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母性
편지 글
1
가난의 절기는 겨울
옷을 벗은 겨울나무들은 서로를 소유하지 않기에 춥습니다.
새봄의 훈훈함으로 새싹을 기르고
한 여름 불타는 태양 아래 초록들의 열정
가을의 풍요와 즐거움 뒤에
고독의 城을 쌓고
추위를 타는 영혼들의 휴식을 위해
비워두는 지혜를 보았습니다.
절제의 미학과
견디는 사랑과 기다리는 사랑으로 사랑하는 일
경배하는 일상을 보았습니다.
2
오후의 시간을 혼자 보내면서
전에 없는 애련함을 느꼈습니다.
측은하고 사랑스럽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연민이 수증기처럼 서려 오르고
생명의 애련함이 안개처럼 밀려왔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애련합니다.
묘하게 아프고 아름다운 감동이
물의 파장처럼 퍼집니다.
사는 일이 소중하고 귀합니다
저마다 열심히 살고 있는 사실이 새삼 눈물겹습니다.
서로를 기르고 보완하는 축복된 능력
이를 위해 애쓰는
분발과 고통과 기쁨을 함께 보듬는 이들이 고맙게 느껴집니다.
더는 기다릴 수 없는 생명의 충일로
마침내 가슴을 쪼개고 마는 석류의 파열 속에
유리를 입힌 듯 반짝이는
붉은 홍옥들의 눈망울을 보았습니다.
3
목덜미에 휘휘 감기는 고독과
외로움 좌절에 기울었던 그만큼이나
헐벗은 영혼의 추운 눈시울을
따스한 불가에 녹이고 싶은 마음을 보았습니다.
4
슬픔속의 종자 같은 님의 내심에 핀
지순한 소망의 꽃잎들
속마음을 비추는 벌거벗은 촛불 앞에
미사가 끝난 후
텅 빈 성당의 쓸쓸한 제대 같은 모습이
고요히 비쳐 오는 시간을 압니다.
5
생명을 낳은 모성이여!
빛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기쁨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자유도, 예술심도, 상냥함도, 기도의 말들도
그리고 달과 별들도 친구들도 남아있고
소중한 시간과 여기에 더하여
사랑하는 주님께서 보내주시는 사람들,
그들과의 만남이 있습니다.
결코 실망하지 않는 가슴이여!
밤사이에 떨어지는 나뭇잎의 건조한 작은 음향에도
무심할 수 없는 섬세한 감정의 살결이여!
님이 치른 산욕의 수고,
절대의 진통으로부터 하나의 생명을 품어내던 그때
어두운 육체에서
온통 빛투성이의 축복이 커다랗게 소리치던
모성의 영광을 기억하십시오.
6
얼마쯤은 늘 상처 입은 가슴
한 번씩 손이시린 노여움과
덤불이 탈 때 같이 뜨거운 혼란에 휘말리는 님의 비애
님의 눈물
불면의 밤을 보내던 날
창문을 때리던 빗줄기의 그 사나운 주먹질에
삶의 애환과 무게를 돌아보게 하지는 않았을까요?
인색한 저울로 사람을 달아 따지는
이반과 몰이해의 사나운 돌팔매들이
부산히 바람을 가르고 다가올 때
아무도 이를 막아줄 방도를 찾을 길 없어
하늘로 두 손을 모으고
기도의 향을 올리던 일을 잊지 마십시오
7
이제는 다른 사람을 위해 옷섶 가득히
가장 맑은 눈물을 담아 보내고
부디 다함없는 축원의 기도를 드리십시오.
자신의 체온으로
얼어붙은 영혼을 녹여주려는 꽃이여!
주고 또 주어도 매번 줄 것이 모자라는 헌신에의 조바심
동반의 여정에 부축의 손길로
생명을 품어 기르는 님이 있어
아직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겨울비 내리는 밤에
2015, 11, 26