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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평화와 선

 

  며칠 전, 빅토리아 할머니의 장례미사에 참석코자 전 날, 진주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하기사 할머니가 영면하시기 일주일 전쯤에, 갑짜기 할머니 근황이 궁금, 진주행 기차표를 끊어 놓았다가, 당시 칠암동 성당 상황이 여의치않아 취소했고 할머니께 전회로만 뵈러 간다고 했다가 취소한 걸 말씀드리면서, 목이 좀 아프시다는 말씀을 들었지만,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이야...!

 

  내 평생 빅토리아 할머니와의 인연은 오묘했으니, 예전에 '꿈 이야기'를 글에 올린 적이 있었으니,

1981년도 1월에 진주 칠암동 수도원으로 성대서원 1주간 피정을 하러 갔었다.  첫 날 할머니를 정식으로 뵙기도 전에, 할머니 스스로 풀기 어려운 고민꺼리를 그날 밤 밤새도록 가위눌리는 꿈 속에 꿈을 꾼 것이니, 그 꿈으로 인해 할머니의 2가지 풀기 어려운 신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

 

  그런 인연으로 먼 훗날 할머니와의 재회를 통해, 진주 칠암동 성당의 빅토리아 할머니와의 인연은 각별할 수 밖에...처음 뵈었을 당시엔 당당해 보이시던 기골이셨지만, 허리가 꼬부라지신 92세 노년의 모습을 가끔 대하면서, 그래도 늘 할머니의 자상하심에 기도중에 잊지않은 특별한 분이셨다.

 

   할머니는 대학생이던 외아들을 잃으셨고 직계 가족이 없었지만, 다행히 같은 동리의 대녀 부부의 잦은 왕래가 있었고, 제일 먼저 할머니의 고별 소식을 전해준 분도 그 대녀였다.

 

  장례미사가 있던 날, 진주엔 소나기가 퍼부었고 코로나로 참석 인원이 적으리라 여겼지만, 평소 늘 기도생활에 전념하시던 좋은 모습에, 본당 신자들은 입추의 여지없이 성당을 꽉 채워 할머니를 송별해드렸다.

  어디 그 뿐이랴! 진주행 전 날 저녘 식사에 할머니의 영면 소식을 전해 들으신, 유 사베리오 전 군종 주교님(1981년도 당시 그곳 본당 사제이셨던 )도 장례미사에 참석, 강론까지 해 주셨으니 그곳 본당으로서는 한마당 축제같은 고별장이었던 셈이다. 

  또 한가지, 할머니의 영면하실 즈음 진주 시내엔 무지개가 온통 수를 놓아, 여러 신자들이 사진을 찍었다. 

 

  빅토리아 할머니!  묘한 하나의 꿈으로 인하여 만난 묘한 인연이 아름다운 하느님께로의 고별미사로 장식하셨으니, 이제는 하느님 나라에서 평안한 안식을 누리시며 그 인자하신 모습으로 지긋이 미소짓고 계실테죠.

 

  각별한 꿈으로 만난 할머니와의 소중하고 아름다왔던 인연...저 역시 이승을 다 하는 날까지 잊지않을께요.  하느님께 감사!!! ^^

 


생활나눔

일상의 삶의 체험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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