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119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며칠 전 오랜 가뭄의 와중에 달디 단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이었다.

  안가 본 코스를 택해 어림잡아 산을 오르려 하니, 길이 잘 나지않은 골짜기로 들어서 등산화는 질척하게 다 젖었고 바지도 많이 이슬비에 스며들어 제대로 걷기에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한참 그렇게 애를 먹으며 산길을 헤집으며 오르다가 12시가 좀 넘어 비를 피해 점심을 먹을 요량으로 마땅한 장소를 눈여기고 있을려니, 마침 가까이 아이들이 재잘대는 소리가 들렸다.  "이 깊은 골짜기에 왠 아이들...?"  의아했지만, 곧 선생님들과 함께 노란 뻐스에 실려 자연학습을 나온 애들임을 즉시 알게 되었다.  비를 피해 가건물식 텐트가 넓게 쳐진 식당 안으로 들어서니, 신이 나 뛰어 노니는 유치원 꼬맹이들과 젊은 선생님 몇 분들의 분주한 모습!

  그래서 입구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사갖고 간 3천원 짜리 김밥을 펼쳐 먹으려 하는데, 깔끔하고 예쁘장하게 생긴 사내 아이가 쫄르르 달려 오더니 내 곁에 턱을 치받치고 있어 일거일동을 지켜보는 거였다.  "욘석 좀 봐라.  얘, 김밥 하나 먹으련?"  고개를 끄덕끄덕...그렇게 하나를 먹으며, 맛있는 모양으로 더 주었으면 하는 눈치다.  그러나 3천원 짜리 김밥의 양이 오죽하랴.  내 배에도 차지 않은 적은 양이라, 더 주기엔 좀 그랬다.  그리고 아이들의 분위기를 보니 선생님들이 간식도 준비해 온 듯 싶었고, 정말 못먹어 배고파 보이는 그런 애들이 아닌 듯 싶어, "애, 너무 적은 김밥이라 더 나눠주기가 좀 그렇구나!"  그리고는 이미 1/3 정도 마신 두유를 보고는, "그건 뭐예요?"  "이것도 마시고싶은 거니?  그런데 어쩌지, 아저씨가 감기에 걸려 이미 입을  댄걸 네게 줄 수가 없겠는걸!"

  이렇게 그 애와 주고받는 사이에 선생님 한 분이 지나치면서, "준호야, 너 왜 아저씨를 그렇게 귀찮게 하니?  저기 가면 간식거리 많으니 어여 저쪽으로 가서 놀렴."  그리고보니 할아버지뻘 되는 내가 졸지에 아저씨가 된 꼴이어서 좀 웃음이 났다.              


  준호와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녀석의 천사같던 천진스런 접근이 내내 잊혀지지 않았다.  시나브로 비가 내리던 날, 그토록 깊은 산중에서 만난 아이들의 뛰어놀던 모습도 매우 신기스러웠다.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들의 교육으로 낱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유난하지 않는가?  맛난 걸 주려해도 천진스러움이 사라져 이상하고 무서운 사람 취급을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여, 낱선 얼른이란 이유 하난 만으로도 인간관계에 삭막한 담이 쳐지는 요즘이 아니던가.  준호는 요즘 애들같지 않게 쓸쓸한 그림자나 어둠을 전혀 느낄 수가 없는 해맑음이었다.  지난번 산 속 쉼 의자에서 쉬는 동안 내 앞으로 날아온 직박구리처럼, 준호의 천진스런 태도도 같은 맥락이었으리라.

     

  높이 자락 비에 젖은 산길로 더 이상 정상에로의 접근은 일찌감치 포기한 그날이었지만, 대자연의 품 속 비가 내리는 와중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 만은 아닌 듯 싶었다.   

  눈을 한껏 돌려 청계산이란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본 그날은 가뭄 끝에 내린 달디 단 비라선지 더욱 상쾌하였다.  조용하지만 산중 대자연에는 온갖 생명들- 갖가지 나무들과 풀들, 곤충들과 풀벌레 소리, 새들...서로간 상생(相生)의 그 어울림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특히 저마다 있을 자리에 자연스럽게 살아가며 얽히고설켜 지내며서도 서로 양보하며 조화를 이루는 고요함과 평화로움!  그런 자연에서 얼마나 좋고 많은 것을 배울 수가 있는지!  그래서 어쩌다 자연과 접하면 비록 도가적인 풍토만은 아니더라도 무위자연(無爲自然)이란 말이 쉽게 내 마음에 와 닿는 건지도 모르겠다.

  오래 전, 고교 1학년 때였으리.  국어 선생님 시간에 본인 원하는대로 작문을 짓게 하셨다.  그때 내가 써낸 글은 뜻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호연지기(浩然之氣)'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내 존재란 싹은 프란치스코 성인과의 만남 이전에 이미 자연과 쉽게 접했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이들이 자칫 지나친 욕심으로 제 분수를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 요즘인가?  그러다보니 생각과 말과 행위에 있어서, 비움의 아름다움인 자연의 순리 대신 얼마나 많은 욕심이란 암(癌)을 쌓으며 살아가는지!  암이란 곧 물질을 산처럼 많이 쌓아 생기는 마음이나 육체의 병을 의미하지 않던가.


