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희망은 닻과 같아서 안전하고 견고하며
또 저 휘장 안에까지 들어가게 해줍니다.”
오늘 독서를 읽어내려다가 희망은 닻과 같다는 말씀이
아주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희망이 닻과 같다는 말은 닻이 배를 정박케 하는 것이니
우리는 배를 타고 어딘가로 항해하는 존재들이며
희망이 우리를 어딘가에 정박케 한다는 뜻이고
뒤집어 얘기하면 희망이 없을 때 우리는 표류한다는 뜻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희망도 없고 아무런 희망이 없을 때 우리 삶이 어떻겠습니까?
그야말로 죽지 못해서 살거나 희망이 없이 이리저리 표류하겠지요.
언젠가 아주 슬픈 말을 들었습니다.
요즘 노인세대를 대표하는 말 같기도 하고
앞으로 제게서도 그런 말 나올까봐 걱정되기도 하는 말인데
“이 나이에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하고 말씀하시는 거였습니다.
80을 향해 가시는 분이 하시는 말로
병과 씨름하다가 가는 거 외에 뭔 희망이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히브리서의 말씀은 75세에 고향을 떠나고,
슬하에 아무 자식이 없는 아브라함을 예로 들며 희망을 얘기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이 희망한다는 것은 희망이 있기에 하는 것입니다.
희망할 만한 것이 없을 때 희망이 없다고 하고 희망하지 않는데
인간적으로만 보면 아브라함은 앞서 얘기한 노인처럼 아무 희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적으로는 아무런 희망할 것이 없는 아브라함에게는
하느님이 계시고 하느님께서 하신 약속이 있으며
약속을 꼭 지키시겠다는 맹세가 있다고 히브리서는 얘기합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아무리 하느님의 약속이고 하느님의 맹세라도
아브라함이 말도 안 되는 약속이고 맹세라고 생각하고 믿지 않는다면
그것이 어떻게 희망이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희망에는 늘 믿음이 바탕에 있는 것입니다.
신망애3덕信望愛3德을 한 데 묶어서 얘기하고,
망덕과 애덕을 얘기하기에 앞서 신덕을 얘기하는 뜻이 여기에 있는 겁니다.
그러니 “이 나이에 뭔 희망이 있겠습니까?”라는 말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 하는 말이고
우리 신앙이 있는 사람의 입에서는 나와서는 안 될 말이며
우리가 참 신앙인이라면 결코 나올 수 없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히브리서는 희망이 닻과 같다고 하면서
또한 우리를 “휘장 안으로까지” 들어가게 한다고도 하는데 휘장 안이란
천상 지성소, 곧 하느님께서 계시는 지극히 거룩한 곳을 말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우리에게 희망이란 천상 지성소에 닻을 내리는 것이고
우리 인생이란 이 지성소에 닻을 내릴 때까지 배 저어가는 건데
이 때 필요한 것이 있다고 히브리서는 얘기합니다.
열성/게으르지 않음과 인내입니다.
믿음을 밑바탕으로 하고 거기에 열성과 인내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희망이 실현되도록 끝까지 같은 열성을 보여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하여 게으른 사람이 되지 말고, 약속된 것을
믿음과 인내로 상속받는 이들을 본받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지성소라는 가야 할 목표가 있고 희망이 있는 사람은
이제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배를 저어야 한다는 말씀이고
열심히 배를 젓는데 요구되는 인내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믿음과 희망이 있고, 그런 자기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배젓기를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고 인내하지 않을 리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