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성 금요일-요한의 수난기

by 당쇠 posted Apr 10, 200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군사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나서,
그분의 옷을 가져다가 네 몫으로 나누어 저마다 한몫씩 차지하였다. 속옷도 가져갔는데 그것은
솔기가 없이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이것은 찢지 말고 누구 차지가 될지 제비를 뽑자.”하고 말하였다.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 된 것이다."(요한19,23=24)

당신의 죽음에 대해 참으로 여러 부류가 있습니다.
어머니 마리아를 비롯하여 고통을 같이 아파하는 사랑이 있는가 하면, 베드로처럼 배반도 하지만 그렇다고 도망치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사랑도 있고,
사랑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고통을 같이 할 마음이 전혀 없어
도망쳐버리는 사랑도 있습니다.
당신을 적대시하며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죽음에 적극 가담하는 증오가 있는가 하면,
기대에 어긋난 것 때문에 일시적으로 분풀이하는
소극적인 미움도 있습니다.

군사들은 이도 저도 아닌 부류입니다.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한 것이긴 하지만 어찌 그럴 수 있는지요. 처참한 죽음을 앞에 두고 군사들은 당신 옷 차지에 여념이 없습니다. 당신의 죽음이 이들에게는 정말로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존재는 사랑으로도 남고, 미움으로도 남는 법인데,
이들에게는 당신이 아무 것으로도 남지 않습니다.
당신은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육신으로는 죽으신 것이어도
어떤 식으로든 살아 계시지만
당신의 죽으심에 전혀 무관심한 이들에게는 정말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군사가 다 이러한 것은 아닙니다.
백인대장과 몇몇 군사들은
“참으로 이분이 하느님의 아들이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들도 모를 일입니다.
고백이 믿음으로까지 이어졌는지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요한19,25-27)

그때 어쩌자고 어머니 마리아께서
그 참혹한 현장에까지 따라 오셨는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아립니다.
이제 나이 먹어 사랑의 신비를 조금 이해하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만, 참혹하다고 그것을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지요.
더욱이 어미의 사랑이 아니지요.
어미는 그 어떤 처참함도 봐야만 하고,
설사 구더기가 파먹는 아들의 시체라도 껴안을 테니까 말입니다.
그러니 위한답시고 어미를 따라오지 못하게 한다면
사실은 위하는 것이 아니라 불효이겠지요.
그래서 당신의 어머니께서는 극구 말려도 거기까지 따라오셨고,
저는 너무 끔찍해서 눈을 돌린 것까지
당신의 어머니께서는 뇌리에 새기고 가슴에 새기기 위해
놓치지 않고 다 보셨습니다.

그 어머니를 보시는 당신의 마음은 어떠셨습니까?
고통이 위안을 받으셨습니까?
아니면 고통에 더 큰 고통이 되셨습니까?
둘 다 받으셨겠지요.
우리는 사랑 때문에 위안을 받고, 사랑 때문에 고통을 받습니다.
그리고 사랑 때문에 위안을 주기도 하고,
사랑 때문에 고통을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위안과 고통을 주고받는 그 사랑의 관계에
당신은 저를 포함시키셨습니다.
당신 어머니를 저의 어머니가 되게 하심으로
저를 당신과 동일시하시며 어머니를 저에게 부탁하신 것입니다.
누구를 대신한다는 것은 그를 입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여 당신을 대신한 그때 이후 저는 제가 아니라
당신을 옷 입고 사는 당신입니다.
그래서 이제 저는 당신입니다.

"그 뒤에 이미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목마르다.’하고 말씀하셨다.
거기에는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듬뿍 적신 해면을
우슬초 가지에 꽂아 예수님의 입에 갖다 대었다.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요한19,28-30)

저는 지금도 당신의 말씀,
“목마르다”는 당신의 말씀이 귀에 쟁쟁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그 뜻이 무엇인지 아리송합니다.
절규였습니까, 호소였습니까?
그때 당신은 정말 목마르셨습니까?
몸에서 수분이 다 빠져나가 목이 마르셨습니까?
아니면 사랑에 목마르셨습니까?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하고
외치신 대로 당신은 정녕 그때
아버지의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하신 것입니까?
그래서 당신은 인간적인 절대 고독을 절규하신 것입니까?
그렇다 해도 괜찮습니다.
그런 당신에 실망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감사합니다.
아주 철저히 저희 인간과 같아지신 표시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목마르다는 당신의 말씀은
당신 고통의 절규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신은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하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저희가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에게 양식과 음료를 주었을 때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 마실 것을 주었다.”하시었으니
당신이 목마르다 하심은 당신의 목이 마르신 것이 아니라
당신 지체들인 저희의 목마름을 대신 절규하시고,
그들에 대한 저희의 이웃 사랑을 호소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절규인지, 호소인지
아무튼 당신의 간절함에 그렇게 야박하던 사람들도 마음이 동했는지, 아니면 가는 사람에게 마지막 자선 베풀겠다는 심사에서인지
신 포도주로 당신 입술을 적셔 드리고,
당신은 그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 마지막 말을 토해내십니다.
“다 이루어졌다.”
주님, 저는 이 말씀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제가 직접 들은 말이기 때문이요,
당신이 하신 마지막 말씀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때 그 뜻이 너무 깊이 저에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결코 “다 끝났다.”고 하지 않으시고
“다 이루었다.”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끝까지 겸손하신 당신,
끝까지 가난하신 당신은 분명 “다 이루어졌다.”고 하셨습니다.
일이 다 끝났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모든 일을 다 이루었다고 하신 것도 아닙니다.
모든 것이 아버지의 뜻대로 다 이루어졌다고 하신 것입니다.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고 말씀하신 대로
지금까지 당신이 하신 모든 것은 아버지의 뜻대로 하신 것이며,
당신의 죽으심으로 아버지의 뜻이 완전히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 ?
    홈페이지 뭉게구름 2009.04.10 22:53:56
    주님 사랑 때문에 못 할일이 없어야 하는데...

    제가 하는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부족한 저를 통하여
    주님의 뜻을 이루신다는 것도 깊이 묵상 합니다.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