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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나누기

연중 제 6 주일-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by 김레오나르도 posted Feb 1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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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독서와 복음은 나병환자에 대한 얘기이고

그래서 오늘은 병자의 날입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나병환자에 대한 신구약의 차이가 아주 큽니다.

나병환자에 대한 예수님의 생각은 가히 혁명적이고

구약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는 정반대입니다.

 

구약은 병을 하느님의 벌로 생각한 측면이 크고

특히 나병은 부정한 병으로 사람들 서리에서

완전히 격리시켜야 하는 천형天刑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나병환자는 사람인데도 사람들 가운데 살지 못하고

하느님마저도 품어주지 않고 내치시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는 마치 나환자였던 한 하운의 시와 같은 것입니다.

 

옛날부터 사람이 지은 죄는 사람으로 하여금 벌을 받게 했다.

그러나 나를 아무도 없는 이 하늘 밖에 세워놓고 죄명은 문둥이.

이건 참 어처구니없는 벌이올시다.”

 

불교의 화두 중에 이런 말이 있지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이 화두의 뜻은 여러 가지로 풀이될 수 있지만 저는 이렇게 풀이합니다.

산은 산인데 사람들은 산을 산으로 보지 못합니다.

암벽 등반가는 암벽이 있는지 없는지를 중심 두고 보고

밤 장사는 밤나무가 있는지 없는지를 중심으로 봅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만 보기 때문에 존재를 존재로 못 보는 겁니다.

 

나병에 걸린 사람도 사람인데 사람들은 나병 때문에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사람들 가운데서 내치는 거고,

그리고 구약에서는 하느님마저도 내치는 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환자를 이 천형에서 벗겨주심으로써

사람들 가운데 살게 했을 뿐 아니라 하늘로 초대하십니다.

 

제가 대학생들을 데리고 산청에 갔을 때 들은 얘기입니다.

병실방문을 하게 했는데 거기서 한 할아버지를 만난 얘깁니다.

이 할아버지는 일제시대 의사였지만 나병에 걸렸습니다.

결국 병원을 처분하고 집을 나와 한 하운 시인처럼 떠돌이가 되었지요.

 

한 하운 시인의 시 중에서는 이런 시도 있습니다.

간밤에 얼어서 손가락이 한 마디. 머리를 긁다가 땅 위에 떨어진다.

이 뼈 한 마디 살 한 점, 옷깃을 찢어서 아깝게 싼다.

하얀 붕대로 덧싸서 주머니에 넣어둔다. 날이 따스해지면

남산 어느 양지터를 가려서 깊이깊이 땅 파고 묻어야겠다.”

 

이렇게 매일 자신의 장례를 치르는 고통도 너무 컸지만

무엇보다도 사람 취급 받지 못하고 사람들 서리에서 쫓겨나 사는 것이

고통을 넘어 너무도 비참하고 불행하여 몇 차례 자살을 시도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자살도 번번이 실패하여 체념을 하고

마침내 성심원에 흘러들어와 사시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냥저냥 사시다가 공부를 많이 하신 분이기에

책도 보고 성심원 분위기 때문에 성서도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느님은 선한 사람 악한 사람 가리지 않고

똑같이 햇빛과 비를 주신다는 말씀을 읽고

할아버지는 하느님과 하느님 사랑을 체험하셨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문둥이로 봐도 하느님만은 당신을 사람으로 보신다는 것,

또 사람들은 당신을 내쳐도 하느님만은 당신을 천국으로 초대하신다는 것,

이것 때문에 명성과 재산과 가족을 다 잃었어도 할아버지는 이것이 다

하느님 나라를 얻기 위한 것이라고 은총으로 받아들이셨고,

그래서 너무도 행복하여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찾아간 것이 아니라

나병환자가 사람들을 뚫고 스스로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사람들을 피해 살았고 그렇게 해야 하는 사람이 사람들 눈총을 무릅쓰고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그만큼 예수님의 사랑을 믿었다는 표시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역시 그 믿음대로 손을 얹어 고쳐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사랑은 주님처럼 병자를 가엾이 보지만 이기주의는 병자를 더럽게 보고,

이기주의는 병자를 내쫓지만 사랑은 프란치스코처럼 병자를 포옹하지요.

 

병자를 더 이상 병자로 보지 않고 사람으로 볼뿐 아니라

나병환자인 주님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다시 한 번 한 하운 시인의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라는 시를 옮겨 봅니다.

 

아버지가 문둥이올시다

어머니가 문둥이올시다

나는 문둥이 새끼올시다

그러나 정말은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하늘과 땅 사이에 꽃과 나비가

해와 별을 속인 사랑이 목숨이 된 것이올시다.

세상은 이 목숨을 서러워서 사람인 나를 문둥이라 부릅니다.

호적도 없이 되씹고 되씹어도 알 수는 없어

성한 사람이 되려고 애써도 될 수는 없어 어처구니없는 사람이올시다.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나는 정말로 문둥이가 아닌 성한 사람이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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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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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Thomas 2018.02.11 21:04:30
    감사합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궁금해하면서도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지 단순하게 넘어갔는데...

    "자기가 원하는 것만 보기 때문에
    존재를 존재로 못 보는 겁니다."라는 나눔이

    제자신이 사람들의 관계속으로 들어가서
    존재를 존재로 보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 profile image
    홈페이지 이필수다리아 2018.02.11 06:49:22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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