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예수를 배 안으로 모셔 들이려고 하는데,
배는 어느새 그들이 가려는 곳에 가 닿았다.”
주님께서 물 위를 걸으신 기적은 공관복음 중에서는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에 나오고 그리고 요한복음에도 나오는 얘깁니다.
그런데 오늘 요한복음에 나오는 얘기는 공관복음의 애기와 조금 다릅니다.
아니, 보기에 따라서는 아주 중요한 것이 다른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제목이 모든 복음에서 ‘물위를 걸으신 주님’이지만
실제 내용은 제자 공동체가 호수 이쪽에서 저쪽으로 한 배를 타고 가는
운명공동체라는 얘기이고, 가는 중에 크나큰 풍랑을 만난다는 얘기인데
이는 차안에서 출발하여 피안으로 가는 우리 인생길을 비유하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오늘 복음의 주제는 <우리의 인생길>이고,
우리의 인생길은 혼자 가는 것이 아니고 같이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인생길을 우리끼리 가느냐? 아니면 주님과 함께 가느냐?
이것인데 오늘 요한복음은 주님 없이 제자들끼리 가다가 혼이 나는 겁니다.
물론 공관복음에도 주님 없이 제자들끼리 출발하지만 공관복음에서는 분명
주님께서 가시려는 곳을 먼저 보내셨다고 얘기합니다.
오늘 요한복음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께서 보내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스스로 목적지를 정하고 출발을 한 것으로 나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가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길을 떠나는 것도 주님과 상관없이 떠나고
목적지도 주님이 가라하신 곳이 아니라 자기들이 정한 겁니다.
이것을 우리인생길과 연결시키면 어떠한 얘기가 되겠습니까?
남녀가 서로 사랑하여 결혼을 하고 친지들의 축복을 받으며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데 이제 혼자가 아니라 둘입니다.
그런데 성당에서 결혼했음에도 이 길을 감에 있어서
주님과 함께 가지 않고 주님께서 가라는 곳으로 가지 않습니다.
자기들이 생각하는 목적지를 그저 서로의 사랑을 믿고 출발하고
둘이 힘을 합쳐 어려움을 극복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출발합니다.
그런데 인생길에서 크나큰 풍랑을 만나게 되니
자기들만의 힘으로 갈 수 없음이 드러납니다.
아무리 노를 저어도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뿐 아니라
풍랑에 배가 뒤집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 주님께서 나타나십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제자들이 주님을 찾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알아서 나타나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길에서도 이런 때 도움이 필요하지만
아무도 도와줄 이 없는 것 같고 그래서 청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실은 이 때가 바로 주님께서 나타나실 때입니다.
자기들만의 힘으로는 안 되고 그래서 죽게 되었을 때,
그러나 아무도 도와줄 이가 없다고 생각되는 그런 때,
이 때가 주님께서 나타나실 때인 것입니다.
사실 이 때는 주님을 머리로 떠올리지도 못하고
그래서 도와달라는 소리조차 나오지도 않는 때이지만
소리가 주님을 부르지 않고 존재가 주님을 부르는 때이지요.
아무튼 이 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우리는 너무도 쉽게 어느새 목적지에 도달하고,
이 때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길은 다른 누구의 길이 아닌 우리의 인생길이지만
우리만의 인생길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만의 인생길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가는 인생길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것을 언제 깨달았습니까?
언제 깨닫게 되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