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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2주 토요일-나의 예언자는 누구?

by 김레오나르도 posted Dec 1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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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 말씀은 그 맥락을 잘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율법학자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하는데

이것의 뜻부터가 뭔 뜻인지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먼저>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메시아보다 먼저

엘리야가 와야 한다는 뜻인 것 같고,

예수께서 그 오시기로 한 메시아라는 얘기가 있는데

먼저 와야 할 엘리야가 아직 오지 않았기에 예수는

자기들이 기다리는 그 메시아가 아니라는 말일 겁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엘리야가 이미 와 있는데

사람들은 엘리야를 몰라보고 제멋대로 다뤘다고 답하십니다.

그러니까 세례자 요한은 먼저 와야 할 엘리야이고,

예수님 당신은 이스라엘이 기다리는 메시아라는 말씀이지요.

 

그렇다면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인지 왜 몰라봤을까요?

알려고 했는데도 몰라본 것일까요,

아니면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몰라본 것일까요?

 

오늘 독서 집회서는 엘리야에 대해 장황하게 얘기하고

오늘 복음의 주님께서는 엘리야를 <바로잡아주는 자>로 말씀하십니다.

 

어제 저녁 식탁에서 농담 삼아 제 말이 수녀님들께는

쏙쏙 받아들여져 눈에 보이게 변화가 일어나는데

우리 형제들은 늘 같이 사는데도 이런 나를 몰라보고

변화도 안 일어나거나 더디 일어난다고 얘기했더니

예언자는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거라고,

그러니 그런 거 아예 기대하지도 말라고 하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에 어떤 뜻이 있습니다.

수녀님들은 자기들을 바로잡아주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저를 초대하거나 찾아오는데 비해 저희 형제들은

제가 자기들을 바로잡아주는 사람으로 생각지도 바라지도 않고

그저 자기들의 형제라고 생각하고 형제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양성 차원에서, 또 바로잡아주려고 뭔 말을 하면

그것은 하지 말아야 할 말이거나 듣기 싫은 잔소리가 되고

저는 바로잡아주는 사람이 아니라 잔소리꾼이 되고 맙니다.

 

사실 같이 사는 사람, 그래서 늘 이래라저래라 하는 사람을

나를 바로잡아주는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같이 사는 사람을 예언자로 받아들이는 것은 훨씬 더 어렵겠지요.

 

그렇습니다.

예언자가 다른 사람을 바로잡아주는 것은 좋고,

그래서 그런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해 칭송을 합니다.

그러나 같은 예언자가 나를 바로잡아주는 것은 싫고

그래서 그 예언자가 내겐 예언자가 아닌 반대자지요.

 

그런데 오늘 주님께서는 나를 바로잡아주는 사람이 예언자,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내게 보내신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신앙적으로 받아들일 때

내 옆에서 늘 잔소리를 해대는 사람은 예언자가 되고,

그 예언자를 보내신 하느님을 나는 만나게 되지만

그 반대로 예언자를 예언자로 받아들이지 않을 때

그 예언자를 보내신 하느님을 만나지 못할 뿐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의 구원자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예언자처럼 대할 겁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께서는 이런 뼈있는 말씀을 하십니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예언자, 나의 엘리야는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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