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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4주 화요일- 은총은 물과 같이,

by 당쇠 posted Apr 05,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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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말하기를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하였습니다.
직역하면 높은 선은 물과 같다,
풀어 얘기하면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상선일까요?

주관적으로 얘기하면 각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는 돈이 가장 좋은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술이 가장 좋은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심지어 마약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음악이 가장 좋은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자기를 따르는 강아지가 가장 좋은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뱀이 가장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뱀이 최고로 싫어하는 것, 최악이고
뱀과 마주치는 것은 최악의 상황입니다.
프란치스코에게는 나환자가 최고로 싫어하는, 최악이었고
그래서 두려워할 정도였고 나환자와의 만남을 피하였습니다.
이렇게 선과 악은 주관적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객관적으로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 신앙적으로 보면 하느님께서 上善이고
상선 중에서도 상선인 至上善이십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는 너무도 자주 하느님은 선이라고 노래했고
지상선, 모든 선, 완전한 선, 참된 선, 충만한 선이라고 노래했습니다.

그러니 주관성을 벗어나지 않으면
객관적으로 모두에게 좋은 선은 있을 수 없고
그에게는 하느님도 至上善은커녕 그냥 선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벳자타 못에 잠기고자 했던 오늘 복음의 병자처럼
지상선이신 하느님 은총의 물에 잠기고자 하면
주관성에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자기의 병과 고통에 갇혀 골방에만 있지 말고
병과 고통의 자신을 세상 한 가운데 내놓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관성에서 벗어나 자신을 내놓기만 하면
하느님께서 몸소 찾아오십니다.
하느님은 너무도 좋은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병자는 벳자타 못에 들어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찾아오시어 건강해지고 싶은지 물으십니다.
그러므로 지상선이신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두 번째 자세는
하느님 은총의 물에 들어가려고 기를 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은총의 물이 흘러오도록 수동태가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 은총의 물이 흘러오게 하려면
수동태가 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낮은 곳에 있어야만 합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은총의 물도 위에서 아래로 흐르기 때문입니다.
물이 산꼭대기에 있지 않고 계곡에 있고
가장 낮은 바다에 물이 가장 풍성하듯
지상선이신 하느님도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시고
가장 낮은 곳에 하느님의 은총이 풍성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기를 쓰고 하늘로 오를 필요가 없고
하느님께서 내려오시도록 낮은 곳에 있기만 하면 됩니다.

오늘의 독서 에제키엘서를 봐도
성전에서 나오는 물은 아바라로 내려가서 바다로 흘러갑니다.
그리고 높은 곳은 물이 발목밖에 차지 않지만
점점 흘러가면서 무릎까지 차고 건널 수 없을 정도가 되듯
바다처럼 낮아야지만
온갖 생명이 깃들일 수 있도록 물이 풍성해집니다.
그리고 이 물이 온갖 과일나무를 자라게 하여
과일은 양식이 되고 이파리는 약이 됩니다.
좋으신 하느님이 38년간 앓던 병자를 살리듯 나를 살리시고
살아난 나는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양식이 되고 약이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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