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정오의 휴식 (Noon rest from work : 1890)
작 가 :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 - 1890)
크 기 : 캠퍼스 유채 : 73 X 90cm
소재지 :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
올해는 독일 마르틴 루터가 부패한 가톨릭교회를 대항해 종교개혁을 일으킨지 500 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과거 같으면 이런 날의 주요 메뉴는 중세기 교황에 의해 저질러진 가톨릭교회의 추악함과 부패를 공격하는 것이었으나, 이 땅 개신교의 대종을 차지하고 있는 편협하고 광신적인 근본주의적 개신교를 제외하고, 사려 깊은 개신교 지도자들은 오늘날 이 땅 개신교의 수준이 루터가 분기했던 500년 전 부패한 가톨릭교회를 닮아가고 있다는 자성의 소리를 내고 있다.
의식 있는 가톨릭교회 인사들 역시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아직도 정화되지 못한 가톨릭교회 내부의 문제들을 가슴 아파하고 있다.
한술 더 떠서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몇 개월 전 루터교 전체 대회가 열리고 있는 덴마크 교회를 방문하셔서 루터 개혁의 의미성을 인정하시고, 교회 수장으로서 중세 가톨릭 교회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청하심으로 “한번 부러진 뼈가 치유되면 그 자리가 더 단단해 진다” 는 격언대로 가톨릭과 루터 교회로 대변되는 개신교와 새로운 희망의 관계를 시작하게 되었다.
반 고흐는 현대에 종교 예술의 거장으로 부각되고 있으며, 작품을 통해 표현되고 있는 그의 종교성 안에는 인간적으로 너무도 절실하면서도 사람 냄새가 나는 염원들을 표현하고 있다.
그의 종교성은 세상과 동떨어진 초월적인 존재로서의 하느님이 아니라 여러 가지 고통과 실패의 연속인 삶에서도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선한 인간들의 순수한 열망을 표현하기에 그의 종교화는 하느님을 현대인들의 가슴에까지 다가오게 만들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더욱 작품의 영성적 가치가 인정되면서 신앙과 무관하게 사람다운 삶을 살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 작가는 현대에 있어서 성화의 의미성이 무엇인지를 극명히 알리면서, 그의 작품 뿐 아니라 불과 27년의 짧고 인간적으로 보면 불운과 실패의 연속이었던 그의 삶을 통해 크리스챤 삶의 맑은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개신교 국가인 네덜란드의 명망 있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를 따라 경건한 목회자로서의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신학을 공부하였는데, 그는 성서를 통해 익힌 가장 소외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한 목회를 위해 탄광촌에 들어갔을 때 교회의 비리에 눈뜨게 되었다.
마치 극장에 처음 들어갔을 때 화면밖에 보이지 않으나, 눈이 열리고 보면 주위에 널부러진 지저분한 것들이 눈에 띄는 것처럼 그는 크리스챤들의 만고불변의 고전인 토마스 아캄피스의 “준주성범”과 개신교 작가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을 애독하며 그리스도처럼 십자가를 진 삶을 살고자 하는 열망으로 시작한 목회자의 삶을 살아갔다.
그는 그러한 생활을 통해 만난 많은 목회자들의 이중성과 위선으로 가득 찬 삶을 발견하면서 그는 자기 아버지를 위시한 목사들을 “얼음같이 찬 위선을 가진 회칠한 벽”이란 말로 그들의 위선을 폭로했다.
유명한 설교자로 명망 있던 그의 삼촌 스트리커 목사 역시 주님을 따르기 위해선 세상 물욕을 버려야 한다고 침을 튀기는 설교를 하면서도 그의 딸과 반 코흐가 결혼하고자 할 때 그가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결혼을 반대하는 것을 보면서 그는 성직자야 말로 위선자의 대명사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제도적 종교와 결별하고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를 이해하고 많은 도움과 격려를 준 동생 테오의 도움으로 1880년부터 그림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그는 종교 안에 성직자들의 삶에 만연하고 있는 위선에 실망하면서 프랑스 종교학자이며 비평가인 에르네스트 르낭(Ernest Renan : 1823- 1892)의 예수 전에서 새로운 진로를 찾게 된다.
르낭은 교회가 주장하는 초월적인 하느님으로서 예수 보다 “누구와도 비길 수 없는 최고의 인간”으로서 예수를 강조하면서 교리 차원에 묶여 있던 교회 지도자들과 충돌도 했다.
몸에 밴 위선에서 나온 형식적인 크리스챤 삶보다 어떤 외적 조건이나 법에 구애받지 않고 지상 예수가 사신 것처럼 단순한 신앙, 특히 순수한 열정에서 설교라는 이름의 미사여구의 나열 보다는 복음적 실천의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화가의 삶을 통해 이것을 실천하며 살기로 결심한다.
이때부터 고흐의 삶은 하느님을 찾고 예수를 통해 하느님을 증거하며 살아가는 순례자의 삶이었다.
그는 하느님을 아름다움의 원천으로 파악하면서 그림을 통해 하느님을 찾고, 예술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고 증거하면서 순례하는 삶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이런 순수한 열정으로 시작한 작품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기에 심한 절망과 허탈에 빠졌으나, 실망하지 않고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작품에 몰두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화가인 폴 고갱을 만나게 되고, 그와 함께 화가들의 공동체를 만들자는 의견에 동조하면서 화가로서의 새로운 시작에 대단한 희망을 걸게 된다.
