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란 어떤 백성을 말하는 것일까요?
제가 인간적으로 이것을 느낀 것은 북한에 갔을 때와
우리나라가 오랫동안 군사 독재정권 치하에 있을 때였습니다.
평양에 가서 양각도 호텔에 머물렀는데 위에서 평양의 밤풍경을 보니
일국의 수도인데도 불이 별로 없고 너무 어두웠습니다.
그러나 제가 북한에서 느낀 어둠은
전력사정이 안 좋아 도시가 어둡다는 그런 물리적인 어둠이 아니라
김일성에 이어 김정일까지 대를 이어 독재를 하니
인민들이 언제 이 폭압에서 벗어날지 모르는 그런 암울함이었지요.
그리고 김정은까지 3대 세습을 하는 것을 보고서는 더 암울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가 계속해서 군사정권이 권력을 잡을 때 느꼈던
그 절망감과 암울함을 우리도 한 때 경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얘기하는 어둠속의 백성은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절망감과 암울함만은 아니겠지요.
저는 지금 한남동 피정의 집에서 재속 프란치스코 총회에 참석하고 있는데
어젯밤 서울 야경을 내다보면서 서울 야경이 낮처럼 밝다고 해서
서울 사람들은 어둠 속에 있는 백성아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했고
독재가 3대 세습이 아니라 2대로 끝날 것이니
대한민국 사람들이 어둠 속에 있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오히려 대한민국 백성이 더 어둠속에 있고
대한민국에서도 서울 사람들이 더 어둠속에 있을지 모릅니다.
어둠속의 백성이란 무엇보다도 하느님 부재의 어둠이고,
더 심각한 것은 하느님 부재가 어둠인지도 모르는 어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신앙의 눈으로 보면 빛이신 하느님께서 안 계신 것이 어둠이고,
하느님이 안 계신 세상, 곧 세속이 바로 우리에게는 어둠이지요.
그럼에도 서울 사람들이 밤이 돼도 불이 밝으니 어둠 속에 있지 않다고,
빛이신 하느님이 안 계셔도 우리가 바로 우리의 희망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칠흑 어둠 속에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님께서 오셔서 “회개하여라.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하시지만
하느님 나라가 어디 있느냐?
하느님 나라는 필요가 없다.
하느님 나라는 관심이 없다.
이렇게 말하며 하느님 나라와 상관없이 사는 것,
이것이 죄이고, 이것이 오늘 독서와 복음이 말하는 죄의 어둠입니다.
그러니 화려한 서울의 밤거리가 평양의 어둔 거리보다 더 어둡고
환한 등불 아래 있어도 어둡습니다.
우리는 어떤 백성인가?
어둠 속에 있는 백성인가?
아니면 어둠 속에서 큰 빛을 보는 백성인가?
세속의 사람인가, 아니면 하느님 나라 백성인가?
이것을 묵상하는 오늘, 연중 제 3 주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