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사도로 뽑으신 이들은
하나같이 능력이 뛰어나서 뽑힌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이야기 했으며,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서 토마스는
예수님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아야 믿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더 나아가 유다 이스카리옷은
예수님을 팔아먹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 모든 일을 예상하시면서도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사도로 뽑으십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각각의 사건들은
예수님께 불리한 결과를 가지고 오는 것처럼 나타납니다.
믿었던 제자들에게서 느끼는 배신감 또한
작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방법이 아니고 다른 방법으로도 충분히
주님께서는 인류의 구원을 가지고 오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굳이 예수님께서 이 방법을 택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부인하는 베드로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며.
의심하는 토마스의 모습 또한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돈에 눈이 어두어 예수님을 팔아먹는
유다 이스카리옷의 모습 또한 우리 안에 있습니다.
즉 우리가 하느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더 뛰어나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부족한 능력에도,
우리의 좋지 못한 모습에도,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면서 이끌어 주시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열두 사도가 새로운 이스라엘을 의미하는 것처럼,
우리 각자가 모여 하느님 나라를 이 땅 위에서 실현할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우리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 각자는 부족합니다.
그러나 그런 우리를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부르십니다.
그 부르심 안에서,
주님과의 일치 안에서
하느님 나라 건설에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