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늘 천사들의 성 마리아를 기리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여 있습니다.
또한 성모님께 대한 특별한 사랑 때문에,
성모님께 봉헌된 천사들의 성 마리아 성당을 큰 사랑으로 돌본
우리 사부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를 함께 기억하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성모님께 대한 공경심으로
무너져가는 이 성당을 고치기 시작하였고,
결국 이 작은 성당에서 프란치스칸 공동체가 시작됩니다.
또한 프란치스코는 이곳에서
글라라를 복음적 생활로 받아들이면서,
자매들의 공동체도 시작됩니다.
이 성당은 복음 전파를 위해 떠나갔던 형제들이
다시 모여서 공동체의 삶을 나눈 구심점 역할을 하였으며,
마침내 프란치스코는 자매인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
이곳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프란치스코에게 있어서 천사들의 성 마리아 성당은
그의 복음적 삶의 시작이며 마침이었고,
형제들에게 있어서는
그들의 시작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기억의 장소,
그들이 다시 하나가 될 수 있는 일치의 장소였습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 구원의 직접적인 시작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구약이 기다려온 구세주가 이 세상에 어떻게 들어오시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시작은 인간의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남자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처녀로 임신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생애를 보았을 때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것들 투성이였고,
결국 그의 죽음 또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마리아는 곰곰이 생각하는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녀는 과연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천사는 마리아에게,
그녀를 통해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녀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살아가면서 그 말을 되풀이했을 것이고,
그러한 반복 속에서
이해되지 않는 순간들을 넘어갈 수 있었으며,
매 순간을 넘기면서
조금씩 더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시작은 어떠했는지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시작을 하며,
그 시작한 것이 이미 끝난 것도 잇고,
아직 과정 중에 있는 것도 있습니다.
또 어떤 것은 시작은 되었지만
흐지부지 끝나버린 것도 있습니다.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프란치스코의 모습이나 형제들의 모습,
더 나아가 마리아의 모습을 보았을 때,
늘 처음으로 돌아가려는 모습,
처음에 가졌떤 마음을 다시 가지려는 자세를
볼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첫 마음을 가지려 노력할수록
우리는 우리가 원했떤 결과에 더 가까이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축일을 기념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우리 각자의 시작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각자 마음 속에서 지향하고 있는 것을
떠 올려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그것의 시작은 어떠했는지,
그 때 나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그것을 시작했는지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매번 첫마음을 바라보면서
새로 다짐하고 순수해질 때,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작용해서,
그 결과를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