그러나 이것 역시 너무 어이없는 꿈으로 끝나게 되었다. 개인주의적이고 적당히 사는 것이 몸에 밴 고갱에게 너무도 순수하고 열렬한 고흐의 모습은 존경과 신뢰가 아닌 두려움과 부담으로 다가왔기에 헤어지자는 제안을 하자, 반 고흐는 감당할 수 없는 실망과 분노의 표현으로 자기 귀를 잘라 창녀에게 주는 기행을 함으로서 놀란 주민들이 그를 생 래미 정신 요양소에 보내게 되었다.
그는 여기에서 몇 차례 간질 발작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서서히 건강이 회복되자 작품 활동에 몰두하게 되고, 이때 그는 성화의 목표는 반드시 성인이나 성서적 주제에 접근하지 않고서 일상의 평범한 삶 안에서 현존하는 하느님을 제시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그는 성서 비유에 자주 등장하는 씨 뿌리는 사람과 거두는 사람에 대한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는 가난한 사람의 비애와 고난을 너무도 잘 알면서 가난에도 불구하고 땅을 터전 삼아 땀 흘리며 살아가는 농부들의 삶을 너무도 사랑했다.
고흐는 농부들을 그리면서 자신도 캔버스 위에 농부처럼 씨를 부리며 결실을 키우는 농부의 삶으로 생각했다.
이 작품은 고흐의 말기 작품이며, 이 작품을 그린 후 얼마되지 않아 권총 자살로서 비극적인 인생을 마치게 된다.
고흐는 초상화를 통해 인간에 대한 묘사에 집중하다가 서서히 이것이 자연으로 옮겨오게 된다. 그에게 있어 자연은 인간이 만든 어떤 것보다 더 순수하고 직접적으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표현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 작품은 너무도 단순하다. 노란 밀밭에서 추수를 마친 농부 부부가 잠시 쉬고 있다. 농부가 벗어둔 신발을 보면 그들의 삶이 얼마나 척박한지를 알 수 있으나, 지금 이 부부들은 땀 흘린 결실을 얻었다는 뿌듯한 기쁨으로 여름날의 노고를 잊으며 이것을 집으로 옮길 준비를 하고 있다.
먼발치엔 이것을 운반할 마차와 소가 대기하고 있고 이들은 한 여름 땀 흘리며 수고한 것을 거두었단 뿌듯한 기쁨에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밀밭과 거둔 소출에 가득한 노란 색깔은 작가의 작품에 대종으로 등장하는 대종 색깔이며 하느님 현존의 상징과 같다. 즉 작가에 있어 하느님은 땀 흘리는 사람들과 함께 계시며 이들의 삶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신다는 것이다.
얼핏 이 작품을 보면 고진감래(苦盡甘來)의 뜻 즉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 는 뜻으로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옴을 이르는 우리에게 익숙한 교훈을 담은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이것을 통해 심원한 복음적 진실을 전하고 있다. 이는 풍만한 기쁨의 순간에 죽음을 암시하고 있으며, 즉 성서에서 수확의 결실은 풍요의 상징이 아니라 바로 죽음의 상징임을 말하고 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그러기에 이 죽음은 슬픔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희망을 제시하는 것이다. 작가에 있어 밀은 바로 작가 자신의 상징이다. 밀은 죽음과 동시 생명 또는 부활의 상징이 된다.
그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기를 이해하고 있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전하고 있다.
“밀을 수확하고 있는 농부에게서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뜨거운 햇빛 아래 수확을 끝내려고 온갖 수고를 감내하고 있는 성스러운 인간의 모습이다. 여기에서 농부는 자기가 거두고 있는 밀과 같은 존재이기에, 나는 농부를 죽음의 이미지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 죽음은 새로운 생명을 준비하기 위한 필수 과정이기에 여기엔 인간적인 슬픔이 있을 수 없다.”
고흐는 이 작품을 통해 노동의 신성함, 모든 노동은 바로 하느님의 일이며 가장 정직하게 하느님을 제시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작가는 전통적인 성화가 성서로부터 내용을 전개하는 것과 반대로 이 세상 현실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건이나 자연을 통해 하느님께로 이르게 함으로서 크리스챤이 아니면서도 선의의 삶을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무런 거부 없이 감동을 주게 만들었다.
캐나다에서 목회자로 계시는 최종수 목사님은 “고흐의 영성과 예술”이라는 저서에서 클림프 에드워즈(Cliff Edwards) 라는 작가의 말을 재인용하여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셨는데, 이것은 고흐가 제도적인 교회에 대한 실망이나 아니면 개인적인 이유로 종교와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고흐가 새롭게 다가오고 있는 이유를 잘 설명하고 있다.
“고흐의 작품이 우리로 하여금 평범한 민중들의 가장 평범한 일상 가운데서 거룩한 무었을 추구하게 한다는 것을 읽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뿐 만 아니라 반 고호는 19세기의 성 프란치스코요, 땅에 가까울수록 더 훌륭하다는 종교적 비전을 깊이 제공해 준다고 하여, 생전 처음 고흐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현대적인 감성으로 하느님을 찾고자 하는 열망을 지니게 되는데, 반 고호야 말로 우리의 이런 기대를 생각보다 더 크게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