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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나누기

남북통일 기원 미사-믿음의 희망과 용기가 있어야만

by 김레오나르도 posted Jun 2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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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우리 가운데 많은 분들이 근자에 남북 간에 있었던 일들을 보고

또 다시 좌절감을 느꼈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지난 5년 간 끊어진 남북 관계가 이어질 듯하다가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닌 것 때문에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분들의 입장에서 보면 별 것 아닌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갈라서는 큰 이유,

용서를 할 수 없고 대화를 할 수 없는 큰 이유가 되는 것을 보고

너와 나 사이의 생각의 차이가 이렇게 크고

이 차이가 그렇게 극복할 수 없는 것인지 하며 좌절하는 것이지요.

 

저도 그렇게 느낍니다.

남과 북이 60년 넘게 이렇게 온 것을 봐도 그렇고,

남과 북 이전에 남쪽에서도 이 생각차이를 극복하는 게 이리도 힘들까,

인간적으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포기하고픈 생각도 듭니다.

 

그러다가도 이런 인간적인 생각에 머물러서는 안 되지 하면서

하느님께 믿음을 두며 다시 용기를 내고 희망을 추슬러 기도를 합니다.

그러니까 기도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용기와 희망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나 혼자 기도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같이 기도해야 함을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그렇다고 이 말씀을 혼자서 기도하면

안 들어주신다는 말씀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혼자 기도하는 것에서 나아가

같이 기도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야 한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기도운동을 해야 한다는 뜻인데,

공동체의 문제가 인간적인 노력으로 해결이 되지 않을 때,

다시 말해 서로의 생각과 이익이 충돌이 되어 해결이 되지 않을 때

그때 더 이상 인간의 노력으로만 해결하려 하지 말고

마음을 모아 같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일 겁니다.

이렇게 같이 기도할 때 인간적으로 극복 못한 차이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2008년 3월 20일 연합뉴스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기사를 전합니다.

 

[“서울=연합뉴스) 미하일 고르바초프(77) 전 소련 대통령이 기독교 신도임을 처음으로 시인했다. 이탈리아 아시시에 있는 성 프란체스코의 무덤을 깜짝 방문한 자리에서다. 소련의 마지막 공산주의자 지도자였던 고르바초프는 딸 이리나와 함께 프란체스코의 무덤 앞에서 30분간 무릎을 꿇은 채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 그는 "내게 성 프란체스코는 또 다른 그리스도"라며 "그는 나를 매료시켰고 내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고 말했다.

 

이번 방문으로 고르바초프가 겉으로는 무신론자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지만 사실은 기독교도일 것이라는 수십년 간의 소문히 사실로 확인됐다. 또 지난 1989년 이뤄졌던 고르바초프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의 만남도 재조명되게 됐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19일자에 따르면 고르바초프는 러시아 정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으며, 그의 부모도 기독교도였다. 특히 그의 장인, 장모는 신앙심이 아주 깊었으며, 2차 세계대전 기간에 집에 성상을 모셔두고 있다는 이유로 처형됐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냉전시절 측근들에게 아무래도 고르바초프가 `남들 모르게 기독교를 믿는 사람(closet believer)'인 것 같다고 수도 없이 말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고르바초프는 불과 최근까지도 한 인터뷰에서 "자연이 나의 신"이라고 말하는 등 범신론자임을 자처했다.

 

신문은 고르바초프가 프란체스코 무덤에서 기도가 끝난 뒤 성당을 둘러보고 특별히 `스폴레토에서의 꿈'을 묘사하고 있는 프란체스코의 성상을 보여달라고 요청했다고 소개했다.

 

1181년 아시시에서 태어난 프란체스코는 음유시인으로 살다가 스폴레토에서 그리스도의 환시를 본 후 아시시로 돌아가 기독교에 귀의했다. 어린 시절부터 빈자들을 불쌍히 여긴 프란체스코는 광야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며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신부가 됐다.

 

고르바초프는 "나를 교회로 인도한 분이 성 프란체스코였기 때문에 그의 무덤에 온 것은 아주 중요하다"며 "가톨릭 뿐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이토록 중요한 장소에 있다는 게 너무 감동적"이라며 말했다.

 

현지 일간 `라 스탐파'는 고르바초프가 아시시에 도착한 것을 `정신적 페레스트로이카(개혁)'로 묘사했다.]

 

2008년 저는 북한에 종합 복지관 “평화 봉사소”를 짓기 위한 마지막 공사와

북한과의 마지막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북한이 로켓트를 발사하여 남북 관계도 좋지 않았습니다.

아주 힘든 비관적인 상황에서 이 기사를 접하였고, 저는 이에 용기를 얻어

북한 복음화를 위한 기도운동을 전개해야겠다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가톨릭교회는 소련(소비에트 연방)의 회개를 위해

그렇게 오랫동안 마음을 모아 기도를 했는데 그 기도의 결과로

공산주의 국가 출신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이 되고,

가톨릭신자인 고르바초프가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되어

소비에트 연방에 속한 나라들이 독립을 하게 되고 자유를 찾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갈려있던 독일이 통일이 되기까지

매주 열린 개신교와 가톨릭의 지속적인 기도회가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저는 이 두 가지 사건에서 힘을 얻어 기도운동을 지금 하고 있고,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3년이 되고, 북한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는 오늘

다시 한 번 믿는 마음으로 그리고 마음을 모아 기도하자고 저는 역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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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아가다 2013.06.25 12:39:04
    마음을 모아 기도 드리고 사랑의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 나라의 평화를 위하여 , 온 세상의 평화를 위하여
    한국 전쟁 피난중에 나를 낳아주신 엄마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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