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1996 추천 수 1 댓글 5
매일미사 말씀 보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형제들과 함께 이번 부활 전례를 준비하면서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어떤 Concept로 할 것인지 의논하였습니다.
그 결과, 올해는 부활달걀을 주 주체로 삼기로 하였습니다.
강론을 준비하다 보니 아마 6-7년 전
이 주제로 강론을 하였던 기억이 나고
그 때 강론이 너무 길어서 1부만 하고
2부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마저 하기로 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 때 1부에서 했던 강론을 요약하면
새나 닭이 알을 아무리 품고 있어도
수정란이 아니면 생명이 부화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의 영적인 생명도 하느님과의 거룩한 교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시는 성령을 받지 않지 않으면 안 되고,
Spiritual intercourse없이는 부화하지 못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2부에서 하려고 했던 내용이 그 유명한 啐啄同時입니다.
줄탁동시란 본래 선불교의 대표적 선문답서 벽암록(碧巖錄)에 나오는
“啐啄同機(줄탁동기)”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인데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서는
안에서 병아리가 껍질을 쪼는 것과
밖에서 어미 닭이 껍질을 쪼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안에서 병아리가 쪼는 줄(啐)과
밖에서 어미 닭이 쪼는 탁(啄)이 동시에 함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병아리는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제자가 깨달음을 얻으려면 제자 혼자서 발버둥 쳐서는 안 되고
적절한 때에 스승이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고,
스승은 그 때를 잘 알아 적절하게 깨우침을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깨치려는 제자의 구도열망과 노력이 부족하고
적절한 때,
적절한 스승의 도움이 없으면 깨달음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우리의 영적인 부활,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남에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온다고 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먼저 보겠습니다.
껍질을 깬다는 것은
지금까지 병아리를 가두고 억압했던 단단한 껍데기를 깬다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병아리가 새로운 세계,
새로운 생명을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껍질을 깨는 것의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측면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껍질을 깬다는 것은
단지 껍질을 깨는 것이 아니라 알을 깨는 것이고
그래서 존재의 파괴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알은 병아리가 살아온 전부였습니다.
알이 병아리였고,
병아리가 알이었습니다.
그러니 알을 깬다는 것은
자기가 살아온 세계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고
완전한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익숙한 세계와 거기에 길들여진 나를 동시에 깨는 것입니다.
오늘의 내가 있도록 지금까지
나를 낳아주고 입혀주고 먹여주고 사랑해준 모든 사람을 부정하고
당신의 사랑이 없어도 된다고 하는 것이며,
마마보이의 근성을 깨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준
모든 사상 체계와 가치 체계와 믿음을 부정하고
거기에 기초한 나의 주장과 아집과 고집을 깨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토록 나에게 만족을 주던 좋은 것들을
좋지 않다고 부정하고
거기에 길들여진 맛과 멋과 기쁨과 즐거움을 깨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계를 맞이한다는 것은
이렇게 자기를 깨는 작업이기에
무수히 시도하지만 실패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거듭 실패를 하면서 우리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내가 나를 깬다는 것은 가능키나 한 일인가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럼에도 다 자란 병아리는 더 이상 알에 머물 수 없고
알을 깨지 않으면 질식사할 것이기에 알을 깨야만 합니다.

그래서 병아리는 알을 깨 달라는 신호를 어미 닭에게 보냅니다.
이대로는 도저히 살 수 없으니 살려달라고 하는 것이고
그러나 내가 나를 깰 수 없으니
밖에서 깨 달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으니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지금의 내가 죽는 것에 대한 수용이 있고,
현실을 초월하려는 초월의지와
새로운 생명에 대한 갈망이 있으며,
자기의 한계를 인정하고 은총을 청하는 겸손함이 있습니다.

자기 죽음의 수용,
현실 초월 의지,
새 생명에 대한 갈망,
겸손,
이 네 가지 중 어느 하나가 없어도
우리는 은총을 받을 수 없고
그래서 우리는 알을 깨고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기의 한계를 인정하고 은총을 청하는 겸손함입니다.
병아리가 안에서 껍질을 쪼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겸손의 몸짓입니다.

당신의 은총이 없이는
저는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고
당신의 은총이 없이는
저는 현실에 안주하여 초월할 수 없으며
당신의 은총이 없이는
저는 새 생명의 환희가 어떤 것인지 모르기에
새 생명을 갈망할 수도 없을 것이라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며
하느님의 은총을 청하는 것입니다.
이런 겸손한 구도자에게 하느님께서는 새 생명의 은총을 내립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리스도의 힘이 우리 안에 머물도록
우리의 약함을 자랑해야 하고
하느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머물도록
우리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제가 관구 봉사자였을 때의 일입니다.
성대 종신서원을 한 형제들이 거의 매 년 한 명씩
수도원을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떠나는 형제들을 잡기 위해 무진 애를 썼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아니 역부족이 아니라 아예 아무런 힘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형제들이 떠나는데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저를 괴롭혔고
관구장인 제가 잘못 해서 다 그런 것 같은 죄책감도 저를 괴롭혔습니다.
다른 한 편 하느님과 형제들에 대한 원망도 저를 괴롭혔습니다.
저도 다른 형제들과 같은 형제일 뿐인데 왜 나한테, 이런 원망이지요.

