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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나누기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by 김명겸요한 posted Jun 2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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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이야기는

 네 복음서 모두에 나타납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이야기가 조금씩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차이가 많이 나는 요한복음을 제외하고

 세 복음서 안에서도 그 차이가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외딴 곳으로 가십니다.

 마태오복음에는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지만,

 마르코복음과 루카복음에서는

 파견되어서 복음을 선포하고 나서

 예수님께 돌아온 제자들에게

 휴식이 필요해서

 외딴 곳으로 가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옵니다.


 그 이후의 장면이 조금씩 다릅니다.

 마르코복음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르치셨다고 전하며,

 마태오복음은

 병자들을 고쳐주셨다고 전합니다.

 그리고 루카복음은

 말씀과 치유 둘 다를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느님 나라에 관한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은 치유를 통해서

 직접 체험되었습니다.

 루카는

 하느님 나라의 선포와 하느님 나라의 체험,

 이 둘 다를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어느 하나만 전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는 말은

 공허한 외침이 아닙니다.

 그것은 실제로

 이 세상에서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 치유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로서 하시는 것이라는 점,

 그렇게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음을 증명한다는 것과

 연관시켜서 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아직 부족합니다.

 치유를 통한 체험이

 병자들이라는 제한된 사람들에게 이루어졌다면,

 배부름의 체험은

 그 누구도 제외시키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이

 빵의 기적을 통해 하느님 나라를 체험했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선포,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것,

 그것은

 병을 치유해 주시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

 배고픔을 해결해 주시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지금은 더 이상 볼 수 없는 하느님,

 우리 곁에서

 직접적으로 우리의 병을 치유해 주시거나,

 우리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시지는 않지만,

 또 다른 모습으로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육의 모습으로 2000년 전에

 당신을 드러내신 하느님께서는,

 이제 빵과 술의 모습으로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육의 모습은 이스라엘이라는 한정된 공간,

 30여년이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서 나타나셨다면,

 빵의 모습 속에 있는 주님은

 우리가 세상 어디에서나 만나뵐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빵으로 우리의 입을 통해

 직접 우리 안으로 들어오셔서,

 우리의 살과 피가 되십니다.

 그렇게 우리와 온전히 하나가 되십니다.


 그 일치에로의 초대에는

 그 누구도 제외되지 않습니다.

 빵을 그리스도의 몸으로 고백하는 사람은,

 물론 그 믿음이 온전하지는 못할지라도,

 그 일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 세상에서

 하느님과의 일치를 맛보면서,

 하느님 나라에서 누릴 영원한 일치,

 그 영원한 행복을 꿈꿀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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