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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일 수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도미니코 posted May 0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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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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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일 수요일
✝️ 교부들의 말씀 묵상✝️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요한 15,2)

영적 열매는 실천으로 완전해진다
사랑에서 나오는 선행으로 우리 결합의 끈을 단단히 묶지 못하고 단지 말로만 믿음을 고백할 때 도달하는 결합의 모습을 보인다면, 우리는 실로 가지이기는 하지만 열매가 달리지 않은 죽은 가지일 것입니다. 성인의 말대로, 실천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야고 2,20 참조). 따라서 가지가 열매를 맺지 못한 채 포도나무 몸통에 달려 있다면, 그런 사람은 농부의 낫에 잘릴 것입니다. 농부는 죽은 가지들을 모두 잘라 내어 쓸모없는 쓰레기처럼 태워 버릴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첫째 오솔길】
창조계
설교 6 사람은 숭고하다
만물은 하느님이 품은 상에 따라 하느님으로부터 흘러나온다. 그리고 지혜와 선은 하느님에게서 흘러나오는 것을 본떠서 특별한 방식으로 지어졌다. 반면에 영혼은 그 이상으로 지어졌고 더 하느님을 닮아 있다.
영혼만이 하느님 자신의 형상대로 지어졌고, 그분의 본성, 그분의 존재, 그분의 흘러나옴과 동시에 안에 머무름, 그분이 거주하는 터전을 본떠서 그분의 형상대로 지어졌다. 우리는 하느님이 품은 상을 본떠서 지어졌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어지기도 했다. 엑카르트는 이 사실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들에 거의 넋을 잃는다. 왜 영혼은 하느님을 닮았는가? 실로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영혼은 그분의 존재, 그분의 일, 그분이 거주하는 터전, 그분이 아들을 낳고, 성령이 꽃피어나는 터전을 본떠 신적 본성을 나누어 가지고 있다.(162)

✝️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4월 4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사도 15-19장
<생태 영성 주간> 고요와 침묵과 절식을 통한 단순한 삶

✝️ 수요일 그리스도인 일치의 날✝️
세계 교회사, 아우구스트 프란츤
제 2부 중세 그리스도교
제 3기 : 1050 ∼ 1300년
중세 중기 교회의 전성
제4절: 서구의 새 정신
재속 성직자의 개혁:
재속 성직지들도 개혁에서 제외되어 있지는 않았다. 최근의 연구는 11∼12세기 참사회원들의 개혁운동이 얼마나 강하였고, 그것이 얼마나 모든 재속 성직자들에게 사제 정신의 참된 그리스도교적 쇄신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가를 명백하게 해주었다.
우선 주교좌 성당과 공주 성직자단 성당의 참사회원들이 이 운동으로부터 감동을 받았다. 독립된 외부 본당이 아직 적었고 성직자의 대다수가 공동기도를 위하여 주교좌 성당이나 최초의 본당인 교구의 중앙성당에 집중되어 살던 시기에, 이 공주 성직자단의 참사회원들을 위한 좋은 생활 규정을 발견하는 것이 그만큼 더 중요하였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히포의 주교로서 자신과 함께 공동생활을 하는 성직자들에게 일정한 규칙을 만들어 주었다. 그후 이러한 생활방식은 “수도자 신분”에 상응하여, “참사회원 신분”으로 불렸다. 여기에서 사도들을 본받는 “공동생활”이라는 원시 그리스도교적 이상이 보였다. 참사회원들에게는 수도자들처럼 사유재산이 금지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은 수도선서를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공동생활은 지도자에 대한 광범위한 위계와 순명을 요구하였다. 그렇게 해야만 주교좌 성당이나 교구 중앙성당에서의 특별히 장엄한 전례의 접전이 보증될 수 있었다.
더 자유로운 성직자 공동체는 쉽게 해체될 수 있었으므로, 새로운 개혁의 노력이 끊임없이 필요하였다. 그래서 보니파시오와 카를 대제는 개혁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메츠의 주교 크로데강은 768년에 새 참사회 규칙을 작성하였다. 805년의 법령은 프랑크 왕국의 모든 성직자들이 수도자적으로, 즉 수도생활올 하든지 아니면 “참사회적”으로, 즉 공주 성직자단에서 생활해야 할 것을 요구하였다. 루드비히 경건왕은 816년에 아헨에서 고유한 법규를 공포하였다. 불행히도 이 개혁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고, 곧 카롤링거 왕조 해체의 소용돌이 속에서 소멸되고 말았다. 9세기와 10세기에 주교좌 성당과 공주 성직자단 성당의 공동재산은 개별 교회록으로 분할되었고, 따라서 공동생활도 중지되었다.(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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