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가정을 자랑하는 것 같아서 얘기하고 싶지 않지만
자랑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성가정 축일을 맞이하여
성가정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저의 육신의 가정에 대해서 조금 얘기할까 합니다.
저의 아버지는 제가 두 살 때 돌아가셨기에 들어서 아는 것밖에 없지만
젊은 나이에 돌아가실 때까지 참으로 열심히 사신 분이셨다고 합니다.
성실히 일하셔서 부자는 아니어도 남부럽지 않게 먹고 살았을 뿐 아니라
신앙적으로 아주 열심이셔서 자녀들의 신앙교육도 철저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저의 아버지의 일과는 저처럼 새벽 3시에 일어나셔서
마차를 끈다든지 새벽일을 하고 6시면 돌아와 가족을 모두 깨우시고
저의 누나들이나 형은 앞에 앉히고 아침기도를 다 같이 바친 다음
어머니가 밥하시는 동안 아버지는 전날 가르친 요리문답을 찰고 하시고
밥 잡수시고는 일 나가셨다가 저녁 6시면 돌아와 저녁기도를 바친 다음
요리문답을 저희 누나들과 형에게 가르친 다음 저녁 먹고 자는 거였답니다.
그래서 저희 형제들을 포함하여 후손들이 아버지만큼 열심치는 못해도
신자 아닌 사람이 하나도 없고 모이면 기도하는 것이 당연하고,
신자가 아닌 며느리나 사위는 세례를 받는 것이 정상인 가정입니다.
어느 집안이나 있는 형제들 간의 문제가 저희 형제들에게도 있지만
신앙 안에서 풀려고 하는 편이고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
지금도 매월 성시간을 같이 하고 연말연시를 기해서는 같이 피정을 합니다.
이 정도면 하느님이 중심이 되는 성가정의 작은 모범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오늘 제가 얘기하고픈 성가정은 이 정도가 아니라 열린 성가정이고,
이 열린 성가정을 얘기하고자 저의 가정을 비교 차원에서 얘기한 것입니다.
제가 자란 동네에는 공소밖에 없었는데 저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인지
전인지 모르지만 공소회장님이 다른 데서 이사 오셔서
아주 훌륭한 신앙 공동체를 이루셔서 마을 사람 상당수가 신자가 되고
다른 종교, 예를 들어 개신교가 들어오려 해도 못 들어올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훌륭한 신앙공동체를 회장님은 이루실 수 있었을까요?
교리교육을 잘 시켜서 이루셨을까요?
조직적인 선교활동을 잘 이끄셔서 그러셨을까요?
그런 것은 결코 없었습니다.
다만 모두가 부러워하는 신앙공동체를 이루셨기 때문이고,
훌륭한 신앙공동체를 이룬 것은 바로 회장님의 열린 가정 때문이었지요.
회장님의 가정은 모두의 가정이었습니다.
저의 집은 저희만을 위한 가정이었지만 회장님 집은 모두가 드나드는 집,
동네의 신자, 비신자 할 것 없이 모두를 신경 써주시는 가정이었습니다.
회장님만 그러신 것이 아니고 아내 되시는 자매님은 한 술 더 떠서
누구나 편히 들락날락하게 하시고 때가 되면 밥 먹고 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회장님 내외만 그러신 것이 아니라 그런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자녀들도 으레 자기들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가정이었습니다.
이러했기에 저희 공소는 회장님 가정을 중심으로
신앙 안에서 똘똘 뭉치는 신앙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고,
이것이 비신자들에게도 하느님 가정의 모범과 증거가 되었던 겁니다.
올해는 제가 성가정 축일을 맞이하여 자기 가정만 성스러운 가정이 아니라
이런 열린 성가정을 강조하고픕니다.
성가정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마리아와 요셉이 이룬 가정이듯이
우리의 성가정이 진정 주님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가정이라면
열린 성가정이어야만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은 다 내 어머니이고 형제들이라고
말씀하신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말씀은 사랑하라는 것이며
가정과 국경과 민족을 넘어서 사랑하라는 것이지요.
이번에 중국에 간 길에 지난 번 물난리로 쑥대밭이 된
북한의 상황을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금 어수선하고 우리 집도 어려움이 많겠지만
우리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사랑이 열려있는
우리 가정이 되기를 희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