어느 날 패배감, 무력감, 죄책감을 가운데 성체조배를 하는데
“주님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힘이 다 빠졌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하는 소리가 마음을 넘어
입술까지 흘러나왔습니다.
그 마음이 너무 가득하니까 도저히 가두어 둘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그 푸념에 놀라 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느꼈습니다.
주님께 기도하지 않았다고.
물론 그때마다 그 형제를 위해 엄청 기도를 많이 하였지만
나의 노력에 대한 성공을 위해 기도를 하였던 것이지
그 형제를 위해서 기도를 한 것이 아니고
무엇보다도 하느님께 맡기며 기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의 능력을 믿고
그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의 능력에 맡기며
기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 힘으로 해결하려 그렇게 애를 쓴 것입니다.
그리고 내 힘으로 해결하려 하는 동안,
거기에 하느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
그리고 나의 무력함과 한계를 인정하는 순간
저는 그때 비로소 병아리가 껍질을 쪼듯
하느님께 똑똑똑 문을 두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제 안에서 죽어계시던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나의 함이 죽을 때 하느님의 하심이 부활하고
나의 힘을 뺄 때 하느님의 능력이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내가 죽을 때 하느님의 생명이 차 오르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도 한 때 지독한 하느님 부재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형제회가 이상에서 빗나갈 때,
그리고 자기 힘으로 도저히 어찌 할 수 없을 때
프란치스코는 형제회의 미래를 놓고 큰 근심걱정에 쌓였습니다.
그때 하느님께서 프란치스코의 마음속에서 속삭이셨습니다.
이 수도회를 누가 세웠는지,
이 수도회가 누구의 것인지 대답해 보라고 말입니다.
하느님은 아니 계신 곳이 없이 어디든지 계시기에
언제 어디서나 계시지만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근심 걱정할 때 거기에서 하느님은 죽어 계신 것입니다.
하느님께 형제회를 맡기고 나자
하느님은 프란치스코 안에서 다시 살아났고
프란치스코도 다시 평화와 광명을 찾았으며
이때부터 프란치스코는 다른 걱정하지 않고
처음에 자신이 받은
복음 선포의 소명을 단순하게 살아갑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 ?
    홈페이지 가랑잎 2008.03.26 02:19:03
    축~쳐진 저의 어깨에 겨울 땅을 뚫고 나온 새싹처럼, 새롭게 다가오는
    사랑의 목소리로 큰 힘이 되어 주셨습니다. 알렐루야!!! 고맙습니다.
  • ?
    홈페이지 봄비 2008.03.26 02:19:03
    못난 저이지만
    청출어람이청어람을 바라시는 좋으신 주님의 무한하신
    사랑에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 ?
    홈페이지 뭉게구름 2008.03.26 02:19:03
    Happy Easter Day.!!!!!!!!!!
    모든것을 저의 의지로 하지않겠습니다.
    모든것이 다~아~ 주님의 것입니다.
    기쁨도,고통도, 괴로움도 주님의것 입니다.
    어제,김밥 맜있게 냠냠.......
    부활계란 한 꾸러미..........Grazie!!!!!!!!!!!
  • ?
    홈페이지 나그네 2008.03.26 02:19:03
    저는 껍질안에 있는 병아리입니다. 깨기 힘들어하는 연약함을 안고
    도움을 청합니다. 밖에서 쪼아줄때에 맞추어 내가 죽어 내안에
    주님이 부활하게 되는 날이 광명의 날입니다. 부활 축하드립니다.
  • ?
    홈페이지 수선화 2008.03.26 02:19:03
    저도 병아리처럼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고 싶습니다.
    이번 부활에 저의 작은 새로남은 진정 있을 수 있었는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좋으신 말씀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부활 축하드립니다!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04Dec

    대림 제 2 주일-또 회개? 무슨 회개?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 말씀과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회개하여라.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들으며 불경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회개?”   정말 우리교회는 수도 없이 회개를 얘기합니다. 사순절에도 회...
    Date2016.12.04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452
    Read More
  2. No Image 03Dec

    선교의 주보인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대축일-행복하다면

    오늘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의 축일입니다. 그런데 이 성인의 축일을 왜 대축일로 지내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고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들로부터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이 성 프란치스코보다 더 위대하기에 대축일로 지내는 거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Date2016.12.03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397
    Read More
  3. No Image 02Dec

    대림 제1주간 금요일

     오늘 복음에 나타나는 눈먼 사람 둘은  예수가 다윗의 자손, 즉 메시아라고  믿고 고백함으로써 다시 보게 됩니다.  '믿는 대로 되어라'라는 말씀은  예수가 나를 다시 보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다시 보게 된다는 말씀이고,  즉 ...
    Date2016.12.02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769
    Read More
  4. No Image 02Dec

    대림 1주 금요일-자비를 볼 수 있는 눈

    오늘은 눈 먼 두 사람이 보게 되는 얘기입니다. 대림과 성탄과 연결시켜 오늘 얘기를 이해하면 오신 주님을 알아 뵙게 되는 것인데 보게 되기까지 그 과정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끝부분에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다.”라는 묘사가 있는데 <그러자>...
    Date2016.12.02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491
    Read More
  5. No Image 01Dec

    대림 제1주간 목요일

     하느님과 진정한 관계를 맺지 않고서도  하느님을 주님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를 보자면 대부분  내가 원하는 것이 있을 때는 하느님을 찾지만,  내가 의무감을 가지고 무엇인가 할 때에는  하느님을 멀리하고 싶습니다.  아버지의 ...
    Date2016.12.01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593
    Read More
  6. No Image 01Dec

    대림 1주 목요일-마음의 사랑이 신체화하면

    “나의 이 말을 듣고 실천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대림절에 이 말씀을 듣습니다. 그런데 대림절은 성탄을 준비하는 시기, 곧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시기이기에 말씀으로 오시는 주님...
    Date2016.12.01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618
    Read More
  7. No Image 30Nov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나를 따라오너라'라는 예수님의 한 마디에  첫 제자 네 명은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그들은 어부였는데,  복음은 그들이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문자 그대로 읽으면,  제자들이 너무 쉽게 모든 것...
    Date2016.11.30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840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761 762 763 764 765 766 767 768 769 770 ... 1296 Next ›
/ 1296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