  여하튼 그날, 청계산 자락 자연의 품속 귀여운 '준호'와의 짧은 만남은 어른들과 아이들과의 석연치않은 요즘의 교육 시절에, 내내 신선함으로 남아있어 "참, 준호, 고 녀석!" 하며 훈훈한 마음의 미소를 띄우게 된다.

              


생활나눔

일상의 삶의 체험을 나눕니다.

  1. No Image

    나의 절친, 인왕산

     T 나의 절친, 인왕산     점심 후 식곤증이 몰려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늘 오르던 인왕산길을 걷는다.   어릴적 동지기(현충원)가 늘 향수처럼 그려진다면, 인왕산은 내 후반 인생의 친근한 벗이려니...근 40여년을 정동에서 지내면서 가장 자주 오르는 곳...
    Date2023.12.22 By김맛세오 Reply0 Views71
    Read More
  2. No Image

    "두려워말라. 용기를 가져라!"

    T 평화와 선    내 초교 동창중에 한ᆢ란 녀석이 있다.  요즘 유명 배우로서 잘 나가는 한ᆢ의 아버지이기도.  평소 동창 카톡방에 폰 사진이나 글을 얼마나 재밋게 잘 올리는지...여튼 자만감에 가득찬 녀석의 글을 대하노라면 실소도 하지만, 가끔 너무 지껄여...
    Date2022.01.05 By김맛세오 Reply0 Views779
    Read More
  3. No Image

    적선, 자선, 아님 연민으로...?

    평화와 선     우리 동네 관할 구역내, 소공동 주민센터 주변에서 일을 해온지도 어언 3년이나 되어간다.  시작한 처음에는 주변에서 사회적 허드레일을 왜 하려느냐 분분한 말을 듣기도 하였지만, 서울에서도 중구 소공동이란 지역은, 관공소가 많은 지역이요...
    Date2021.12.06 By김맛세오 Reply0 Views546
    Read More
  4. No Image

    달마사에서 내려다 본 정경

    T 평화와 선     원래는 오랫만에 현충원엘 가려고 나섰는데, 코로나로 인해 출입 금지였다.  이왕 나선김에 현충원에는 못들어가더라도 방향을 바꾸어 달마사 쪽으로 가보리라 마음먹었다.   필시 흑석동으로 넘어가기 전 산으로 오르는 길이 있으리라 짐작한...
    Date2021.09.24 By김맛세오 Reply0 Views589
    Read More
  5. No Image

    아끼어 온 바이올렡의 교훈

    T 평화를 빌며...     작년 리모델링을 하면서 한 층을 더 올린 5층엔 빈 공간이 많아, 그냥 썰렁하게 놓아 두느니 햇볕 잘 드는 창가 쪽으로 화분들을 키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계획을 실천에 옮겨, 요즘엔 크고 작은 화분들이 꽤 ...
    Date2021.07.28 By김맛세오 Reply0 Views680
    Read More
  6. No Image

    진주 빅토리아 할머니와의 만남, 고별

    T 평화와 선     며칠 전, 빅토리아 할머니의 장례미사에 참석코자 전 날, 진주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하기사 할머니가 영면하시기 일주일 전쯤에, 갑짜기 할머니 근황이 궁금, 진주행 기차표를 끊어 놓았다가, 당시 칠암동 성당 상황이 여의치않아 취소했...
    Date2021.07.26 By김맛세오 Reply0 Views674
    Read More
  7. No Image

    자꾸만 눈에 밟히는 민달팽이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목, 서대문 농협 앞에 꽃들판매 좌판을 벌여놓은 요즈음.  그중에 눈에 들어 온 작은 키의 나무처럼 자란 「바질」이 눈에 띄었다.  조금 거금이라 사지는 못하고 저녘 식탁에서 그 야그를 했더니, 고맙게도 관구 봉사자와 경리 담당 형제...
    Date2021.03.19 By김맛세오 Reply0 Views850
    Read More
  8. No Image

    마리나 할머니, 잘 지내시죠?

    마리나 할머니, 잘 계시죠?작성자김 맛|작성시간10:21|조회수13목록댓글 5글자크기 작게가글자크기 크게가 T 온 누리에 평화   얼마 전 마을에서 90세 잔치를 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할머니는 「산청, 성심원」에 거하시는 분으로, 평생을 보지도 못하...
    Date2021.02.14 By김맛세오 Reply0 Views812
    Read More
  9. No Image

    할아버지, 그 때, 참 죄송했어요

      난 할아버지에 관한 일화도 적쟎게 간직하고 있으니, 그마만큼 손자에 대한 내리사랑이 각별하셨던 게다.   가족들 뉘게든 호랑이같이 무섭게 대하셨던, 그런 할아버지가 손자들에겐 자애롭기 그지없으셨으니까...   그런데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할아...
    Date2021.02.14 By김맛세오 Reply0 Views787
    Read More
  10. No Image

    엄마의 보청기

    T 온 누리에 평화를...     요즘 오랜 청각의 장애로 한 쪽 귀가 거의 안들려, 아침 미사 강론 때, 주례자의 목소리가 작거나 마이크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음 제대로 경청하기가 어렵다.   초교 4학년 무렵, 아이들과 기마전을 하면서 마침 기수가 되어 싸우다...
    Date2021.01.22 By김맛세오 Reply0 Views842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 52 Next ›
/ 52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