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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4주 금요일-나는 가능성에 승부를 건다

by 당쇠 posted Sep 1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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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살아나셨다고 이렇게 선포하는데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어째서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되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

코린토 교회 때나 지금이나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저는 묻습니다.
왜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습니까?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었으면 좋겠습니까?
있는 것이 좋다면 있다고 믿으십시오.

비단 부활의 문제뿐 아니라 다른 모든 미래의 일들에 대해서
같은 태도를 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미래의 가능성을 보는데
어떤 사람의 미래의 불가능성을 봅니다.
그런데 가능성을 보지 못하고
불가능한 것으로 믿는 순간,
그것은 이미 불가능한 것으로 결정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맞기만 하면 불가능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불가능을 보는 것은 하느님을 보지 않고
인간들이 이룩하는 미래만을 볼 때 어쩔 수 없는 결과입니다.

제가 북한 일을 할 때 취하는 태도가 그렇습니다.
지금처럼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아니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전망을 내 놓았지만
아예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하는 불가능을 믿기보다
하느님의 뜻하심과 능력을 믿고
저는 가능함에 희망을 두고 믿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이면 가능하고
안 되면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죽은 이들의 부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이 아니 계시면 부활이 없습니다.
하느님이 계시는 한 부활은 있습니다.
존재를 있게 하신 하느님께서
존재를 없게 하기 위해
존재를 있게 하실 리가 없습니다.

유한성의 이 세상은 양단(兩端)이 있습니다.
밤이 있으면 낮이 있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선이 있으면 악이 있고
흑이 있으면 백이 있고
성이 있으면 속이 있고
있는 것이 있으면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니 유한성의 이 세상에서는
삶이 있고 죽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초월하는 하느님의 세계에는
이 세상의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부활이 있습니다.
없을 수가 없습니다.
어떤 형태로의 부활일지 그것을 모를 뿐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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