들어갈 때만 해도
이런 희망이 성취되는 줄 알았을 것입니다.
시골 촌놈들이 이제 서울도 접수한다는
한껏 부픈 마음으로 입성을 했는데
주님께서는 너무도 허망하게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돌아가셨는데도 그들은 예루살렘에 머뭅니다.
따르던 주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셔서 어찌할 바를 몰랐기 때문인지
아니면 부활하셨다는 여인들의 말 때문인지 모르지만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흘째가 되자 이 두 제자는 예루살렘을 떠납니다.
그러니까 두 제자는 부활하신 주님께 대한 믿음도 없고
희망도 상실한 사람들의 대표입니다.
우리 가운데도 일생 주님을 따르겠다고 수도원에 들어왔는데
수도원을 떠나는 형제들이 있고
교회 공동체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공동체에 대해 실망하고
형제에 대해 실망하고 떠나지만
사실은 오늘 복음의 두 제자처럼
주님을 잃고 떠나는 것이고
희망이신 주님을 잃기에 떠나는 것입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다가가시고
함께 걸으시며
말을 건네십니다.

주님을 잃어버린 그들에게 주님께서 다가가시고
그들의 길을 함께 걸으십니다.
두 제자가 예루살렘을 떠난다고 하였을 때
다른 제자들은 말렸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다고 하니 조금 더 기다려보자고 말렸거나
우리와 함께 지내며 다른 삶을 모색해보자고 말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 제자는 막무가내로 떠났을 것입니다.
우리 형제들도 수도원을 떠날 때는 막무가내입니다.
무슨 말을 해도 듣지를 않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주님과 같은 방법을 써야 합니다.
다가가는 것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렸는데도 저 좋아서 가니 누가 말려.
갈테면 가라지!”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다가가서 함께 가는 것입니다.
내 말을 듣고 내 말대로 그가 하기를 바라지 말고
주님처럼 동행을 하며 그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동행과 동감,
이것이 주님을 떠나는 사람을 돌리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말로써 설득하고
옳고 그름을 가지고 돌리려 하는데
이미 절망하고 막무가내 한 쪽으로 치달리는 사람에게는
그런 것이 통하지 않습니다.
같이 걸으면서 말을 들어주는 것,
동행과 동감이 최고의 설득인 것입니다.
빵을 같이 나누고 대화를 나누는 것,
성찬의 전례와 말씀의 전례가 최고의 감동입니다.
제자들은 빵을 나눈 후 고백합니다.
“길에서 말씀하시고 성서를 풀이해 주실 때
우리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던가?”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05Dec

    대림 2주 월요일-주님 앞에 공동체로 나아가는 구원의 공동체

    “그때에 남자 몇이 중풍에 걸린 어떤 사람을 평상에 누인 채 들고 와서 기와를 벗겨 내고, 그 환자를 예수님 앞 한가운데로 내려 보냈다.”   오늘 복음의 얘기는 병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 곧 협력자들의 믿음 때문에 병자의 죄가 용서받고 병이 치유되...
    Date2016.12.05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481
    Read More
  2. No Image 04Dec

    대림 제2주일

     세례자 요한은 회개를 이야기 하면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도 함께 이야기 합니다.  즉 진정한 열매가 맺어지지 않았다면,  그 회개는 회개라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한편으로 우리가 회개를 이야기 할 때,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가 생각...
    Date2016.12.04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618
    Read More
  3. No Image 04Dec

    대림 제 2 주일-또 회개? 무슨 회개?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 말씀과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회개하여라.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들으며 불경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회개?”   정말 우리교회는 수도 없이 회개를 얘기합니다. 사순절에도 회...
    Date2016.12.04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452
    Read More
  4. No Image 03Dec

    선교의 주보인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대축일-행복하다면

    오늘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의 축일입니다. 그런데 이 성인의 축일을 왜 대축일로 지내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고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들로부터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이 성 프란치스코보다 더 위대하기에 대축일로 지내는 거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Date2016.12.03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397
    Read More
  5. No Image 02Dec

    대림 제1주간 금요일

     오늘 복음에 나타나는 눈먼 사람 둘은  예수가 다윗의 자손, 즉 메시아라고  믿고 고백함으로써 다시 보게 됩니다.  '믿는 대로 되어라'라는 말씀은  예수가 나를 다시 보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다시 보게 된다는 말씀이고,  즉 ...
    Date2016.12.02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769
    Read More
  6. No Image 02Dec

    대림 1주 금요일-자비를 볼 수 있는 눈

    오늘은 눈 먼 두 사람이 보게 되는 얘기입니다. 대림과 성탄과 연결시켜 오늘 얘기를 이해하면 오신 주님을 알아 뵙게 되는 것인데 보게 되기까지 그 과정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끝부분에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다.”라는 묘사가 있는데 <그러자>...
    Date2016.12.02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491
    Read More
  7. No Image 01Dec

    대림 제1주간 목요일

     하느님과 진정한 관계를 맺지 않고서도  하느님을 주님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를 보자면 대부분  내가 원하는 것이 있을 때는 하느님을 찾지만,  내가 의무감을 가지고 무엇인가 할 때에는  하느님을 멀리하고 싶습니다.  아버지의 ...
    Date2016.12.01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593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761 762 763 764 765 766 767 768 769 770 ... 1296 Next ›
/ 1296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