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말씀나누기

2022년 3월 9일 수요일 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 기도

by 고도미니코 posted Mar 09, 202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 1오늘의 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 기도와 지향✝️
2022년 3월 9일 수요일

✝️ 1교부들의 말씀 묵상✝️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루카 11,30-31)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이 말씀은 교회의 신비를 분명하게 드러내 줍니다. 교회의 양 떼가 온 세상으로 흩어집니다.
회개를 통해서 니네베에 이르고(요나 3,5 참조) 지혜에 대한 갈망으로 남방 여왕에게까지 미칩니다. 그리하여 평화를 이루는 솔로몬의 지혜를 알게 됩니다(참조: 1 열왕 10,2; 2역대 9,1). 여왕의 나라는 갈라지지 않고,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한 몸으로 만듭니다. 그 위대한 성사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연관된 것이며(에페 5,32 참조) 그 실제는 예시되었던 것보다 더 위대합니다. 이제 그 신비가 진리 안에서 완성됩니다. 그때는 솔로몬이라는 표상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리스도께서 당신 육신으로 여기 계십니다.
-암브로시우스-

✝️ 1성인 / 영적 글 묵상✝️
말씀의 불꽃(거룩한 독서(Lectio Divina)에 관한 이야기 / 프랑스와 까생제나-트레베디
모든 것을 휩쓸어 가는 강
또 다른 표상으로 이야기한다면.
거룩한 독서의 강은 생명수의 강으로서 날이면 날마다 불어나 제 흐름 속으로 모든 범람을 이끌어들이고. 삶의 모든 침적물들을 그 고유함과 구체성. 그리고 직접성과 함께 이끌어들이는 소명을 지니고 있다. 한마디로 모든 것을 제 흐름속으로 이끌어들여야 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도성을. 강물의 줄기들이 지존의 거룩한 장막을 즐겁게 하도다(시편 46,5).
우리는 성경인 이 예루살렘을 향해서 “바다의 모든 무리"(이사 60.5). 다시 말해 삶을 구성하는 모든 것의 방향을 잡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이와 반대 방향으로 일상의 가장 자질구레하고도 평범한 것들을 향해 나아가되, 언제나 우리 내면에서 성경이라는 거대하고도 다중적인 큰물의 물소리를 들어가면서 나아가야 한다.(90)

✝️ 1에페소 평화기도 다락방 3월 영적 수련 성월 1주간 회개/겸손 ✝️
금주간 성서읽기 마태 13-17장

✝️ 1수요일 그리스도인 일치의 날✝️
세계 교회사, 아우구스트 프란츤
제1부 고대 그리스도교
제 2기 : 312-604년
콘스탄티누스 대제부터 그레고리오 대교황까지
제4절: 고대교회에서의 수덕과 수도생활
수도생활의 본질:
그리스도교의 수도생활은 그리스도교와 교회의 본질로부터만 이해될 수 있다. 그 안에서 교회의 참된 자기실현의 한 부분이 발견된다. 수도생활의 기원은 복음에 근거하고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따름에 있어서 하느님에게 남김없이 바치려는 것이고, 또 세 가지 “복음의 권고”에 대한 충실한 실천올 통하여 행위로 옮겨 놓으려는 것이다.
“누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기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합니다. 사실 제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입니다. 온 세상을 벌어들인다 해도 제 목숨에 손해를 본다면 사람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마태 16,24-26).
하느님만을 위해서 있고 또 그분의 거룩한 카리스마 - 은총 - 에 의하여 사는 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의 목표이다. 그것을 달성하고 또 이 길에서 다른 무엇에 의해서도 저지받지 않기 위하여 예수의 참된 제자들은 자기 재산을 버리고(청빈), 자신의 육체와 가정의 행복을 단념하고(독신. 하늘나라 때문에 결혼올 단념), 끝으로 자신의 자아를 단념한다(순명, 남에게 복종). 어떤 이들은 그것을 많이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적게 한다. 절대적인 기준은 복음에 정해져 있지 않다. “그것을 받아들일 만한 사람”(마태 19,12)에게만 완전한 헌신이, 그러나 의무로서가 아니라 권고로 주어져 있다. 구원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있다. 만일 구원이 소수에 의해서만 도달될 수 있는 것이라면, 구원의 보편성은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교회는 완덕을 추구하는 수덕자들만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그들을 위해서도 죽었기에 역시 구원에 도달해야 하는 약자와 작은 자들을 위한 자리가 충분히 있다. 그러므로 교회가 한편으로 완덕의 추구를 인정하고 장려한다 할지라도, 이것은 어느 시대든 인간 모두에게 사랑을 다하여 배려해야 하는 교회의 의무에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 이에 반하여 어떤 유의 일방적인 편향은 교회의 책임인 구원 사명의 부인을 의마한다. 그것은 엄격한 의미에서 이단이다. 교회를 협소하게 만드는 모든 것만큼 교회에 손해를 끼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115)
----------------------------------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수도회 한국관구
에페소 기도의 집

☨에페소 기도의 집은 순례와 피정을 통한 에페소 성모님 성지 보존과 중동평화와 난민을 위한 기도를 지향합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 ?
    홈페이지 가온 2022.03.09 06:50:28
    지금은 그리스도께서 당신 육신으로 여기 계십니다.아멘.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