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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2주 월요일-하느님을 보는 눈

by 당쇠 posted Aug 3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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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가족 모임이 있어서 거기에 참석하고
주일이어서 미사를 제가 봉헌하였습니다.
모처럼, 아니 처음으로 4대가 모두 모이는 뜻 깊은 모임이기에
예식과 강론을 잘 준비하였는데
예식에 참석하는 태도나 강론을 듣는 자세가 진지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있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전에 아이들이 없을 때에도 그런 것이 느껴졌기에
이번에 작정하고 한 마디 잘못을 꼬집었습니다.
예언자는 자기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고 하는데 그런 것이냐고.

그런데 사실은 제가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환영을 받습니다.
집에 자주 가지 못하는데다 신부라는 것 때문에
아들, 형제, 삼촌 그 이상으로
어머니, 형제, 조카들에게 사랑을 받고 환영을 받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인간적인 인연 때문에
하느님의 사람으로서의 저는 희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사람으로 대접을 받으려면
인간적으로 거리를 두어야 하고
형제 중 하나로 인간적으로 친밀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사람으로서의 면모를 포기해야 할까요?
어는 것도 포기해서는 아니 되겠지요.
저의 형제들은 저를 형제이면서도 저에게서 하느님을 봐야지요.

이면에서 저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조금 다릅니다.
저의 어머니에게 저는 충분히 아들이면서 충분히 신부입니다.
인간적이고 육신적인 인연으로 보면 이처럼 더 강한 인연이 없지만
제가 수도원 들어올 때 저를 봉헌하시면서
저를 이제 하느님의 아들로 치부하신 것입니다.
인간성숙과 신앙적인 성숙이 높은 단계에 오를 때 가능한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도 예수님에 대해서 이러 하셨을 것입니다.
아들이지만 아들 안에서 충분히 하느님을 보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저의 형제들은 이 얘기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아직 이런 성숙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저를 하느님의 사람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면서도
인간적인 관계가 어느 정도 하느님을 가리고
저에게서 하느님을 보는 것을 방해합니다.
아마 같은 항렬이라 더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복음의 고향 사람들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 대해서 좋게 말하며
예수님 입에서 나온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기도 하지만
한 편 자기들이 아는 집 자식임을 생각하면서
그 이상을 보려고도 인정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보아야 합니다.
같이 살고 있어서 약점을 잘 알고 있는 형제가 강론을 할 때
그 형제의 강론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지.
한 이불을 덮고 자고 있는 배우자를 보면서
그에게 신이 서려있음을 보고 있는지.
지극히 인간적이고
지극히 죄스러운 인간을 보면서 하느님의 사람임을 보는지.
그렇지 않고 하느님과 거룩함은 꼭
특별한 시간,
특별한 장소,
특별한 사람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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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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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뭉게구름 2012.04.03 12:15:27
    신부님께서 수도원에 들어가실 때
    이미 가족들은 하느님의 사람으로 봉헌 하셨고

    벌써 가족들은 신부님을 통해서
    하느님의 모습을 뵈었을 것 입니다.

    허지만 흐르고 있는 핏 줄기는 물 보다 강하다고 하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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